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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리 Oct 10. 2022

뮤지컬 <해밀턴>이 허락하는 애국심

지금 가장 핫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한국으로 수입되지 않는 이유

뮤지컬 <해밀턴> 투어 공연을 보고 왔다. 4년 전, <해밀턴>이 한참 이슈가 되면서 티켓 대란이 일어났을 때, 어떤 관객이 녹화한 저화질의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당시 나는 미국에 머문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았었기에 왜 이 뮤지컬이 이렇게까지 인기가 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보았었다. 미국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쌓인 지금, 여전히 나는 <해밀턴>을 다른 미국 관객만큼 열정적으로 소비하지는 않지만, 고개를 끄덕는 부분이 훨씬 많아졌다. 그리고 이 공연이 한국에 수입되기 어렵기 때문에 미국에서만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출처: https://www.ticketmaster.com/hamilton-touring-tickets/artist/2336213)


* (이번 포스트에는 공연을 보고 온 소회를 가볍게 적고자 하기 때문에 여기서 구체적인 학문적 근거나 정확한 역사를 제시하지는 않겠다.)


<해밀턴>은 가히 지금 미국에서 가장 핫한 공연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동시에 회의적인 시선도 받는 공연이다. 연극영화과 수업에서는 학생이고 교수님이고 웬만한 예시를 전부 <해밀턴>으로 든다. 주로 학생들은 이 뮤지컬에 대한 열정적 지지를 표출하고, 학자들은 문제점을 조심스레 제시하는 분위기다. 얼마 전에는 <오페라의 유령>이 브로드웨이 오픈 런을 종료한다는 소식에 많은 학생들이 <해밀턴>과 같은 새로운 공연들이 이제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즉 그들에게 <해밀턴>은 뮤지컬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완전히 새로운 극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해밀턴>은 뛰어난 극작가이자 작곡가이자 배우인 린 마누엘 미란다가, 오바마가 대통령이던 당시, 백악관에서 짧은 공연을 만들어 올린 것이 화제가 되자 이를 정식 공연으로 발전시켜 탄생하게 된 극이다. 내용은 알렉산더 해밀턴이라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 중 한 명의 이야기를 위인전 형식으로 그리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b4GlOabb1M

2016년 토니 어워드 공연. 오바마 부부가 적극적으로 이 뮤지컬을 지지하는 첫 부분이 인상적이다.


사실 Founding Fathers라고 하면, '아버지'라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백인 남성 위주의 나라 건국을 암시하기 때문에 그다지 긍정적인 인식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해밀턴>에서는 첫 대사부터 그를 "a bastard, orphan, son of a whore and a Scotsman" 즉 "서자에, 고아에, 매춘부와 스코틀랜드 사람의 아들"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을 뒤집으며 출발하는 것이다. 더 혁신적인 것은 랩 위주의 음악을, 그 음악의 주인인 흑인들이 주인공이 되어 공연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기존의 '국뽕' 컨텐츠가 공적인 공간에서 마음껏 공유되기에 조심스러운 상황이었다면, <해밀턴>의 경우 이 공연이 표방하는 다양성 때문에 누구나 그 내용을 함께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해밀턴>에서는 힙합 뮤지컬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진지함을 표방하는 제복이 어우러진다.

(출처: https://historytech.wordpress.com/2015/11/19/hamilton-the-musical/)




힙합 뮤지컬은 기존에도 있어 왔고 흑인이 주인공인 뮤지컬 또한 기존에 존재했다. 1997년 초연한 뮤지컬 <라이온 킹>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렇다면 <해밀턴>은 왜 이렇게까지 새롭고 혁신적인 것으로 주목받는 것일까?


<해밀턴>의 1부는 미국의 독립전쟁을 소재로, 해밀턴이 조지 워싱턴의 총애를 얻으면서 자신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영국을 몰아내고자 벌이는 전쟁이 제복 입은 훤칠한 배우들의 춤으로 표현되면서 스펙터클하게 연출된다. 2부에서는 미국을 독립된 나라로서 발돋움하게 하기 위해 애쓰는 해밀턴의 모습과 역경, 그리고 죽음까지 다루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해밀턴>은 소위 말하는 '국뽕'을 제대로 고취시키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한껏 담은 공연이다. 물론 그동안 '국뽕' 컨텐츠 또한 무수히 많이 제작되어왔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미국 건국의 이면에 담긴 원주민 학살과 노예제, 이민자 문제 때문에 대부분의 '국뽕' 컨텐츠는 백인에 의한, 백인을 위한 것으로만 존재했다. 즉 그들만의 자화자찬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흑인 배우를 내세우는 <해밀턴>은 미국 건국의 과정에 흑인 노예들이 핵심 역할을 했다는 점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첫 상업극이라는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다. 오바마 정부에 힘입어 등장할 수 있었다는 사실 또한 공연의 희소성을 더한다.




그러면 학자들은 왜 <해밀턴>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를 경계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대중극이 그러하듯, <해밀턴>은 실험적이고 도발적이기보다는 상당히 안전한 길을 택하고 있다. 미국 건국에 있어서는 인종적인 부분 외에도 원주민 학살과 아메리카 대륙의 소유권 등 정당한 한 나라로서 인정받기 위해 풀어야 할 뿌리 깊은 문제가 여럿 있다. 그러나 랩 음악과 흑인 캐스트를 제외하면 <해밀턴>은 고전적인 뮤지컬 형태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제복 입은 멋진 '건국의 아버지들'이 보여주는 나라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는 전혀 무관하게 애정 상대로만 존재하는 여성 인물들, 초인간적 능력과 헌신을 보여주는 위인 해밀턴에 대한 극찬, 그리고 전쟁을 고통보다는 기쁨으로 묘사하는 점에서 이 극이 오래된 고정관념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가사와 음악 또한 기성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전형을 따르고 있으며, 2부는 해밀턴을 사이에 두고 자매가 벌이는 신경전과 불륜을 그려 한국의 막장 드라마가 떠오르기도 한다. 심지어 그의 불륜은 미인계에 당한 피해자의 입장으로 그려지고 있다. 해밀턴을 지칭할 때 반복해서 등장하는 "서자에, 고아에, 매춘부와 스코틀랜드 사람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는 능력과 노력만 있으면 누구나 성공한다는 아메리칸드림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다. 미국 건국의 서사와 합쳐지면서 이 아메리칸드림은 해체되기는커녕 더욱 강화된다.




흑인을 건국의 중요한 기여자로서 인정한다는 점에 도취되어, 눈을 가린 채 뮤지컬이 이끄는 대로 마침내 정당해 보이는 듯한 미국에 대한 애국심을 마음껏 키우게 되면, 진정 미국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기 어렵게 될 수 있다. 애초에 독립전쟁에 대한 묘사도 한국인이 보기에는 위화감이 드는 부분이 많다. 침략을 당한 적도, 식민지배를 당한 적도 없으며, 오히려 아메리카 대륙에 침략을 한 주체가, 자신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벌이는 전쟁에 어떤 감동을 느끼고 어떤 응원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이런 나도 문득 같은 내용을 동양계 배우들이 동양 음악을 모티브로(판소리나 창으로 상정해보겠다) 전달했다면,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오르고 더할 나위 없는 감동을 느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동양인이 처음부터 철저히 타자이자 외부인으로서 배척되도록 설계한 미국 사회의 시스템을 거부하는 너무나 큰 성명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노예로서 시작된 미국 흑인의 삶은 이민으로 시작된 동양인보다 더 오래, 더 처절하게 배척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니, 이 뮤지컬이 전달하는 해소감과 해방감은 한층 더 클 것이다.


제복을 갖춰 입은 흑인 캐스트의 모습은, 백인에게 맞춰 제작된 옷이 흑인에게 훨씬 더 잘 어울리고 심지어 그들을 돋보이게 만들어 준다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따라서 제복은 백인이 되고자 하는 모습이라기보다는 흑인이 실제 건국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그 옷 걸맞은 핵심 인물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느껴졌다.

(출처: https://www.broadwayworld.com/nashville/article/Review-After-Covid-and-the-Insurrection-HAMILTON-Resonates-More-Deeply-in-its-TPAC-Return-20220729)




내가 공연을 보러 간 날은 시작 두 시간 전부터 몇천 불 단위의 <해밀턴> 후원금을 낸 VIP들을 대상으로 pre-show가 있었던 날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아니면 원래 그런 것인지, 객석에는 유난히 열정적이고 감동적인 기운이 감돌았다. 4층짜리 대극장을 꽉 채운 관객은 매 장면마다 열렬한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기에 바빴다. 특히 애국심이 고취되는 부분들과, 샌님 같은 영국 국왕이 보여주는 코메디에 압도적인 반응이 있었다.


관객 반응을 차치하고서라도 <해밀턴>은 고전적 방식으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극이다. 브로드웨이에 관심이 많은 한국이라고 하더라도, 미국 사회가 전례 없이 신선하고 혁신적이라고 평가하는 이 공연에 호응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더군다나 이 극은 반드시 흑인 캐스트가 주가 되어야 하는데, 해외투어 팀이 오더라도 그 의미가 한국 관객에게 와닿을지는 미지수로 보인다.

 

2015년에 초연한 뮤지컬이지만 아직도 그 열기가 식지 않는 <해밀턴>이 앞으로의 미국 사회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다른 나라에는 어떤 방식으로 수출이 될지 흥미롭게 지켜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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