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는 떨어지지만 설레는 패션 유학

by JANE

영국행은 구남친이자 현남편과의 기약 없는 장거리 연애를 의미하기도 했다. 요즘 군대도 2년을 안기다리는데 무려 3년이라니. 유학 합격 소식을 꺼냈을 때는 한창 뜨거웠던 우리의 연애 초반이었다. 남친은 우리 집 오피스텔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한참 뒤에 나왔다. 눈물을 훔치고는 훌쩍거리며 말했다.


“보내줄게.”


이런 반응은 예상한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연애를 시작한 이후 처음 보는 그의 ‘첫 눈물’에 적잖이 당황했다. 솔직히 이 남자가 나를 이 정도로 좋아하는지는 몰랐다. 나도 그를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그가 벌써 우리의 미래를 진지하게 그리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나에게 결혼이란 아주 먼 미래의 얘기라 생각했다. 그의 슬픔에 동조되지 못한 나같은 쌉T 인간은 그 눈물에 동요하기는커녕 오히려 허허 웃으며 말했다.


“헤어지자는 것도 아닌데 왜 울어. 나 방학 때마다 몇 달씩 오빠 보러 올거야”


마음이 무거웠고, 미안했다. 난 욕심 때문에 떠나는 입장이지만, 남은 사람은 지쳐갈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친을 토닥이고 안아주는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 반응은 처음뿐이었다. 떠나야 할 시간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는 이과생 연구원답게 계산기를 척척 두드리더니, 급기야 내 유학의 비용과 미래의 연봉까지 대략적으로 계산한 엑셀 파일까지 만들어 왔다. 집에 부담을 주기 싫어 더 좋은 대학을 가는 대신 4년 장학생을 선택했고, 졸업 전 대기업에 취업해 한 번도 쉰 적이 없던 가성비가 가장 좋은 그가 보기에는 나의 선택이 투자에 비해 결과가 너무 형편 없는 것이었다. 그는 나의 행보를 사치로 여겼고 그런 의견 차이로 다툼이 잦아졌다.


그는 유학이야말로 가장 가성비 없는 선택이라며 가지 말고 차라리 커리어를 쌓으라고 말렸다. 매번 다툴 때마다 나의 말과 선택이 논리적이지 않다고 모든 말을 사사건건 집고 넘어가는 그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냉혈한 같았고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주변에서도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네 나이에 유학 갔다 온다고 뭐가 되겠냐, 갔다 와서 취업이나 되겠냐, 남친이 기다려 줄 거라 기대도 하지 말아라, 등등 모임에 나갈 때마다 폭풍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나라고 그걸 몰라서 간다고 했을까. 하지만 이건 억눌리고 숨겨왔던 꿈의 실현 같은 것이었다. 꼭 완성된 멋진 결과만 꿈이란 법은 없지 않은가.


결국 미래는 미래의 나에게 맡긴 채, 말 안듣는 청개구리처럼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런던으로 떠났다. 객기였는지 오기였는지는 모르겠다. 가지 않는다면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후회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게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았다.


남친은 여름 휴가를 써서 나와 함께 런던까지 와줬고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펑펑 울었다고 했다.


그런 그와는 반대로, 해외만 나오면 마음이 편해지는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새 학기를 시작했다. 석사도 아니고 또 한번의 학사 과정으로 입학을 했는데, 선택한 전공은 패션 스타일링이었다. 디자인도 아니고 스타일링이라니. 이 생소한 전공을 말할 때마다 늘 사람들은 대체 뭘 배우냐고 물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내가 다닌 학교에서는 복식사, 예술사, 현대 패션, 사진, 마케팅 등 패션 전반에 관한 이론 수업들이 있었다. 그리고 3년 내내 가장 많이 한 중요한 작업은 바로 패션 화보를 직접 기획하고 촬영하는 일이었다.


예를 들어 ‘아름다움’이라는 주제로 패션 화보를 하나 찍는다 치자. 여기서 나의 역할은 이 주제를 나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하나의 컨셉과 스토리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어떻게 이미지로 풀어낼지 기획을 한다.


만약 컨셉을 ‘아름다움에 집착하다 결국 자기 파괴에 이르는 여성의 모습’이라고 잡았다면 그 다음엔 세부 작업을 이어간다. 페이지마다 들어갈 디테일한 스토리를 만들고, 어울리는 의상, 모델의 이미지, 헤어, 메이크업, 촬영 장소, 소품 등 레퍼런스를 찾아서 무드 보드를 만든다. 그 다음에 이걸 현실로 만들어줄 수 있는 진짜 스탭들을 찾아 촬영을 하는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내가 원하는 대로 기획해 펼칠 수 있다니! 이 무드보드를 만드는 시간만큼은 직장 생활을 하며 받았던 수많은 가이드라인을 벗어나 거침없이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만큼 재밌는 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작업은 밤을 새도 에너지가 넘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잘 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