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강사일기

제주 학회에 다녀왔다

by 로리

제주 학회에 다녀왔다.

국제학회는 처음이었는데, 비판적 섬 연구라는 주제로 올해 제주에서 한다기에, 그리고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이라는 아주 유명한 학계 인사가 방문한다기에 신청해서 가게 되었다.


내 연구는 어느샌가 제주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번 학회를 계기로 제주의 '섬'성에 대해 생각해 보면 재밌을 것 같았다. 자연스레 내 연구가 제주로 향하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압도적으로 눈에 띄는 뛰어난 연구와 분석과 이야기들이 제주에서 나오고 있다는 걸 보았기 때문이 크다. 그래서 이번 학회에서는 또 얼마나 멋진 사람들을 만나 설레는 이야기들을 들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기대가 큰 건 늘 문제다. 하지만 이번 학회는 특히나 실망스럽게 다가왔는데, 매년 장소를 바꿔 개최되는 이 국제학회가 올해 제주대학교에서 한다는 건 제주의 '섬'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 또 이야기해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개회사부터 시작해서 학회 내내, 학회가 펼쳐지고 있는 제주라는 공간 자체에 대한 그 어떠한 레퍼런스도 없었다. 제주에 대해 말할 건 이미 너무 차고 넘치는데, 자료도 분석도 다 준비돼 있는데... 왜 이토록 이 기회를 사용하지 못했을까? 참여자 대부분이 제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그냥 한국이라서, 스피박이 와서, 오기로 한 경우였기 때문에 이만큼 중요한 홍보의 기회를 그대로 날린 건 너무 아깝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국제'학회라고 하면서 사실 영어만으로 진행되는 그 언어장벽이 있었을까. 제주에서 이미 쏟아져 나오고 있는 수준 높은 학구적 담화들이 순간 영어로 전달되기엔 무리였을까.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에 들어와 생활의 기반을 잡는 데에 꼬박 두 달이 걸렸다. 늘 마침내 안정됐다고 느낄 때 떠나오는 삶의 리듬 속에서 이번에도 미국을 떠나는 건 많은 걱정과 불안과 아쉬움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장소가 바뀌니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산만해졌다. 무엇보다 내 연구가 주구장창 이야기하는 한국의 토착성을 마침내 직접 피부로 느끼며 보고 듣고 경험하는 일상 속에서 계속 마주치게 되는 건 설레고 희망적이면서도 꽤나 과부하가 되는 일이었다.


미국에서 늘상 답답하다고 생각하는 서구적 제국적 틀 속에서 내 이야기를 전달하는 건 들리지 않는 벽을 두드리는 것 같았는데 그 벽이 너무 견고해서 나조차도 내 존재를 계속 의심해야 했다. 내가 그들의 귀에 대고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다고, 너희와 다르다고, 좀 더 시야를 넓혀서 생각해 보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들이 '증명해 봐, 그럴 리 없어, 말도 안 돼'라고 반응하는 굴레는 끝나지 않을 것처럼 내리막을 내달렸다. 하지만 한국에 오니, 그래, 백날 눈높이를 낮춰 설명하면서 스스로를 의심할 일이 있나, 이미 이렇게 살고 있는데,라는 생각에 조금은 안도감이 들었다.


한국의 연극 씬도 숨을 멎게 할 정도로 뛰어났다. 이 모든 건 원래도 알고 있었지만... 거의 십 년을 떨어져 지내면서, 어쩌면 디지털화되는 콘텐츠 소비의 흐름 속에 대학로는 예전 같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짐작을 혼자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뉴욕 따위는 견줄 수도 없는 수준의 공연들이 넘쳐나는 것을 보면서, 최근 한국 문화예술 콘텐츠가 국제 조명을 받는 과정에서 오히려 한국의 문화 수준이 제한적이고 축소적으로 다뤄지고 있다고 느꼈다. 여기서 말하는 '수준'은 공연의 완성도나 자본의 투자 정도와는 무관한 예술적 철학적 수준이고, 얼마나 넓은 시야를 어떠한 깊이의 감성으로 짊어지고자 하느냐이다.




내 연구에도 비상이 걸렸다. 나는 책을 쓸 준비가 완전히 되어 있었다. 미국에 있는 동안 답답하기 그지없는 학문적 틀 속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단 한마디도 못했기 때문에 그걸 실컷 쏟아내려고, 세세한 구상까지 다 마쳐놓은 상태였다. 기다리고 기다려온 내 한풀이였다. 화는 머리끝까지 쌓였고 화병이 날 것 같아서 한 번은 토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던 이야기들이었다.


그런데 한국에 오고 감정이 조금 바뀌고, 내가 그렇게 미국만 보면서 화를 내는 게 전처럼 큰 의미가 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친구들은 이 또한 내가 책에 문제없이 녹여내게 될 거라고 말한다.


사실 계속 돌려 말했지만, 그 대단하다는 (자본이 있어서 학문의 중심이 되어버린) 미국의 학계는 수준이 너무 낮아서 속으로 '설마 그렇게까지 멍청한 건가'라는 말을 참을 인자 새기듯 끊임없이 속으로 되뇌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내가 쓸 책도 그 수준에 맞춰 대충 쓰면 되겠단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딘가 존재하겠지 했던, 내 학문적 갈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현장에 들어오니 과연 그 정도로 내가 대충 써서 넘길 수 있을까, 스스로 그걸 용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 또한 학계 안이 아니라 학계 밖에 존재하는 이야기들이라는 게 아이러니하다. 학계라는 건 대체 뭐 하는 곳일까? 죽은 지식만을 취급한다는 것과 의미 없는 자기 과시가 우선시되는 곳이라는 건 이제 확실히 알겠다. 함께 배우는 공간은 없고 알려준다는 가르쳐준다는 사람만 판을 친다. 내가 맞네 네가 맞네 우긴다. 거기서 이겨서 어쩌겠다는 걸까? 듣는 사람 없는 외침들 속에서 머릿속은 왕왕 울리고 남는 건 고독뿐이다.




이 길 잃음 와중에 내 연구는 또다시 끝을 모르고 팽창만 한다. 더 이상 제어하지 않고 흐르는 대로 따라가 보자는 생각이었는데, 두려울 만큼 넓어지고 있어서 불안이 자꾸 치고 올라온다. 지금은 또 갑자기 일본으로 넓어지고 있다. (이미 다음 행선지로 대만과 하와이가 있다.)


어느 순간 둘러보니 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전부 일본과 인연이 깊은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자꾸 내게 일본에 있는 기회를 알려주고 또 답지 않게 약간의 푸시까지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넘겼지만 이제는 정말 진지하게 고려해봐야 할 것 같아서 9월에는 일본에 짧게 연구 탐방을 다녀오려고 준비 중이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일본을 생각하면서 내 안에 일본에 대한 엄청난 편견과 반감이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한국인이고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당연히 물려받았을 일제강점의 한과, 백인들의 황당한 일본 찬양에 대한 거북함이 합쳐진 결과였다. 일본은 언제나 좀 멀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는데,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 일본을 다르게 느끼면서 그러한 저항감이 녹고 있었다.


특히 일본=동경을 떠올리고 있었단 걸 알았다. 실은 한국보다 훨씬 큰 일본의 영토 내에 얼마나 다양한 모습과 이야기들이 있을 수밖에 없을까, 이번에 퍼뜩 깨달았다. 시야가 갑자기 광각으로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언젠가 학회 발표에서 한국계 미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한국=서울이라고만 막연히 생각하고 있단 걸 알게 됐다. 게다가 그 서울도, 온라인으로만 접한, 오로지 관념 속의 문화. 심지어 한국인인 나도 십 년을 떨어져 지내는 동안 인터넷으로 접하며 이어왔던 서울에 대한 감성과 직접 와서 보는 서울이 천지차이였는데, 그들에게는 얼마나 더 큰 갭이 있을까.


더군다나 미국에 소개되고 주목받는 작품들은 문화적 번역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이미 많이 근대 미국적 감성을 품은 소수의 작품이다. 그래서 미국에 앉아 한국을 상상할 수 있는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미 지금 소개되는 것도 너무 새로운데, 그 이상의 세상은 아예 상상이 안 되는 것이다.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너무 작은데, 스스로 가장 큰 그릇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어떠한 인지부조화가 개선이 되지 않아서 그 그릇은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더 담지 못한다.




귀국 3일 만에 면접을 보고 11월에는 서울시민대학에서 짧은 강의를 하게 되었다. 면접 때 만난 관계자분들은 그런 밑도 끝도 없는 설명의 필요 없이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셨고 그래서 이번 수업은 스스로에게 의미가 크다. 아직 기간이 남았는데 또다시 내가 기대를 많이 걸어서 그런가, 벌써 떨리고 걱정이 많이 된다. 미국 학부 공간과는 또 완전히 다를 것 같아서다. 전에는 몰랐던 한국의 다른 면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될 텐데, 내가 치를 떨었던 그런 학계가 아니라 평생교육원이라는 늘 이끌렸던 교육공간이라는 점에서도 앞으로 내가 길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경험이 되었으면 한다. 나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수입도 의뢰받은 일도 없지만 매일을 숨 쉴 틈 없이 바쁘게 지내는 지금의 시간들을 믿고 기다려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보스턴 학회에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