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엘에이로 한국무속과 예술의 만남을 주제로 한 공연/행사에 다녀왔다. '교포(Gyopo)'라는 단체에서 주최하는 행사였는데 한국계 미국인 예술을 전격적으로 지원하는 가장 큰 단체였다. 새롭게 이전했다는 '교포'의 작고 하얀 공간에는 누가 봐도 예술인인 사람들로 가득 찼고 이는 내게 잊지 못할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이날 작품을 공유한 인물들은 한국계 미국인 세 분으로, 현직무당인 최서희님과, 무속적 감성을 활용한 예술인인 미샤 골드버그님과 나미라님이었다. 최서희님은 김금화 만신의 회고록을 번역한 것을, 미샤 골드버그님은 어렸을 때 여읜 한국인 어머니가 남긴 문화적, 개인적 흔적들을 무속적 감성을 통해 찾아나가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공유하고 그에 대한 시를 낭송하였고, 나미라님은 한국계 미국인 예술에 큰 획을 그은 차학경(1951-1982)에 빙의한다는 개념을 통해 차학경의 분절적이고 멀티미디어적인 감성을 담은 작품을 선보였다. (미샤 골드버그님의 영상은 여기서 원본을 감상할 수 있다: https://www.meeshagoldberg.com/#/daughterland/)
'교포'의 행사 포스터와 내가 구매한 미샤 골드버그 님의 시집
예술인이 학교에 초대되어 진행되는 행사는 늘 어딘가 어색하고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날의 에너지는 정말로 특별했다. 예술이 마침내 있을 곳에 있으니 모든 작품이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오르는 느낌이었다. 특히 미샤 골드버그님의 시 낭송은 너무나 강력해서 참던 눈물이 결국 터져 나올 정도였다. 시 낭송이란 아련함이라는 기제 없이는 불가능한 걸까라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미샤 골드버그님의 낭송은 조금도 아련하지 않았고, 그 순간 그 내용에 대한 놀라운 집중력뿐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다른 순간에 펑펑 눈물을 쏟고 있었다. 다들 예술과 무속을 너무 잘 이해하고 있어서 설명도 정당화도 필요 없었다. 새로 이전한 '교포'의 공간이라 영상 상영이 원활하지 않았는데, 진행자가 "여러분 기운이 너무 세요 지금"이라고 한마디 덧붙일 정도였다. 이곳에서 예술은 조금도 신성시되지 않았는데, 날뛰는 에너지들이 모인 곳에서 사람들은 마음껏 산만했다. 한편으로는 감동받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핸드폰으로 여기저기 연락하고 다른 영상을 보거나 옆 사람들과 속닥이는 등 정신없는 분위기였다. 그저 마음을 울리는 훌륭한 작품을 공유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고 서로가 서로의 작품세계를 존중하는 공동체면 되는 그런 곳이었다.
'생존'이라는 상황이 창의성/예술성의 발현과 직결된다는 주장을 담은 논문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보게 된 공연이었는데, 한국계 미국인의 존재론적 불안정함이 엄청난 창의성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아직도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는 점, 미래에 대한 예측이 어렵다는 점이 한국계 미국인에게 처절하고 절실한 생존의 맥락을 부여하고 있었다. 왜 떠날 때가 되어서야 이런 단체를 알게 되었을까.
이날 나는 정말 열심히 준비했던 면접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크게 흔들린 상태였다. 독실한 기독교인 친구가 내게 와닿는 종교적 말씀들을 전하며 몇 시간 동안 진심으로 위로해 주어, 많이 진정한 채 기진맥진하여 엘에이까지 운전해 간 것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마주친 무속적 감성은 그보다 훨씬 더 내 심장 한가운데로 날아와 박히는 위로와 치유를 주었다.
한국의 공연예술철학에 대해 탐구하면서 무속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는데, 한국의 모든 예술적 요소들이 굿에서 나오기 때문이었다. 수천 년 동안 한국인의 삶 속에서 꿋꿋이 살아온 무속의 언어는 늘 내게 가장 명료하고 직관적이었다. 무속에는 모순이 많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기운이나 생각이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대상으로 구현될 때에는 모순이 없으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모순이 없는 세계관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지 못한 공간이지 않나 싶다.
이번 면접을 계기로 내가 가장 크게 고민하는 답 없는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학자로서 나의 정체성이다. 전부터 공연예술학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학문적 불안정성이 내 존재 가치의 불안정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느꼈지만, 취업 과정에서 이를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예술은 내게 가장 명확하고 확실하게 와닿는 것인데, 예술계 밖에서 예술을 그만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은 너무나 드물고, 특히 학문의 세계에서 예술이 타 학문에게 이해받으려면 그들의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번역 과정에서 예술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이 지워진다. 왜냐하면 학문과 예술은 상충되는 언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예술이 상상과 추상과 직관과 감각의 언어를 사용한다면 학문은 실증과 객관과 구체와 논리의 언어로 말한다. 예술을 '증명'하려는 순간 그건 더 이상 예술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어버린다. 예술이 담고 있는 살아있는 에너지는 전부 여과되고 건조된 껍데기만 남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은 배타적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저 예술인끼리의 자기만족으로 끝나야 하는 것일까? 나는 예술이야말로 가장 단순하고 평이한 말로 설명될 수 있다고 본다. 어떤 예술 작품의 가장 본질에 닿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나는 그것을 쏟아내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그것을 마침내 토해내듯 글로 쏟아내었을 때 그 언어에는 이론과 정보보다는 통찰이 더 크게 담겨있다. 그 언어에는 상상도 있지만 구체와 논리 또한 있다. 예술과 학문이 반드시 상충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상상이 섞여 들어가는 순간 내 글 전체의 학문적 유효성이 흔들리고 공격에 취약해진다. 그 부분마저 확실하고 객관적으로 '증명'해야만 하는데, 이를 위해 끌어오는 증명의 언어는 피상적인 영역에 머무르고 나 스스로 믿지 못하는 이론으로 탈바꿈된다.
나는 늘 상상과 추상의 세계에서 살아왔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는 조금 다른, 현실과 구체의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나 보는 세계가 나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늘 느꼈다. 하지만 취업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세상에 온몸으로 부딪힐 때가 되어서야, 까막눈처럼 도무지 보이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었던 '현실'과 '구체'가 대체 무엇인지 조금씩 깨우쳐 나가고 있다.
그래서 또다시 고민한다. 추상의 언어를 조금은 활용하는, 나를 이해하는 친구들은, 현실에 맞출 수 있는 것도 중요한 능력이니, 학문이 아무리 껍데기에 매달리는 무의미한 활동을 요구하더라도, 그 게임 안에 들어가서 같이 플레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모두 현실과 구체의 언어 또한 어느 정도 이해하는 친구들이다. 박사과정 초반 몇 년을 나는 그 언어를 이해하고 배우려 온 힘을 기울였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래서 남은 시간은 오히려 내가 가진 추상의 언어를 잘 알아보고 키워주는 데에 집중하자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런데 잊을만하면 계속 현실이 치고 들어온다. 그렇게 살아서는 이도저도 아니라고. 추상은 아직 구체화시키지 못한 게으름이며 실증에 대한 능력 부족이라고.
수업 또한 그렇다. 내 수업의 목표는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에 있다. 이는 더 많은 정보를 제대로 전달해 주는 것보다는 스스로가 이미 가지고 있는 생각의 구조를 파악하도록 돕는 형태를 띤다. 불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존재 안에 부처가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코로나와 AI의 등장 이후로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것에 대한 학생들의 의지가 눈에 띄게 떨어진 것이 보인다. 이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대학의 역할이라고 느낀다. 대학 이전과 이후 그 어느 삶의 단계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여유와 자원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학생들의 세상에 내 언어와 방식은 잘 와닿지 않고, 학교 또한 이를 원치 않는다. 학교가 좀 더 중시하는 건, 내가 어떤 이론가들의 어떤 개념을 가르쳐서, 이 학교를 졸업할 때 우리 학생들이 어떤 지식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 것인가이다. 그 또한 가치 있다고 생각하니, 그런 수업을 도저히 제공할 수 없는 나는 더욱 자괴감이 든다. 진심만 한가득인 내 쓸모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모든 일에 너무 진지하지 않아도 돼"라고 나를 정말 아끼고 경청해 주는 친구가 말해주었다. 모든 존재에게서 부처를 보며 살다 보면 내 에너지는 금세 바닥이 나고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된다. 절전모드가 없는 내 엔진은 늘 풀가동 상태라 어떤 친구는 언젠가 픽하고 전원이 나가버릴까 걱정해 준다.
그렇게 자포자기가 눈앞에 있을 때마다 야속하게도 희망이 한 줄기 찾아와 나를 또다시 움직이게 한다. 지난 3개월은 꿈같은 시간이었다. 나보다 더 진심으로 가득 찬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진심을 믿지 않는 두 지도교수님의 다소 강압적인 논문 마무리 과정에 좌절하던 차에 만난 햇살 같은 사람이었다. 나보다 열 살은 많은, 그리고 학자로서 인정받고 능력 있는, 그런 현실에 몸담고 있는 사람인데, 뛰어난 능력과 명석한 두뇌를 가졌으면서도 지극히 순수한 사람이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순수함이 남아있을 수 있을까,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교수님이 눈앞에 계셔도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교수님은 전혀 추상과 상상과는 거리가 먼, 구체적 세상에서 살아가시는 분이지만, 그래도 그분의 존재가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것을 보면서 순수와 진심에 대한 내 믿음을 이어나갈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누군가는 진심을 믿을 수 있는 것 자체가 특권이며 사치라고 말하지만, 이를 지킬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면 지킬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지키고 싶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각자 생긴 대로 살아가는 거니까.
한 시도 쉬지 않고 달려왔건만 막상 취업 시장에서는 내세울 게 별로 없는 지금의 나를 보며, 스스로에게 충실하게 살아오는 사치와 게으름을 누린 대가를 받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미련 없이 껍데기 없이 본질만으로 살아가려는 내 삶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느리게 가는 거겠지. 내가 너무 별로로 느껴질 때면 이제는 거기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지 않고 그냥 별로면 별로인 대로, 위축되면 위축된 대로, 자신감 없으면 자신감 없는 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취업 과정에 들어선 후로 내 삶의 모든 순간이 나만으로 가득차서 질식할 것 같고 스스로가 혐오스럽지만 이 또한 겪어야 지나가겠지 싶다. 오늘은 잔뜩 쌓인 일을 뒤로 미루고 커피 한 잔과 따뜻한 햇살과 미샤 골드버그의 시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는 시간과 글 쓰는 행복을 누리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