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과정 동기인 챤루와 나는 함께 졸업한다는 드문 일을 해냈다. 매년 두 명만 입학하기에 서로에게 유일한 동기였다. 각자 커다란 고민과 아픔을 가지고 입학한 우리는 말 못 할 6년의 시간 끝에 많이 성장했고 그 성장의 끝자락에서 마음과 마음으로 만나 특별한 믿음과 애정이 어린 관계를 쌓게 되었다.
그리고 챤루는 졸업과 동시에 좋은 자리에서 교수로서 새로운 항해를 시작하게 되었다. 6년 만에 처음으로 진정한 휴식을 누리게 된 우리는 지난 일주일 챤루가 우리 집을 방문하는 동안 함께 울고 웃으며 그 여유를 서로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우리의 연결을 더욱 값지게 만들어 준 페더와의 대화가 있었다. 페더는 챤루의 고양이인데, 애니멀커뮤니케이터 그레이스 님을 통해 진행한 페더와의 대화가 너무 큰 감동과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레이스 님과는 이전에도 몇 번 상담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애니멀커뮤니케이터라고 하면 낯설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국무속을 공부하던 내게는 동물과 인간의 대화를 중재하는 직업의 존재가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대화를 진행하면서 그간 놀라운 일들이 있었기에 고양이와의 대화는 늘 설레는 일이었다.
챤루에게 페더에 대해 물어봤을 때 챤루는 페더에게 '감히' 본인을 엄마 또는 언니 등 어떠한 상급자의 위치를 가정하지 않게 된다고 했다. 우리는 동료이고 친구다, 그리고 페더는 깨달은 존재이자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뭔진 몰라도 그 고양이는 매우 특별하며 '감히' 내 멋대로 페더를 대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페더는 사랑이 많은 고양이, 그리고 모두가 사랑해 마지않는 고양이로 유명하기에 내 머릿속에 페더의 정확한 느낌이 잘 그려지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레이스 님과의 대화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레이스 님은 페더와, 나는 그레이스 님과, 챤루는 나와 대화하는, 그런 두 명의 중재자를 낀 두 존재의 만남이었다. 다음은 상담 내용 전문이다.
두 존재가 닿기 위해서 두 사람이 중재하는 동안 우리 네 명은 함께 진정한 사랑의 깊이를 몸으로 경험했다. 깊은 사랑은 그 존재만으로도 주변에 치유와 울림과 가르침을 준다고 느껴서 블로그에 공유하기로 했다. 마침 나는 조건 없는사랑의 형태와,그 사랑이 가진 힘에 대해 한참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 만연한 것은 느끼기 어렵다고 한다. 기대, 애착, 집착, 가정, 소유욕에 가려지지 않은 사랑의 본질을 경험하고 스스로가 가진 그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되면, 이리저리 가려진, 하지만 우리를 늘 지탱하고 있는 사랑의 힘을 더 잘 느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사랑의 반대말이 무관심이라고 들었는데, 어쩌면 진정한 사랑의 모습은 무관심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현대인이 동물에게서 받는 치유는 언어가 필요하지 않은 동물이 가장 단순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 눈빛과 몸짓과 존재 자체로 - 사랑을 전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일 년 반동안 임시보호했던 고양이들이 원래 집사였던 친구네로 돌아간 이후, 나는 그 고양이들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을 더 선명히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엔 그레이스 님과의 대화가 있었다. 포뇨(한 고양이의 이름이다)가 나를 무척 좋아하는 것은 알았지만 얼마나 섬세하고 정확하고 깊게 나를 느끼고 사랑해주고 있는지, 그레이스 님과의 대화에서 알았기 때문이다. 꾸릉거리며 책상 위로 신나게 뛰어올라와 나를 빤히 바라보던 것, 내가 포뇨를 부르던 억양과 목소리, 하나하나 짚어내며 그 순간들을 얼마나 즐겁게 느끼고 있었는지 알려주었었다. 그리고 원래 집사와 대화하기 위해 다시 연결했을 때, 포뇨는 내 이름이 언급되자마자 지금 집에 걸려있는 장난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 방에 늘 걸려있던 장난감이었다. 포뇨는 그 장난감을 보면서 나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표지의 사진은 페더가 아니라 또 다른 임시보호 고양이 토토가 내게 머리를 기댄 모습이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갈 때마다 토토와 포뇨는 잘 지냈냐고, 반갑다고 온몸으로 표현해 준다.)
너무 큰 사랑을 경험할 때 내 몸은 바로 아파버린다. 무협지로 비유하자면 과분한 영약을 덥석 먹어버려 그 기운이 독소가 되어 날뛰는 기간인 것이다. 그 영약을 잘 소화하고 나면 한 단계 더 단단해지고 깊어지게 된다.
페더와 대화 후 나는 정말 많이 아팠다. 그리고, 챤루와 대화하면서도 많이 아팠었다. 챤루에게는 많은 일들과 많은 아픔이 있었고 그는 우리가 같이 지내는 동안 그 아픔의 거친 모습을 솔직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공유해 주었다. 아주 가까이 와닿는 그 아픔의 질감이 생생했다. 그리고 페더를 통해, 그 아픔을 함께 느끼는 그 순간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픔에도, 사랑에도 다양한 형태와 속성이 있고, 모든 사랑이 곧 고통이고 모든 고통이 곧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사랑과 아픔 사이에는 종이 한 장만큼의 간격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레이스 님의 사랑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통역 때문에 시간도 더 걸리고 불편한 부분들이 많았음에도 상담을 마무리하며 '페더와 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서 감사하다'라고 말하는 분이기에 우리는 서로 더 잘 닿게 된다고 생각한다. 페더의 말대로, 사랑은 말로 할 수 없는, 가슴과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것이고, 동물과 연결하는 그 순간은 모두 사랑의 순간들이라, 느낀 점을 늘 최대한 전달해 주시는 그레이스 님께 정말 감사하다. 토토와 포뇨, 페이(원래 집사)와 챤루, 나와 그레이스 님.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