회복식 1일 차

결국 혼이 쏙 빠진 하루

by 민트슈슈
된장차 3, 니시차 3, 장미소 3
우주 밥상(생식) 2포
커피관장 2, 물관장 1
소금사탕 3


하루 만에 천당과 지옥. 오늘 같은 날이 딱 그렇다.

어제 받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오늘만 5군데 집을 보러 다녔다. 11시부터 3시까지 사는 곳 근방의 예산안에 들어오는 집은 거의 다 본 것 같다. 그러다 다섯 번째 집이 쏙 맘에 들어서(세입자 7년 거주, 부동산 아주머니와 친근해 보임, 청약 당첨돼서 나감, 나한테 기 준다고 했음 -> 제일 중요) 얼른 계약하기 위해 전세금 중 계약할 10% 라도 달라고 집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아 당장 그 정도 돈은 없는데.. 오늘 집 보고 간 사람이 계약할 건지 알아보고 다시 연락 줄게요' 하더니 10분 뒤에 다시 전화가 와선, 부동산하고 얘기해봤는데, 그냥 본인이 먼저 계약이 완료되고 난 후에 나에게 3개월을 넉넉히 줄 테니 그때부터 알아보라고 말을 했다. 어제와는 완전 다른 분위기에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어제만 해도 당장 집이 나가는 것처럼, 보고 간사람이 당장 들어오겠다고 한 것처럼, 무엇보다 본인이 12월 18일까지 당장 은행에 넣어야 할 돈이 있다고 하면서 사정을 하더니만, 그 급함에 휩쓸려 기껏 5채나 보고 계약하게 천만 원이라도 주세요 했더니 돈이 없다니? 그럼 어제 한 말은 다 뭐냔 말이다. 수중에 천만 원이 없는 분은 아닐 테고.. 넋두리 하려고 걸었던 친한 언니가 한 말처럼 고새 어떻게 급한불은 껐고, 나 줄돈은 없고 한 상황인 것 같았다.


하루치 소동이 끝나니 몸에 긴장이 완전히 풀려서는 소파에서 스르륵 잠이 들었다. 엄마랑 계약하겠다고 한 부동산에도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알렸다. 부동산에서는 "아유 그럼 내년까지도 그냥 쭉 사시겠네요. 기약이 없어요 그런 건~"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어찌 되었던 나에겐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었고 동시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충격요법이기도 했다.


계약하려던 집 말고 고민되던 집이 하나 있었는데 밑도 끝도 없는 고민 전화를 달게 받는 걸로도 모자라 각종 아티클과 관련 유튜브 영상을 보내준 사촌언니에게도 감사한 마음이다. 본인이 내 사정을 뒤늦게 알게 되어서, 못 도와줘서 너무 미안했다는 말을 했던 사람.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손꼽히게 결혼을 잘한 사람. 그리고 왕 부자. 왕부자님들은 확실히 검소하다. 언니랑 형부랑 둘이 합쳐서 1년에 뷰티미용 관련 비용이 200만 원도 안 나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충격이 가끔 날 정신 차리게 한다.


오늘은 회복식이라고 부르는 생식을 두 끼씩 먹는 날이다. 오늘부터 월요일까지 3일 하루에 두 끼씩 생식으로 식사를 한다. 이전 단식 때에는 맵싸한 맛이었는데 오늘은 홍시 같은 단맛이 난다. 엄마말로는 몸 상태에 따라 오미 중 하나가 강하게 느껴진다는데 단맛은 뭔지 여쭤봐야겠다.

그저께 가장 심했던 붉어짐과 가려움은 그새 많이 가라앉았다. 사실 오늘 더 좋을 수도 있었는데 어제 확 한번 올라오느라 완전히 제 리듬을 찾기까지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 사실 진짜 천만다행이다 모든 것이 말이다. 조금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마음 그대로 유지하며 하던 일들을 잘 완수해야겠다.


할아버지에게 할머니가 나온 꿈에 대해 얘기하려 전화를 드렸다. 두 통 못 받으셔서 문자를 남겨두었더니 콜백을 주셨다. "그래~ 고맙다~!" 다짜고짜 본론을 말씀하시는 우리 하부지. 키우시는 난에 꽃이 피면 "하ㄹㅇㅏ버지 집에 꼬ㅊ이 피어따" 문자도 주시곤 했는데 일 년 새 조금 더 나이가 드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번 추석 때는 나를 데리고 약수터 다니던 얘기를 안 하셨다. 그걸 들어야 비로소 할아버지댁 방문이 완성되는 건데.


후회하기 전에, 아마 어떻게 해도 후회가 남겠지만 더 자주, 더 많이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봐야 한다. 넋두리 감이 생길 때마다 전화 걸어 칭얼거리는 나를 내버려두어주는 언니와, 생일 때 꼭 선물을 주고받는 친구들과, 두 번째 책 표지 디자인이 고민된다며 오늘 문자를 주신 함께 일했던 고문님, 미쳐 담아 오지 못한 작업물을 군말 없이 드라이브에 옮겨준 전 팀원 등. 그 들이 있어 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두가 말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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