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개 새의 죽음과 대면의 호러
무엇이 우리를 외면하게 하는가
며칠 전 거실로 나왔다가 연결된 패티오(베란다)에 새가 죽어있는 것을 보았다. 길거리나 차도에서 작은 동물들의 시체를 종종 봤었기 때문에 익숙한 광경일 줄 알았는데, 새를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씻으러 다녀온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일인데 그새 개미떼가 새를 둘러싸고 있었다. 어쩌지 싶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무언가 옮을 수 있으니 절대 맨손으로 만지지 말고 땅에 묻어주거나 봉지에 잘 담아서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적혀있었다. 내 땅이 아니라 묻어주긴 뭐해서 봉지에 담아 버리려는데, 이건 아니지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 새는 어디서 왔으며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나는 지금 황당한 죽음을 맞이한 이 새를 어떻게 보내주어야 할까. 어떤 기도를 해줘야 할지 몰라 그냥 눈을 감고 새가 깨끗한 모습으로 따뜻하고 포근한 품에 안겨 편안해지는 상상을 했다. 개미를 쫓아내고 가만히 새를 들여다보니 유리문에 부딪혀 살짝 꺾인 목을 하고 평온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아주 섬세하게 잘생긴 새였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몸을 조심히 쓸어 담아 비닐봉지에 넣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나는 마침 죽음과 삶에 대한 내 철학을 담은 연구 계획서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죽음이 삶의 한 부분이고, 삶도 죽음의 한 부분임을 받아들이는 것의 중요성과,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는 여러 가지 생각의 전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갸륵하게도 죽음과 조금은 친해진 줄 알았는데 새의 시체가 너무 충격적으로 다가오면서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왜 이번 새는 내게 다르게 다가왔을까.
사실 그동안 죽음과 엮인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다. 트라우마 연구를 한다며 학살의 장소와 흔적을 찾아가 보고 듣고 느끼며 연구해 온 것도 그러하지만, 친구가 운전하는 차가 가정집 고양이를 치어 고양이가 그 자리에서 뇌진탕을 일으키며 죽은 일이 있었다. 목에 예쁜 리본을 두른 고양이였다. 그때 나는 조수석에 타고 있었는데 고양이의 피가 웅덩이를 이루고 그 몸이 발작을 일으키며 죽어가는 5-10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친구의 상태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때에도 이웃집 아저씨들이 삽을 들고 나와 시체 처리를 해줬었다.
그래서 패티오의 새는 내가 죽음을 제대로 대면하고 내 손끝으로 그 무게를 느껴야 하는 첫 사건이었다. 길가에서 보이던 동물의 시체는 안타까우면서도 불쾌하다는 느낌이 들어 곁눈질로 보면서 지나다녔는데, 조용히 새를 들여다보니 그 모습이 생각보다 불쾌하거나 무섭지 않았다. 왠지 그렇게 가만히 들여다봐주는 게 어떤 기도보다 새를 더 크게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이라 느껴졌다.
그동안 트라우마 연구를 하면서, 죽음과 아픔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외면'이 너무 답답하고 비겁하게 느껴졌다. 세상의 너무 많은 문제가 외면에 의해 일어나고 있었다. 타인에 대한 외면, 스스로에 대한 외면, 진실에 대한 외면. 대면할 수만 있다면 소통과 치유와 연대가 저절로 일어날 수 있는데 대면이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 결국 용기의 문제로 넘어오게 되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더 용감하고 어떤 사람들은 더 비겁해질까. 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내게는 대면이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기에, 비겁함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기가 너무 어려웠다. 비겁은 자꾸만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고 비겁하지 않게 사는 것이 내 삶의 지향점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오랜만에 페이스북에 들어갔다가 내 과거 게시글들을 보게 되었다. 꽤나 열정적으로 오랜 기간 공연 리뷰를 올려놓았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점점 기억에서 잊혀진 과거가 늘어난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위안부 관련 연극을 보고, 외면하고 싶었으나 보러 갔고, 그만큼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놀라웠다. 사실 그렇게 열정적으로 극을 보러 다니고 진지하게 분석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지금 와서는 연극이고 공연이고 웬만해선 그저 그렇게 느끼며 일이라고 치부하고 있었는데, 그때의 시간들이 기반이 되어 더 깊은 주제로 나아가고 있는 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부끄러운 깨달음이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외면해 왔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가장 큰 것은 교육과 언어라고 생각했다. 교육은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더 자세히 알아차릴 수 있게 도와주고, 언어는 그것을 표현해 낼 수 있도록 해준다. 내 눈앞에서 내가 대면하고 있는 것을 추상적인 어떠한 인상으로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아주 미세하고 정확하게 소화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불쾌함도 세밀하게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해가 되는 불쾌함과, 생산적이고 아름답기마저 한 불쾌함을 구분해서 볼 수 있게 된다. 어떤 분야에서 훈련을 받았는지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지지만 그게 무엇이든 학문은 좀 더 대상을 잘 보고 그와 주체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도와준다.
특히 인문학이 가진 능력이다. 인문학이 무엇인지, 학문이 무엇인지 생각했을 때 나의 답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유창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섬세한 사고를 하고 또 대면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더 맞는 말이어서가 아니라 더 잘 뜯어보고 표현할 수 있어서이다. 그 '유창하게'는 언뜻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처럼 보이지만 지난한 훈련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전문적 능력이다. 건반 위의 손가락이 자유로워질 때까지 셀 수 없는 시간을 피아노 앞에서 보내야 하는 것처럼, 내 무의식과 의식과 표현이 연결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의 집중도 높은 훈련이 필요하다.
예술 또한 삶의 다양한 영역에 대한 진솔한 소화와 표현의 방식이다. 글보다 추상적이고 직관적인 영역에 있어서 종종 이를 글로 풀어주는 평론가를 필요로 한다. 그중 요즘 나를 흥미롭게 하는 건 공포/호러라는 장르다. 호러야말로 사회의 가장 정확하고 진실된 현주소이자 본질적 영역에서의 단면을 담고 있는 장르라고 생각해서다. 철저히 외면되는 것들을 담고 있어서 고맙고 그래서 호러의 흥행이 늘 흥미롭다.
호러란 그야말로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가차 없이 무너뜨리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가장 보고 싶지 않아 하는 것, 즉 불안한 것, 무서운 것, 피하고 싶은 것을 눈앞에 들이대기 때문이다. 주로 이런 건 회피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추상적인 형태로 사회에 존재하는데, 호러 이야기들은 그 추상에 구체적인 언어를 부여해서 의식의 세계로 끌어온다. 언어화를 통해 그 실체를 드러냄으로써 불안을 잠식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호러는 영화로 가장 각광받을 수 있지 않나 싶었다. 스크린 너머의 일이니 안전이 보장되어 있다는 안심을 주니까. 나와 떨어진 일이니까.
하지만 한편으로 외면하던 것들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구현될 때 그 공포는 스크린 너머에만 머무르지는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공포영화를 정말 못 보는데, 공포영화를 보고 나면 그 잔상이 너무 오래 남기 때문이다. 나는 감각이 너무 예민한 편이어서 그에 대한 자극을 극대화하는 공포영화는 과부하가 되곤 한다. 사실 잔인하거나 징그러운 건 크게 상관없고, 귀신 소재만이 극도로 무서운 걸 보면 역시 현실에 대한 침투력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나는 귀신을 믿는다). 감각의 기억은 내 몸에 와닿아 오래 살아있으니까 말이다.
이렇듯 늘 외면되는 것, 회피되는 것의 공포를 불가리아 출신의 프랑스 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 1941-)가 '아브젝시옹(abjection)'이라는 개념으로 분석한 바 있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 것, 살아가기 위해선 음식을 먹는 것뿐 아니라 분변도 만들어지는 것, 브라만이라는 카스트가 유지되기 위해선 불가촉천민이 있어야 하는 것 등, 동전의 양면 같은 개념 중 한쪽만이 시야에서 제거되고, 외면되고, 지양되는 것과, 동시에 그 존재의 필수불가결성이, 어떠한 걷잡을 수 없는 '공포'의 존재로 자라나 우리 삶에 자리하게 되는 것에 대해 설명하는 이론이다.
그래서 공포는 상당히 사회적이고 학습적이기도 하다. 일례로 일본의 유명한 그로테스크 춤인 '부토'가 주제였던 대학원 수업 때, 학생들은 일제히 너무 무서웠다며 잡담하기 바빴다. 내가 궁금한 건 그 공포가 어디서 오는지였는데,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고 그 질문을 피했다. 난 그 춤이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 부토의 배경을 보면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패전한 일본의 고통을 담으며 나타난 장르인데, 그래서 좀 더 제국적인 맥락이 들어가 있지 않았나 싶었다(참고로 일본의 유명한 공포영화에 나오는 귀신들이 부토의 분장을 하고 부토 무용가에 의해 연기되었다고 한다). 미국인에게 주는 공감과 울림이 한국인에게 주는 것보다 많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한편 작년 UC 어바인에서 감독님을 초대해 상영한 한국 공포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2010)을 보며 미국 학생들은 웃고 박수치느라 바빴지만 나는 조금도 웃을 수 없었고, 그 영화가 보여준 현대 한국 여자의 처참하고 처절한 현실의 모습이 가슴 찢어지게 슬퍼서 끝나고 30분을 오열하면서 앉아있었다. 눈물 짜내는 신파가 아니라 대면 때문에 진정이 안 될 정도로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내게 정말 깊은 감명을 준 영화를 꼽으라면 한국 공포영화 몇 편을 들 수 있다. 명작이라는 감상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아픔과 병폐와 그 본질을 조금도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들여다보며 표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작품들의 감독분들께 엄청난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이 이야기를 풀어내기까지 얼마나 대면하고 소화해 내느라 끙끙 앓았을까 싶다. 그러면서도 눈에 보이는 것들을 도무지 외면할 수가 없었을 것 같다. 몇 가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만 글이 길어져 다음을 기약한다.
그래도 작품 외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을 몇 가지는 이야기하고 싶다. 공포영화는 아니지만 일본의 <라쇼몽>(1950)이라는 유명한 영화가 있다. 영화는 한 사건이 그 전달자에 따라 내용이 완전히 다르게 서술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죽은 사람이 얽혀있을수록 더 산 사람들에 의해 마음대로 재해석된다는 것도. 내게 감명 깊었던 건 감독인 구로사와 아키라의 생전에 <라쇼몽>의 해석을 두고 관객-평론가 vs. 감독의 생각이 대치하는 바람에, 유명 감독임에도 일본 내에서 미움을 받다가, 그가 고인이 되고 나서야 일본 사회가 그에게 마음껏 의미부여를 하면서 사랑받는 감독으로 추대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영화의 내용과 그의 삶의 내용이 똑같이 겹친 걸 보면 그는 정말 통찰력 있는 감독이 아니었나 싶다.
또 다른 사례는 <곡성>(2016)이다. 뼈 때리는 진실을 가감 없이 다룬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모호함'때문에 관객 평이 극단적으로 갈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영화는 대놓고 삶 속에 존재하는 모호함을 받아들이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받아들이지 않는 것의 병폐와, 그리고 받아들인다면 어떤 모습으로 그 모호함과 함께 나아가야 할지까지, 사실은 상당히 희망적으로 그리고 있다. 나아갈 길이 있다고, 방법은 있다고 보여주고 있다. 다만 '현혹되지 말라'라고 포스터에 써놓았는데, 외부에서 지정해 주는 명확한 옳고 그름과 가치판단, 원인-결과적 상황 판단, 그에 기반한 완벽한 문제 해결에 대한 환상이 바로 그 현혹이다.
대면에서 멀어지는 길에는 외면을 쉽게 만드는 다양한 사회적 장치들이 있다. 현혹은 그중 가장 강력한 장치이므로 포스터에 적힌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토론의 방향이 '그래서 정확히 뭔데' '모호함은 무책임의 다른 말일뿐이다'라는 불편감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다시 한번 감독님의 통찰에 감탄했다. 오페라 <나사의 회전> 리뷰에서도 적은 적 있지만 공포라는 장르는 주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나'보다는 사회의 가장 추상적이고 모호하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진실한 단면을 비유적으로, 우화처럼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객관성을 따지려 드는 것보다 주관적으로, 상상적으로 접근해야 더 명확히 보이는 것 같다. 물질성과 객관성에 현혹되는 순간 공포영화의 대면의 효과는 반감된다고 느낀다.
대면이란 정면으로 마주하기 전까지 극강의 상상을 불러일으키며 공포스럽게 하지만, 막상 눈을 뜨고 마주했을 땐 웬만하면 그보다 괜찮다. 끝없이 커져나가는 상상을 끝내주고 좀 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내 안의 중요한 부분과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대면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제대로 대면할 수 있는 자원이나 환경이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대면은 오히려 트라우마의 재생산에 기여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대면함으로써 더 시달리기도 한다. 외면과 대면에 대한 나의 고민은 아직 진행 중이다. 내 패티오에 찾아와 준 새를 기억하며 조금 더 대면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