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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수 Jan 05. 2019

고통을 줄이는 진화에는 아직 실패했다

2019.1.5 마이클 아이건 강독


2019. 1. 5 토요일     

마이클 아이건 강독하는 시간 – 첫 날     

감정이 중요해, 10장 멸절된 자기     


-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유아기나 아동기를 완전하게 살아남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살아있는 것은 살아남지 못한 자기의 무덤들 위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 우리가 유아기나 아동기에 꿈꾸었던 많은 것들은 다 죽었다. 이루어지지 못했다. 우리 자신은 그 때의 포기된 욕망, 좌절된 욕구 위에 우리 자신이 자라난 것이다. 그 무덤을 자양분으로 삼아 피어난 것이 지금의 우리 자신이다. 현재의 자신은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실제 모습보다 더 좋아 보이고, 더 생기있고, 더 매력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삶의 신호로 멸절된 자기에 대한 느낌을 가리려고 한다 

----- 우리가 가리려고 하는 것은 벌거벗는 맨 몸만이 아니라 버려지거나 우리 안에서 썩어 문드러진 것도 가리려고 한다.     


인류는 사람들이 서로를 괴롭히는데 따른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진화시키지 못했다

---- 우리의 많은 면이 진화되었지만우리가 진화되지 못한 것은 감정의 상처를 견디는 능력이다. 그래서 수많은 책과 음악, 그리고 많은 종교가 상처를 치유해주겠다고 나선다. 수많은 베스트 셀러들도 보면 결국 고통을 회피하거나 고통을 다루거나 아니면 고통을 다른 무엇으로 바꾸어주겠다고 하거나 고통에 맞설만큼 강하게 해주겠다는 내용들이다.     


---- 마이클 아이건에게 치료란 무엇인가? 

심리치료에서 사람은 타자에게(치료자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너무 힘든 것, 과한 것을 시도한다. 

(심리적치료를 행한다는 것은 환자가 죽인 것(욕망), 또는 죽은 것멸절한 것을 남김없이 보는 것이며혼자서는 감당되어질 수 없는 것을 공유하는 것과 같다


---- 화장으로 가릴려고 했던 것을 화장을 하지 않고 보기로 하는 것과 같다 즉 심리치료라고 하는 것은 끔찍한 것을 함께 보는 것이다

환자는 자신의 상처를 치료자에게 전달한다. 즉 자신의 외상을 전달한다. 

치료는 우리가 서로에게 하는 것, (즉 내가 상처를 주거나 받는 것김현수 추가 설명이하 추설)을 감지하고 보기 위해 시간을 소비하는 과정이다치료는 가장 내밀한 황폐함을 공유하면서 충격 속에 머무르는 시간이다


---- 치료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뭘하고 있는 것인지를 치료자와 함께 보는 과정이다. 치료시간 만큼은, 치료라는 맥락에서 그가 타인에게 저지르는 일을 공유하는 과정이다.     

치료가 초대하고 심지어 추천하는 것은 이런 상처를 드러내고 상처주는 과정을 공유하고 살아남는 것 뿐 아니라 멸절도 공유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함께 멸절되어는 과정을 공유하기도 한다. (즉 욕망을 폐기하거나, 자신의 일부를 버리거나 죽이거나 하는 과정-추설)    

----- 볼 것인가, 말 것인가는 신화에도 존재하는 중요한 갈등들이다. 

오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찔렀고, 뒤돌아봐서 돌이 되거나 소금이 된 이야기들도 있다. 보는 것 자체가 눈을 멀 수도 있게 한다는 것, 즉 어떤 것은 봐선 안되는 것들이 있고, 어떤 것은 보아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직면하면 손상을 입는 것과 직면하지 않으면 손상을 입는 것들이 있다.     


---- 치료란 무엇인가? 

치료란 우리 자신을 파괴하지 않고멸절된 자기와 접촉할 수 있는 한 장소이다    

----- 너무 끔찍해서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아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식이장애, 섭식장애 : 자신들의 신체의 일부를 사용하여 멸절에 대한 보다 전체적인 느낌을 표현하면서 자신들의 몸 안에 황폐함의 감각을 만들어내는 질환이다.     


고통은 우리를 숨게 한다많은 수치심이 고통에 달라붙어 있다

---- 고통은 우리 삶에 엄연하게 존재하고 아주 일찍부터 각 자가 어떻게 고통을 경험했는지는 모두가 다르다그 고통은 우리에게 수치심을 안겨주었고 그래서 고통과 수치심은 언제나 붙어다닌다고통은 수치심을 안기고수치심은 또 가장 큰 고통 중 하나이다    

너무 많은 아동기의 고통이 답을 얻지 못하거나 잘못 이해된다사람들은 삶의 고통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알지 못하면서 무력하게 서로의 고통과 자신들의 고통을 두려워한다    


---- 고통에 대한 답을 얻거나 이해를 잘 하게 되고 고통에 대한 반응법을 배워나가는 것이 결국 삶이다.     

고통을 통과해내는 경험과 통과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변화에 대한 압력을 치료자와 나눈다고통과의 씨름이 생명의 길을 연다    

죽음의 얼굴을 본다는 것 (정신적 외상)은 특정한 종류의 죽음 (죽음에 준하는 경험)을 겪는 것이다

거기에는 충격긴장얼어붙음비명이 있는데거기에 위로가 주어지지 않는다면그 사람도 결국 죽어가는 일이 발생한다. (아동기 외상은 죽은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어떤 부분이)

사람이 어린 나이에 심각한 일을 겪고난 뒤 자신에 일어난 일을 믿거나 받아들일 수 없을 때 그 일은 평생동안 지속되는 충격이다

이 충격이 나이를 먹으면서 저절로 줄어든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오히려 이런 비슷한 충격이 다시 가해지면 그 충격으로 인해 사망하는 일도 자주 본다.     

---- 죽음의 얼굴, 부모를 잃음 그 이후로 난 내 마음의 일부가 죽은 채로 살아온 셈이다. 부모가 없이 살아온 것이고, 이 충격에 대해 아무에게도 위로받지 못했다. 성장과정에서는, 오히려 요구만 받아왔다. 살아남거나 더 잘해야한다는. 그래서 나는 어떤 부분이 죽은 채로 성장했다. 그 부분은 여젼히 죽어있거나 혹은 일부 살아났다 하더라도 제대로 활용할 수가 없다. 다만 지금은 이해할 뿐이다. 그럴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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