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맛보면 계속 생각날걸?
인도에 온다면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 몇 가지 있다. 그중에 하나가 인도의 대표 아침 식사 메뉴인 ‘도사’라는 음식이다.
이국적이지만 향신료 향이 강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아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도 잘 맞는다. 주변에 계신 한국 분들 중에 인도 음식이 입에 안 맞아 고생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도사만큼은 잘 드신다. 그만큼 호불호가 적으면서 조금 익숙한 맛이다.
인도에서 살아도 아침식사는 6시 반에 먹기 때문에 밖에서 인도식 아침을 경험해 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러다 인도에 온 지 한 달 만에 자이푸르와 아그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우리는 아침마다 호텔 조식 뷔페를 이용하였는데 늘 테이블 위에는 대여섯 가지의 인도식 아침 식사 메뉴를 써놓은 작은 리스트가 있었다. 직원에게 원하는 메뉴를 주문하면 즉시 조리가 되는 그리고 무료로 제공되는 요리들이었다.
시도는 해보고 싶은데 아는 메뉴가 없어 뭘 먹어야 될지 한참 고민했더니 직원들이 꼭 도사를 먹어보라고 추천해 줬다. 그리고 너무 친절하게도 (먹을 때만) 호기심 많고 질문 많은 외국인 여행객에게 다양한 메뉴를 맛보게 해주고 싶었는지 여기 있는 모든 메뉴를 가져다줄 테니 먹어보라고 제안해 주었다. 나도 내가 잘 먹는 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지만 음식 남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늘 감사하다고 한 뒤 그 중 두세 개 정도만 시켰다. 그리고 그 여행 일정 동안은 매일 아침 도사를 먹었다. 시도했던 모든 아침 메뉴들 중에 그게 제일 맛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맛본 갓 구운 겉바속촉 도사의 맛에 눈을 떠 남편과 나 둘 다 도사 킬러가 되었다. 가능하다면 도사는 매일 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는 음식이지만 엄청 건강해 보이는 음식은 아니라 자제해야 한다. 왜냐하면 도사는 기름진 탄수화물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건 절대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조합인 것이다.
하물며 나의 테니스 코치였던 (20대 중반의 인도 여성) 비샬리는 내게 도사를 먹지 말라고 말렸다. 하루는 그녀와 아침 먹는 얘기를 하다가 ”도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도식 아침이야! 주말에도 남편이랑 골프 치고 브런치로 먹었어!” 했더니 “노!! 그게 얼마나 기름이 많이 들어가는데, 가능하면 기름을 쓰지 않는 이들리나 차파티를 먹어!” 라고 하며 그 이유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 이후로 귀여운 잔소리 쟁이었던 그녀에겐 도사를 먹어도 굳이 얘기하지 않았다.
“서론이 너무 길잖아! 그래서 그놈의 도사가 뭐냐!”라고 물어보신다면 도사는 남인도에서 유래된 요리로 쌀과 콩을 갈아 만든 반죽을 발효시켜 기름에 얇게 부친 크레페 같은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아는 부드러운 프렌치 스타일의 크레페보다 좀 더 바삭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상태로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고 서브되면 플레인 도사가 된다. 주로 도사는 식용유에 부쳐주는 게 일반적이지만 원하면 기(정제된 고급 버터) 옵션을 선택할 수 있는데 그러면 기 도사가 되는 것이다. 플레인 도사보다는 훨씬 더 고소한 풍미가 있어 개인적으론 기 도사를 선호한다. 그리고 플레인 도사 안에 양념된 찐 감자, 양파 같은 속을 넣은 게 마살라 도사이다. 남편과 나의 최애는 바로 이 마살라 도사인데 한번 먹어보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쉽게 묘사를 하자면 묽지 않은 드라이 채소 카레를 품은 쌀전병 같은 맛이다.
도사는 서브될 때 삼발이라는 스튜와 몇 가지 처트니들이 함께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삼발은 인도 식사 메뉴에서 빼먹을 수 없는 사이드 디쉬 같은 느낌인데 렌틸콩과 채소들이 들어간 빨간 스튜이다. 매운맛은 적고 시원하면서 약간의 단맛과 신맛이 있는 가벼운 맛이다. 처트니는 식당마다 다르긴 하지만 주로 칠리나 생강이 들어간 빨간 소스가 하나 있고 코코넛이 들어간 하얀 소스 두 가지를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도사는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그 위에 입맛에 맞게 이 세가지 소스를 각각 얹어 먹으면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이 더 풍부해진다.
도사는 일반 가정집에서도 흔히 만들어 먹을 정도로 평범한 음식이다. 단지 식당에서 먹는 것보단 덜 바삭하지만 좀 더 담백하게 만들어 먹는 것 같다. 하루는 나의 힌디 선생님이 “우리 집에 와서 수업하고 같이 브런치로 도사 먹자” 한 적이 있었다. 수업은 한 시간 반이었는데 그날 따라 왜 그렇게 시계를 흘끔흘끔 쳐다보게 되던지… 수업이 끝나갈 때쯤 그녀의 요리사가 와서 주방에서 도사를 요리하기 시작했는데 고소한 기름진 냄새가 나의 집중력을 분산시켰다.
드디어 체감상 세 시간 같았던 수업이 끝났고 가정식 도사를 먹어볼 수 있겠다는 흥분된 마음으로 부지런히 테이블 세팅을 도왔다. 자리에 앉으니 선생님은 ”도사는 조리가 될 때마다 계속 줄 테니 많이 먹어“ 하며 따끈따끈하게 갓 구운 도사를 하나를 접시에 놔주었다. 식당에서 파는 도사는 노릇한 브라운 계열의 색을 띠는데 집에서 먹는 음식이라 그런가 좀 더 밝은색이었다. 집에서 엄마가 만들어주는 건강하고 소박한 부침개 같은 느낌이었다.
깨끗하게 씻은 오른손으로 도사를 잘라 한 입 먹어보았다. 부드럽고 촉촉한 이 마살라 도사는 먹자마자 ’오호! 이건 식탐을 자극하는 위험한 맛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슴슴한데 중독적인 맛있었다. 바로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하나를 먹어치웠다. “너무 맛있다!” 하며 엄지척하니 선생님이 신이 났는지 계속 먹으라며 넉넉한 인심으로 접시가 비지 않게 도사를 서브해 줬다. 평소에 도사 먹을 때와는 달리 홈메이드라 건강하다는 생각 때문에 죄책감도 줄어드는 느낌이어서 부담 없이 먹게 되었다.
그렇게 다섯 개의 도사를 배 터지게 먹었다. 같이 옆에 앉아 식사를 하셨던 선생님의 남편분보다 내가 더 많이 먹었다. 배가 불러서 그만 먹겠다고 하니 선생님과 남편분은 ”너 아직 젊잖아, 더 먹어야 할 때야!” 하셨다. ‘먹는 게 키로 간다면 열 개라도 먹겠지만 저도 옆으로 퍼질 나이에요 선생님.’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뱉진 않았다. 물론 먹으려면 더 먹을 수는 있었을 것 같긴 했지만 두 분은 이미 식사를 끝내신 상태였고 그저 잘 먹는 나의 모습을 흐뭇하게 따뜻한 눈길로 쳐다보고 계셔서 배부르다며 식사를 마쳤다. 어딜 가나 잘 먹어야 사랑 받는 건 만국공통인가 싶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