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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 Nov 17. 2021

고양이에게 배우는 미니멀리즘

협공은 안해도 공유는 한다

  집사 한 명과 고양이 두 마리가 노는 이야기, 두번째.

  사냥놀이를 할 때 가장 많이 쓰는 장난감은 낚싯대다. 긴 막대기 끝에 가느다란 줄로 연결된 꽁치인형, 바스락쥐, 깃털 등등.


  콩떡이가 사냥감을 물고 뜯고 있으면, 다친 채로 겨우겨우 도망가는 사냥감을 연기하느라 낚싯대를 찔끔찔끔 흔들어본다. 그럴 때 꼭 말랑이는 그 '낚싯대'에 덤벼든다. 끈을 좋아하는 것처럼 가느다란 막대기에도 끌리는 것이다. 그러면 낚싯대 하나에 둘이 붙어서 한참을 할퀴고 깨물곤 한다.

  때론 애들이 낚싯대에 매달린 사냥감보다 막대기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특히 침대 위에서 뛰어놀 때. 그런 날에는 낚싯줄과 사냥감은 둘둘 말아 손에 쥐고 막대기를 슥슥 이불 언덕 사이로 오가며 아이들을 유혹한다. 말랑콩떡이는 아주 그냥 머리풀고 덤벼들지. 어린 고양이만이 갖고 있는 그 활기를 집 전체에 뿜어대며 논다.


  낚시대의 한쪽 끝부터 다른 쪽 끝까지 남김없이 사냥감으로 노리는 말랑콩떡이를 보면서 미니멀리즘의 기본 원리를 배운다. 물건의 용도는 하나가 아니다! 낚시대의 손잡이까지도 사냥감이 된다. 돌돌 만 채로 던져둔 요가 매트는 냥이 터널이 된다. 잘 청소하고 반짝이는 고양이 화장실은 내가 어릴 적 '엄마 쟤 흙 먹어' 하고 놀던 모래놀이터가 된다. 모래갈이를 하고 이틀 정도는 하도 거기서 뒹굴고 놀아서, 온 집안에서 모래가 밟힌다. 말랑이를 쓰다듬으려 고개를 숙일 때 흔들리는 후드 티의 끈은 또 하나의 장난감이다. 요즘은 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나의 머리카락도 말랑콩떡이의 구경거리가 됐다.


  내년 다이어리를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작디작은 고민에도 종지부를 찍는다. 2022 다이어리가 쏟아지기 시작하고 원쁠원(원 플러스 원. 하나 사면 같은 걸 하나 더 준다)으로도 나오는 요즘. 벌써 내년 노트를 살 생각은 아니었지만 구경하다보니 눈에 들어오는 게 생겼다. 표지도 속지도 귀여운 주간 구성의 다이어리. 그런데 아무리 속지가 예뻐도 페이지에 나누어진 칸을 보면 답답하다. 스물 네 시간의 기록을 저렇게 손바닥 반만 한 칸에 쓰려니 칸이 모자라. 게다가 하루에 한 칸씩만 쓰면 1년 내내 다이어리 하나밖에 못 쓴다. 1년 내내 같은 표지 보면 질린다고요. 빨리 다 써버리고 다른 예쁜 노트를 쓰고 싶어서, 항상 위클리 칸은 무시하고 마구 쓰곤 했다. 바쁜 시기엔 한참 내버려뒀다가, 날짜는 슥슥 지우고 또 이어서 쓰기도 한다. 수정테이프라는 물건이 발명된 것에 감사하면서.


  올해는 유난히 다이어리들의 상세컷을 보면서 날짜를 맞춰서 일년 똑 떨어지게 쓰는 게 좋아보였다. 그럼 이번에 새로 산 다이어리는 11월에 시작해서 1년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느낌으로 쓰고, 더 쓰고 싶은 건 다른 데에 적을까? 에버노트, 노션 같은 메모 어플도 쓰고 있고, 묵혀둔 메모패드, 뒷장이 남아도는 노트 등등을 소비할 기회가 될지도 몰라. 한데 한편으론 귀찮아! 한군데 다 몰아적고 갖고 다녀야 쓰기도 찾기도 좋고 그거야말로 1년 기록이 제대로 남는 것 같기도 하다.


  장난감 끄트머리나 손잡이를 사냥하는 유연한 냥이님들을 보면서 올해도 정해진 선 없이 다이어리를 단권화하기로 했다. 결정을 내리고 나면 신나게 훅훅 다 해버리는 나. 할 일 리스트, 일정, 간단한 일기, 청소 기록, 책읽기 진도 기록, 공부 기록, 감사 일기 등등 마음대로 칸을 만들고 쓰기 시작했다. 좋아하던 디자인에 금방 질리는 것도, 나 쓰고 싶은 대로 물건을 쓰는 것도, 우리 냥이들과 내가 닮은 데가 있어서 좋다.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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