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기까지 수개월 동안 치열하게 고민했지만, 막상 퇴사를 하고 나니 비구름처럼 무겁게 드리워져 있던 마음이 탈수기라도 돌린 듯 가벼워졌다. 사람이 어쩜 이렇게 간사할까 싶을 정도로. 퇴사 다음 날 눈을 뜬 아침은 매일 아침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묘한 해방감이 생겼다. 몸도 곧 회복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스며들었고, 오랫만에 자유라는 감각에 눈을 뜬 느낌이었다. 그때 문득 해리포터에 나온 그 유명한 대사가 떠올랐다.
“도비 이즈 프리!”
나는 내 일을 좋아했지만, 역시 일은 결국 일이었다. 여느 직장인들처럼 나 역시 겉옷 안주머니 속에 사직서를 품고 있었던 것이었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충분히 버텼다. 이제는 뒤를 돌아볼 이유가 없었다. ‘앞만 보고 가자.’ 회사를 그만둠과 동시에, 앞으로 그려낼 사업 계획들에 마음이 붕 떠버렸다. 아주 작게라도 나만의 패션 브랜드를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희망을 품으면서.
사실 나는 패션 전공자는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늘 이쪽 분야로 오고 싶었지만, 결국 선택지는 영문과였다. 핑계를 대보자면 공무원이 되길 바랐던 부모님의 영향이 컸고, 나처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패션을 선택할 만큼 재능이 있는지도 확신도 없었고, 끝까지 잘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의 학교와 학원, 입시로 이어지던 십여 년의 학창 시절이 지긋지긋하게 싫어, 뭐가 됐든 영어라도 배워 해외로 나가보자는 마음으로 지원했을 뿐이었다.
역시 나는 애시당초 공무원 공부를 할 수 있는 그릇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스스로 깨닫고 나서 부모님 몰래 진로를 틀어 외국계 여성복 패션 브랜드의 세일즈부터 시작했다. 졸업하기 1년 전, 런던으로 혼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인 민박에서 우연히 만난 대기업 MD로 일하던 언니가 내 이야기를 듣곤 패션 VMD라는 직업을 추천해주었다. 그때부터 난 이 일에 대한 막연한 판타지와 호기심이 마음 한켠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문과에서 패션으로 하루아침에 취업의 방향을 틀기에는 두려움이 컸다. 졸업을 앞두고 해외영업으로 지원했지만, 결과는 몇 개월 내내 줄줄이 탈락이었다. 그러다 외국계 취업 박람회에서 스페인을 베이스로 한 SPA 그룹의 인사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덜컥 이력서를 내고 돌아왔다. 한 달 뒤, 나는 그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엄마는 책상에 앉아 일하라고 4년제 대학 보내고 어학연수까지 시켰는데, 왜 매장에 가서 옷을 팔고 있느냐며 크게 반대했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왜 한 번도 내가 원하는 걸 응원해주지 않느냐고,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잘하는 게 뭔지는 정말 알고 있냐며 울며불며 원망했다.하지만 “네가 그 정도로 간절히 원하는 게 있기는 했냐’는 엄마의 반문에 머릿 속이 ‘댕’ 하고 울렸다. 그 순간, 다짐했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기로. 그리고 엄마에게 1년만 기다려달라고 설득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노동의 강도가 훨씬 높아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뭣도 모르고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인생 첫 직업인 패션 VMD라는 일이 천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20대의 체력으로는 못할 일이 없었고, 목표한 위치에 가기 위해 정말 열심히도 달렸다. 그러다 정말 운이 좋았는지, 엄마에게 약속했던 대로 1년이 조금 지난 뒤 국내 모든 매장들을 담당하는 VMD로 올라갈 수 있었다.
이 때부터 또 다른 꿈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한국 매장들을 담당하게 되면서 해외 오프닝 서포트나 글로벌 미팅 등으로 출장 갈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더 많은 나라의 매장들을 돌아다니고 직속 커뮤니케이션 라인이었던 아시아 혹은 글로벌 담당 VMD들과 함께 일할수록 나 역시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늘 아이디어가 많고 무언가를 기획하는 일을 좋아했던 나는, 글로벌 가이드를 전달받는 포지션이 아니라 직접 제안하고 만들어가는 업무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그 욕심의 결론은 꽤 솔직했고 단순했다. 이 분야에서 최고의 월급쟁이가 되어 보자!
패스트 패션 브랜드였던 만큼 매주 신상품이 쏟아져 나왔고, 그만큼 트렌드에 예민해야 했다. 동시에 매장 소속 VMD들을 트레이닝 하는 역할도 맡고 있었다. 트렌드에 대한 촉을 세우기 위해 런웨이를 챙겨 보고, 마켓 리서치(라고 하지만 늘 쇼핑으로 변질되는)를 위해 시장을 계속해서 돌아다녔다. 패션 잡지들을 정기 구독하며 스크랩을 하고,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어떻게든 채워보려 애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패션의 세계를 깊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다. 예를들면 그런것이었다. 소비자로서는 쇼핑몰에서 예쁜 신상을 보고, 사고, 즐기면 그만이지만 기획자의 입장에선 달랐다. 그 시즌에 나온 컬렉션이 어떤 의도와 배경을 가진 것인지, 그 핵심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것을 다시 현장의 상황에 맞게 재해석해서 매장에 풀어내야 했다. 어차피 가이드라인이 다 내려오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분명한 한계가 느껴졌다.
여기서 또 이해가 안 되면 파고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병이 발동했다. 더 나은 커리어를 쌓으려면 매 시즌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도무지 아무리 봐도 이해가 되지 않던 런웨이와 컬렉션의 배경부터 알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결국 만 28살이 되던 해, 런던으로 패션 스타일링 학사 과정으로 유학을 가기로 결심했다.
나는 아직 20대니까 괜찮은 선택이라고 믿었지만, 단 한명의 친구 외에 부모님과 모든 주변 사람들은 그 나이에 무슨 유학이냐며 차라리 시집이나 가라고 하셨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도 꿈쩍도 않고 똥고집을 부리는 딸의 진심을 결국은 알아보셨는지, 마지막에는 두 손 두 발을 다 드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