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래가 다니던 동물 병원에선 항상 가루약을 받았다. 영양제랑 섞은 다음 입천장에 바르면 고양이가 빨아먹을 거라 했다. 하지만 그건 첫 3일뿐이었다. 그 이후엔 까끌까끌한 혀로 살살살 굴려서 뱉어놨다. 혀에 묻혀줘도, 꽤 안쪽에 발라줘도 아주 잘 토해냈다. 간식에 섞어줬더니 그 간식을 싫어하게 됐다.
말랑콩떡이 건강검진을 하면서 알약 먹이는 방법을 처음 배웠다. 목구멍 안쪽 깊이 알약을 밀어넣은 다음 입을 다물게 하고 코에 바람을 샥 불어주면 꿀꺽 삼킨다고 했다. 그걸 이렇게 빨리 실천하게 줄은 몰랐다. 고양이 용품을 처음 주문할 때부터 필건(pill gun. 고양이에게 알약을 먹이는 기구. 손 대신 이걸로 넣어주면 더 수월하다)을 사서 친해지라고 종종 츄르를 묻혀주곤 했지만 그래도 너무 이른 것 같아.
어쨌든 목구멍에 이물질이 급작스럽게 들어오는 건 싫은 경험일 것 같아서 꼭꼭 다음 세 단계를 거쳤다.
1. 고양이 마약 츄르를 필건에 묻혀서 맛보게 한다.
2. 알약을 후루룩 쏘아넣고 입을 다물게 하고, 코에 바람을 분다.
3. 입을 벌려 확인해보고 알약을 잘 삼켰으면 간식을 또 준다.
2단계에서 한번에 성공하는 날은 많지 않았다. 에들이 약간 졸려서 전투력이 떨어진 아침에는 다소 수월했지만, 저녁 땐 기본 두세번은 시도해야 했다. 알약 역시 처음 이틀 정도는 잘 먹어주더니, 코에 바람을 후후 불어대도 어떻게 가능한지 안 삼키고 버틴다. 몸부림치는 말랑이의 손톱에 손등도 몇 군데 긁혔다.
복수로 말랑이 발톱을 싹 잘라주고 나서 고양이 약먹이기에 대해 열심히 검색했다. 카페에서 많은 사람들이 작은 티스푼에 물을 담은 뒤 목으로 흘려넣으면 쉽게 먹일 수 있다고 하기에, 영상을 찾아봤다. 집사가 재빠르게 호로록 먹이니 정말 애들이 편안하게 잘 넘긴다.
그런데 나는 숟가락을 안쪽까지 깊숙하게 못 넣은건지, 계속 실패. 고양이 혀 위에 덩그러니 알약이 놓여있었다. 두 번이나 실패하고 물에 녹아 캡슐이 흐물거리고 있어서 그냥 손으로 쭉 넣었다. 어떻게 영상 속 고양이들은 그렇게 얌전한걸까? 잠깐 화면 안으로 들여보내서 약만 먹이고 데리고 나오고 싶다.
어제 저녁이 절정이었다. 약을 먹이고 말랑이 입속을 확인했다.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잘했다고 간식까지 먹이고 나서 보니 알약을 홱 뱉어놨다. 입속에서 캡슐이 녹아서 가루가 드러났다. 다시 입을 안 벌리려고 애를 썼지만 아직 아기고양이라 내가 힘에선 밀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렇게 먹으면 너무너무 쓸텐데. 먹이고 나서도 안쓰러워서 눈물이 났다. 무섭고 싫은 걸 이렇게 여러 번 하면서 얼마나 스트레스 받을까. 능숙한 집사들 손에 자라게 됐다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텐데. 너무 미안했다.
귀 만지는 것도 냥이들이 싫어하는데, 귓바퀴를 쭉 따라서 곰팡이가 자라고 있었다. 또 꼼지락대는 아이들을 붙잡고 연고를 발랐다, 간식을 줘도 토라졌는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게 또 딱하고 미안해서 냥이들을 앞에 두고 엉엉 울었다. 큰 소리를 내니까 처음엔 다급하게 도망갔던 콩떡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괴롭혔는데 오랫동안 피하지도 않고 안 미워해주는 애들이 고마워서 또 찡했다.
나는, 몸에 안 좋은 줄 알면서 어제도 라면을 끓여 먹고, 운동도 안 하고, 시럽 왕창 들어간 커피 사먹고, 클렌징도 미루고 미루고 미루면서, 나야말로 힘든 건 하나도 안 참고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면서 고양이들한테는 싫다는 목욕 시키고 귀 만지고 독한 약 먹이고. 이게 대체 뭔가.
그렇다고 애들이 싫어하니까, 약도 먹이지 말고 연고도 바르지 말고 약용샴푸도 시키지 말고 털도 빗어주지 말고 이도 닦이지 말까?
막상 안 한다고 생각하니 안되겠다. 말랑콩떡이를 위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힘들어서 안 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막 곰팡이 달고 살고 털 먹다가 헤어볼 생기고 이에 치석 가득해지고 그렇게 살거면 뭐하러 집고양이 하냐. 밖에서 더 많은 걸 경험하면서 자유롭게 살지. 내 꿈은 무병단수인데, 고양이들도 수를 누리는 동안에는 내가 최선을 다해 아프지 않게 해주고 싶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세 번 연속으로 한번에 약먹이기에 성공했다. 필건에 츄르를 묻혀주는 1단계도 생략하고, 그냥 알약을 필건에 끼운 다음 앞부분을 츄르에 푹 담근다. 그리고 목구멍에 과감하게 깊이 넣고 빠르게 쏜다. 츄르 때문에 잘 미끄러지기도 하고, 애들도 거부감이 덜한 채 삼켜보는 것 같다. 그래도 입 속에 뭘 넣는 게 싫었는지 콩떡이는 간식을 줘도 안 먹는다. 대신 열심히 놀아준다. 부디 이 방법으로 오래오래 성공했으면 좋겠다. 울지 말고 일어나 츄르를 들어라 집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