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의 인간화를 통해 인종 정책의 불평등을 드러내다
지난 포스트에서 1947년작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안에 담긴 노예제 이후 사회의 모습에 대한 회의감에 대해 설명했었습니다. 이번에는 그간 접하기 어려웠던 흑인의 시선에서 진정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다룬 1959년작 <태양 속의 건포도>(A Raisin In The Sun)을 보며 인종과 분리될 수 없는 미국 근대 희곡의 속성을 이해해 보겠습니다.
극은 상당히 열악한 삶의 모습에서 시작합니다. 아침의 시작은 소파에서 자던 아이가 전체 아파트가 공유하는 욕실을 사용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 터덜터덜 나가는 모습으로 열립니다. 이어지는 다른 가족의 대화에서 이들이 무언가를 엄청난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월터와 루스 부부를 중심으로 월터의 어머니 레나와 여동생 베니타가 이 집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기다리는 것은 이날 도착하기로 되어있는 생명보험금입니다. 월터의 아버지이자 레나의 남편이 최근 과로사한 것으로 보이며, 그 보험금이 이들에게 평생 가지지 못했던, 현실의 굴레를 깰 수 있는 기회라는 희망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특히 월터가 그 돈을 사업 투자금으로 활용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각 가족 구성원은 아주 입체적인 인물입니다. 강인한 가장으로서 레나는 현명하고 단단한 모습이지만, 다소 경직된 권위로 인해 아이들과 갈등을 빚습니다. 동시에 결정적인 순간에는 미성숙을 인지함에도 아이의 뜻을 따라줌으로써 극 후반의 비극에 일조하게 됩니다. 루스는 성실하고 선한 모습의 아내이자 어머니인데요. 나아지지 않는 환경 속 끝나지 않는 가족 뒷바라지에 지쳐 있습니다. 베니타는 의대에 다니는 똑똑하고 지적인, 진취적인 인물입니다. 흑인 인권 문제와 성 차별 문제에 대한 의식이 많지만, 하고 싶은 것을 즐기면서 하고 싶어 하는 자기중심적인 태도와 아직 어린 나이로 인해 그 의식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월터는 가장 꿈에 부풀어 있는 인물로 볼 수 있는데요. 흑인의 사회적 상황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돌파구가 있어야만 한다고 믿고, 아버지의 보험금이 그를 위한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가족 구성원들 중 누구도 그의 비전을 공유하지 않자, 미래에 대한 모든 희망을 잃고 단단히 꼬이고 뒤틀린 모습으로 급격히 병들어 갑니다. 그의 상태가 너무 나빠지자 결국 레나는 보험금을 월터에게 주는데, 결국 월터는 믿었던 투자자에게 배신당하고 모든 돈을 잃게 됩니다. 그 돈에는 베니타의 의대 등록금도 있었기에, 이 일로 베니타의 미래 또한 무너지게 되지요.
다만 레나가 돈을 월터에게 모두 주기 전, 제대로 된 주택을 계약한 바가 있습니다. 너무나 열악했던 주거 공간이 마당 있는 집으로 바뀐다는 미래에 레나와 루스는 희망에 부풉니다. 다만 걸리는 것은 이 주택이 클라이본 파크라는 백인 동네에 있다는 것입니다. 흑인 동네의 집은 정부의 과세와 불균형한 부동산 정책으로 훨씬 비쌌던 것입니다. 와중에 클라이본 파크 동네 위원회에서 칼 린드너라는 사람이 파견되어, 흑인 가족이 그곳에 이사 오는 것을 막고자 더 많은 돈을 주고 집을 되사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투자금을 날린 월터는 린드너에게 연락해 이 제안을 수락하려고 하지만, 가족의 도움으로 흑인으로서의 자존심을 바로 세우고 제안을 거절합니다. 가족이 이사를 준비하면서 극은 마무리됩니다.
이걸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극 내내 인물들은 희망과 좌절의 반복을 경험합니다. 각 인물들이 다 다른 꿈을 가지고 있기에, 그 희망과 좌절은 여러 면에서 비추어지지요.
극작가 로레인 한스베리(Lorraine Hansberry, 1930-1965)의 <능력 있는 젊은 흑인이라는 건>(To Be Young, Gifted, and Black)이라는 다른 글에서도 읽을 수 있듯, 극작가 본인이 출중한 능력의 인물이었고 그런 모습이 베니타에게 많이 투영된 모습으로 보입니다. 한스베리는 중산층 흑인 가정에서 태어나 고등 교육을 받았고, 실제로 당시 막 시작하던 대대적인 흑인 인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운동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베니타의 친구이자 연인 관계로 나오는 아사가이와 조지라는 두 인물에 한스베리의 비전이 들어있는데요. 베니타의 대학 동기인 조지는 흑인 대부호입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세련된 흰 양복을 차려입고, 베니타에게 좀 더 매력적이고 순종적인 여성의 모습을 요구합니다. 흑인 인권에 대한 베니타의 고민을 지겹게 생각하며, 대학 교육이란 학점을 받아 취업하기 위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베니타의 가족은 경제적 이유로 그와의 결혼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지만, 베니타는 조지가 아닌 아사가이를 선택합니다. 아사가이는 나이지리아에서 온 유학생이며, 베니타가 알고 싶지만 알기 어려웠던 아프리카의 진짜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알려줄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베니타의 의대 졸업이 좌절된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이 무얼 하고 싶은지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언제나 희망은 있다는 가르침을 줍니다. 이처럼 다양한 경제적, 지적, 문화적 배경의 흑인 인물들은 기존에 비하적이고 단면적인 이미지로만 비쳤던 흑인을 효과적으로 인간화합니다. 러닝타임이 세 시간에 육박하는 이 극은 상연된 것보다 대본으로 읽는 것이 늘 훨씬 좋다고 느꼈는데요. 담긴 시선들과 생각의 깊이가 워낙 풍부해서 그걸 온전히 느끼기에는 디테일을 좀 더 잘 알아챌 수 있는 글의 형태가 효과적인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태양 속의 건포도>는 초연을 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젊은 흑인 여성의 흑인 서사에 투자할 극장을 찾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결국 도박하는 셈 치고 빚을 낸 채 일단 올린 공연이 즉각적인 반응을 얻고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상영되는 극 중 하나가 되었는데요. '흑인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구나'라는 백인의 시각과, '드디어 진짜 흑인 서사가 나왔다'라는 흑인의 입장을 모두 충족시킨다는 평이었습니다. 그래서 극의 다양한 입체적 인물들과 흑인 문제에 대한 여러 시각의 공존은 역사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35세에 요절한 한스베리는 생애 두 개의 작품밖에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흑인 극중 가장 잘 알려진 <태양 속의 건포도>는 또한 가장 잘 알려진 흑인 극작가 어거스트 윌슨(August Wilson, 1945-2005)의 작품이라고 종종 착각되곤 합니다. 한스베리는 비범하고 뛰어난 젊은 흑인 여성이었고, 심지어 사적인 공간에서는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탐구하기도 했기에, 현대인에게도 많은 귀감이 되는 인물입니다. <태양 속의 건포도>의 역사성에도 불구하고, 50년이 더 넘은 지금에야 한스베리가 출중한 인물로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하고 있는 걸 보면, 능력 있는 젊은 흑인 여성의 한을 표현한 한스베리의 글에는 깊은 통찰이 담겨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태양 속의 건포도"라는 극의 제목은 무얼 의미하는 걸까요? 극 내내 건포도는 등장도 안 하는데 말이죠.
이 표현은 랭스턴 휴스(Langston Hughes, 1901-1967)의 1951년 시에 등장합니다:
What happens to a dream deferred? 지연된 꿈은 어떻게 될까?
Does it dry up 말라비틀어져 버릴까
like a raisin in the sun? 태양 속의 건포도처럼?
Or fester like a sore— 아니면 상처가 곪듯이-
And then run? 흘러내릴까?
Does it stink like rotten meat? 아니면 썩은 고기처럼 악취를 풍길까?
Or crust and sugar over— 아니면 설탕에 덧대어져
like a syrupy sweet? 달달해질까?
Maybe it just sags 어쩌면 그냥 늘어질 수도
like a heavy load. 무거운 짐처럼.
Or does it explode? 아니면 폭발해 버릴까? (필자 의역)
시의 제목은 <할렘>입니다. 이 시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요?
근대미국희곡은 '아메리칸드림'이라는 주제로 계속해서 귀결된다고 설명했었습니다. 시에는 '꿈'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지요. 그리고 그 꿈의 좌절, 또는 영원한 지연에서 오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막함 또한 느껴집니다.
잠시 역사를 짚어보겠습니다. 노예제 폐지부터 시작합니다. 19세기 후반 노예제가 폐지되고, 남부에는 '짐 크로우' 법이라는, segregation(인종 분리) 법이 등장합니다. 공적, 사적 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의 공간을 분리함으로써, 더 이상 노예가 아닌 흑인을 혹시나 백인에 의해 받을 여러 가해 행위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이었는데요. 실제로는 흑인의 인권을 위함이 아닌, 백인의 특권을 유지하는 법이었습니다. 공식적으로 노예제는 폐지됐지만, 다른 형태로 인종에 따른 공적, 법적 차별과 통제가 계속된 것이지요. 이어진 20세기 초반, 주로 남부에 거주하던 흑인들은 전국 각지로 이주하게 됩니다. 'The Great Migration'이라고 불리는 대대적인 인구 이동이었습니다. 영거 가족도 그에 따라 북부의 시카고에 자리 잡은 가정으로 나오지요.
이렇듯 흑인들이 이주함으로써, 그리고 노예제가 있었던 남부가 아닌 북부에 뿌리를 내리면서, 어떠한 희망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제는 드디어 노예가 아닌 온전한 인간으로 살 수 있다는 그런 희망이었습니다. 그에 따라 1920년-1930년 '할렘 르네상스'가 찾아옵니다. '할렘'이라는, 흑인 인구가 많은 뉴욕의 동네에서 다양한 흑인 예술이 탄생하고 번창한 시기를 뜻합니다. 그간 쌓여온 흑인의 '한'이 드디어 자유롭게 예술적으로 분출될 수 있는 시기를 맞은 것이지요. 재즈와 블루스가 이때 등장하여 널리 퍼지게 된 것입니다. 할렘 르네상스는 전반적으로 평화롭고 아름답고 낭만적인 분위기의 감성을 보여줍니다. 백인들로부터도 인기를 얻으면서 드디어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아직 있었거든요. 할렘 르네상스는 아직까지도 문화적 정체성이나 특질 없이 방황하던 백인들에게 '이게 바로 미국이구나'하는 문화적 풍성도와 예술적 충만감을 선사했습니다. 동시에 예술의 주 관객인 많은 중산층, 상류층 백인들에게 신선하고 이국적인 시골 소작농의 삶, 도시 최하층의 삶을 흥미를 가지고 엿볼 수 있게 하는 창구였습니다.
이렇게 융성했던 할렘 르네상스는 대공황과 함께 무너집니다.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보았듯 중산층 백인마저 견딜 수 없을 정도였으니 흑인에게는 오죽했을까요. 아메리칸드림, 즉 기회의 평등, 인간적인 삶, 노력과 성실에 비례하는 보상이라는 꿈이 모두 허상에 그침을 깨닫게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백인과의 공존을 꿈꿨지만 실은 그들이 흑인의 예술을 훔쳐 경제적 이득과 사회적 인정을 빼앗아 얻고 있었으며, 그들의 관심이 흑인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나 지지가 아니라는 현실을 여실히 마주하게 됩니다. 백인 사회는 그들의 특권을 지키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조금도 자원을 내어주거나 공유할 생각이 없었거든요. 잔뜩 꿈과 희망에 부풀었던 할렘이 미래에 대한 기대를 잃고, '태양'으로 비유되는 희망에 잡아먹혀 말라비틀어져 버린 모습을 표현한 것이 랭스턴 휴즈의 <할렘>입니다. 태양은 계속 내리쬐는데, 건포도의 미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요? 썩어버릴까요, 설탕에 코팅되어 달콤한 건포도로 다시 태어날까요, 아니면 폭발해 버릴까요?
그렇게 회복기를 거치고 두 번째이자 본격적인 흑인 인권 운동이 시작한 것이 50년대 후반-60년대입니다. 할렘 르네상스로부터의 느낀 점을 반영하여 이번에는 좀 더 공격적이고, 비타협적이고, 강한 색채를 띤 운동이었습니다. 이때부터는 공존이 아닌, 흑인에 의한, 흑인에 대한, 흑인을 위한 이야기들이 생산되고 공유됩니다. 마틴 루터 킹도 이때의 인물인데, 그만큼 흑인 위주의 시각을 발전시켜 나가면서도 평화적인 방법과, 아미리 바라카, 말콤 X로 대표되는 공격적 방법을 택한 다양한 방향성의 움직임들이 있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의 "I Have a Dream" 연설은 아주 유명하지요. 이 연설에서 킹은 '아메리칸드림'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노예제와 인종차별이 인간의 평등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미국의 건국이념을 위반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60년대의 굉장했던 흑인 인권 운동 이후에도 인종을 근거로 한 법적인 제재들은 계속되고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아메리칸드림'의 달성은 지금까지도 무기한 연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은 또다시 이상을 향해 움직이고, 또 실망하는, 그런 고리를 반복하고요. '아메리칸드림'은 영거 가족을 지탱하고 반짝반짝 빛나게 하고 세상의 작은 변화를 불러일으키면서도, 또 현실과의 괴리와 불가능성으로 인물들에게 어마어마한 좌절과 시련을 줍니다. 이처럼 끝없는 실망과 환멸을 안겨주면서도 계속해서 추구되는 것이 '아메리칸드림'의 속성입니다.
여기서 극의 주요 장치인 흑인 동네-백인 동네의 구별과 이사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내용은 극작가 한스베리의 실제 경험에서 나온 것인데요. 부유한 고학력 가정에서 태어난 한스베리는 8살에 백인 동네로 이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웃들로부터 수많은 차별과 폭력을 경험했다고 해요. 집안에 때때로 창문을 깨고 벽돌이 날아들어올 정도였다고 하니까 말입니다.
앞서 The Great Migration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노예제가 없던 북부로 이사 오면서 흑인들은 남부와는 다름 삶을 기대했지요. 하지만 북부에서는 주거법을 통해 실질적인 인종 통제를 시행합니다. 녹색, 청색, 황색, 적색으로 주거 공간을 나누어, 녹색을 가장 안전한 곳으로, 적색을 가장 위험한 곳으로 분류하여, 신용에 기반한 다양한 주택 융자 등의 지원을 거주 지역에 따라 제한하게 됩니다. 당시 미국은 전국적으로 suburb('교외')라고 하는, 중산층 미국 가정을 교외 지역에 뿌리내리게 하는 정책을 밀고 있었습니다. 교외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자원들은 녹색으로 표시된 지역에 몰아주었고요. 외국인이나 타인종이 한 명이라도 섞여 있다면 그 지역은 빨간 지역으로 분류되곤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자원의 분배와 개인의 자산의 정도 측정이 주거지를 기반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거주지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데요. 집이 어디인지에 따라 교육기관(학교)과 의료기관의 질이 결정될뿐더러, 경찰과의 관계, 즉 통제 정도 또한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 다양한 거주 지원이나 복지 정책을 시행해도, 신용 점수가 최저일 수밖에 없었던 흑인들은 그런 지원 혜택을 누릴 수가 없었고,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상 좁혀지지 않는 부의 양극화 현상, 즉 인종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의 지금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인종 통제가 거주 지역과 신용 정도라는, 언뜻 보면 객관적이고 평등해 보이는 경제 지표들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많은 북부 백인들은 인종 차별의 존재에 무지했습니다.
다시 극으로 돌아오면, 한스베리의 부모님은 흑인 인권 운동에 적극적인 분들이었고, 특히 아버지가 강력히 밀고 나갔던 주거 문제 법률 개정은 대법원까지 가게 되어 역사에 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의지를 가지고 싸워 온 아버지도 결국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흑인의 자리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멕시코로 이민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한스베리가 극에 진심 어린 문제의식을 담아 녹아내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종종 극의 결말을 희망적이다, 다행이다라고 해석한 의견들에 한스베리는,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뻔한데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없다'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1959년은 60년대 흑인 인권 운동의 본격적 시작 이전, 시대상의 변화와 많은 움직임들이 이미 시작된 시기였지요. 상황이 바뀌려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월터의 생각, 그리고 레나와 월터-베니타 사이의 비전의 차이는 이렇듯 아주 커다란 사회의 변화가 임박했음을, 아니 이미 도래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 이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과연 아메리칸드림은 이루어졌을까요, 또다시 좌절되었을까요? 만약 좌절되었다면 그다음은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요? 앞으로 다루는 극들은 계속해서 변화하면서도 또 변화하지 않은 상황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