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학회에 다녀왔다. 발표를 두 개 했고, 오랜만에 만난 학계 친구들과 애정을 나누고, 미술관에서 일하는 친구를 보고 왔다.
올해 여름까지가 미국에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는 생각에(비자 제한으로 더 일할 수가 없다) 가능한 학회를 다 신청했더니, 지나치게 많은 학회를 다니게 되어 몸이 남아나지 않고 있다. 원래 늘 새로운 도시를 구경하고 친구들과 밤새 수다 떨 생각에 두근거리며 다녀오는 학회인데, 많은 것들이 약속된 이번 학회였음에도 상당히 지친 몸과 마음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역시나, 학회는 예상치 못한 선물을 잔뜩 안겨주는 시간이었다. 두 개의 발표에서 다룬 내용들은 그 공간에 너무 의미 있게 내려앉았고, 우리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늦게까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눈을 빛내며 귀를 기울이는 청중을 만났다.
특히 공포 영화를 통해 역사적 트라우마의 잔재와 현상태, 그리고 지금의 우리 손에 들린 과제를 이해해 보는 세션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나는 영화 <곡성>과 <파묘>, 그리고 예능 <신들린 연애>를 무속적 관점에서 풀어나갔고, 다른 친구들은 각각 베트남, 필리핀, 대만의 공포 영화와 이야기, 게임으로 각각의 문맥에서 지금 당면한 불안, 공포, 그리고 ‘알 수 없는’ 영역의 존재를 파고들었다. 미리 계획하지도 않았는데 모두의 이야기가 완벽히 맞물려 들어가서, 발표가 끝난 뒤 우리는 함께 밥을 먹으며 잘 몰랐던 서로의 영적, 귀신적 문화에 대해 알아갔다. 미국 내에서도 호러에 대한 관심이 많긴 하지만, 동양의 공포가 얼마나 압도적으로 섬세하고 깊은지 확실하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우리의 이야기가 특별했을까.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발표가 끝난 뒤 정말 좋은 질문을 했던 청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와 추가 질문을 했을 때였다. 그는 <곡성>의 부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 했다. 나는 공포영화에서 사랑을 중심적으로 보아줘서 고맙다고 얘기했고, 그는 “어떻게 사랑 얘기를 안 할 수가 있어요, 공포인데”라고 답했다. 애정 가득 반짝이던 그의 눈이 보스턴에 있는 동안 계속 떠올랐다.
이번 발표에서 느낀 건, 공포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가장 솔직해진다는 것이었다. 학계를 둘러싼 온갖 허상의 껍데기를 다 털어낸 진짜 이야기만 남는 것이다. 두려운 것들 불안한 것들 잘 모르겠는 것들을 그대로 인정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괜찮은 척, 침착한 척, 다 아는 척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청중도 진짜 생각을 하고 진짜 질문을 하는 시간이 자연스레 조성되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 가장 솔직한 공간에 남는 건 사랑과 공포였다.
학회가 끝나고 보스턴 MFA(Museum of Fine Arts) 미술관에서 큐레이팅을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같은 학교에서 현대일본미술로 박사학위를 한 친구였다. 친구는 미술관이 오픈하기 전 나를 데리고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는데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이었다. 공연예술 전공인 나는 죽어있는 예술 형태에는 흥미를 금방 가지지 못하는 편인데, 미술관의 백스테이지와 온갖 이야기들을 들으며 이곳도 실은 극장과 같다는 걸 알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전문분야를 살려 치열하게 고민하고 기획해서 매일 매 순간 긴장한 상태로 생생하게 운영되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당시 진행되고 있던 특별전인 반 고흐 전시였다. 이 전시를 준비한 큐레이터는 지난 6-7년을 기획해왔다고 한다. 이미 너무 익숙한 고흐를 어떻게 새롭게 지금의 사람들에게 연결해 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했다. 결과는 그의 말년에 큰 영향을 주었던 룰린 가족과의 관계를 집중 조명하는 방식이었다. 이야기는 간절히 가족을 만들어 정착하고 싶었던 고흐가 그 바람을 버리고 주변인(룰린 가족)과 애정을 나누는 것에 집중하기로 한 시기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가까운 예술가들과 자유롭게 영향을 주고받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 했던 비전, 그래서 고갱과 함께 작업하다가 잘 안 되었던 상황들, 그의 귀 잘라냄과 병원 생활로 이어진다. 그래서 전시된 작품은 룰린 가족의 여러 초상화들, 이들과 주고받은 편지들, 그리고 그가 당시 영향받은 여러 예술과 화풍들이었다.
고흐의 작품을 보면 늘 느끼는 건 아주 따뜻한 감각이다. 그의 밝고 따뜻한 색채 사용과 둥굴리면서도 섬세한 붓 터치는 보는 사람의 마음속 반짝이고 아름다운 부분을 건드린다. 이 화풍이 그가 애정하는 주변인의 초상화로 표현됐을 때 거기선 커다란 사랑의 힘이 뿜어져 나온다고 느꼈다. 그 유명한 고흐의 방 그림도, 그가 자신의 방의 모든 부분들을 너무 사랑해서 그리게 된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한편 고갱과의 관계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 고갱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기억하는 건 상당히 마초적이고 거친 이미지였다. 그런데 막상 고흐와 함께 생활할 때 고갱은 많이 의존적인 성향을 보였고 그것이 고흐의 독립적 성향에 상당히 버겁게 다가왔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그 이야기 끝에서 본 귀 자름은 고흐의 예민하고 섬세하고 다정한 성향에서 나온 것이었다. 애정하는 사람과의 엇갈림이 그만큼 괴롭게 다가왔던 것이다.
고흐가 이후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이야기를 그의 편지를 통해 읽으면서 나는 예술 역사에서 아주 인상적인 인물들인 앙토냉 아르토와 사라 케인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둘 다 생전에 과도한 폭력적 표현으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인물들이다. 이들도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갔으며, 일찍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아르토의 경우는 좀 복잡하며 토론의 여지가 있다) 공통점이 많은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삶을 아주 치열하게 감각한 흔적들이 일기나 대화 기록의 형태로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그 흔적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주 또렷하고 곧았던 정신상태를 반영하고 있다.
각자 나름대로의 센세이셔널함으로 주목을 많이 받은 작가들이지만, 이들이 지치지 않고 큰 사랑을 받는 이유가 단지 자극성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학기 ‘연극과 정신건강’이라는 수업을 가르치며 정신병원의 역사와 특성들에 대해 다뤘는데, 스스로 존재의 고통을 마주하고, 도움이 필요한 것을 인지하고, 그것을 요청까지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사실 정신을 놓은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또렷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고흐, 아르토, 케인은 그중에서도 특출난 사람들이었다. 흐릿해진 적이 없는 것이다.
다시 사랑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 본다. 케인은 사랑의 아름다움에 비례하는 파괴성을 다룬 인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을 압도하는 폭력성에는 동시에 그만큼 말로 어떻게 표현이 되지 않아 버리는 거대한 사랑이 담겨있어서 관객은 잊지 못하고 그를 계속 찾아오게 된다. 잔인하고 엽기적이고 폭력적인 표현의 질감들 사이로 누구보다 고고한 영혼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고 충분히 솔직하지 못한 것을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정면으로 마주하면 다치는 걸 본능적으로 인지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영화라는 매체가 주는 안전함이 사람들을 그곳으로 편안하게 이끈다고 생각했다. 공포도, 사랑도 - 즉 사람을 가장 무지막지하게 붙들고 휘두르는 감각들이 - 실제 삶 속이 아닌 영화에서 좀 더 편안하게 탐구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나와 멘토 선생님의 관계도 더 잘 이해하게 됐다. 모든 걸 생생하게 느끼지 않으면 그 순간이 사라질까 봐 불안에 시달리던 공연학자인 내게 영화학자와의 깊은 연결은 전에 없던 안정감을 주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도 못하고 늘 대화도 용건만 간단히, 꼭 필요한 말만, 경제적으로 한다. 그럼에도 그 수많은 여백이 깊은 신뢰와 존중과 애정으로 가득 차 있음을 확실히 느끼는 경험은 내게 큰 변화를 주었다. 이렇게나 나에 대해 모르는 처음 만난 사람이 내게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신뢰를 주고 이만큼 나를 소중하고 귀하게 대해줄 수 있을까? 설득과 주장과 기대와 요구가 아예 빠진, 여백이 많은 우리의 대화는 뚝뚝 끊기는 흐름으로 나타나지만, 그게 무관심이나 무반응이 아닌, 오히려 상대에게 필요 없는 말이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을 하지 않는 적극적 선택이란 걸, 그렇게 서로를 지키고 있다는 걸 안다. 그 미묘한 결은 머뭇거리며 무언갈 말하려다 마는 모습, 그걸 가만히 지켜봐 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딱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선생님과 나 사이의 교환들을 주변인들이 늘 목 빠지게 기다리며 더 듣고 싶어 하는 게 이상했는데, 얼마 전에 친구가 이렇게 이상적이고 건강한 관계를 처음 봐서 듣기만 해도 희망이 생기고 기분이 좋다고 말해줬다. 더 귀할수록 한 발짝 더 물러나는 형태로 존중해 주는 관계는 나도 처음이다. 취업 과정에서 많은 애정하는 사람들이 중요한 도움을 줬지만, “준비하지 않아도 돼. 그래야 너를 더 잘 보여줄 수 있어”라고 말해준 건 선생님이 유일했다. 엄청난 믿음이었다. 침묵과 절제로 누구보다 큰 진심을 전해주는 선생님을 통해 나는 안전한 형태의, 엮이지 않아서 더 강력한 사랑을 배웠다.
친구는 또 나를 이자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뮤지엄이라는 곳으로 안내했다. 표가 늘 매진이어서 미리 나를 위해 예매해 줬던 곳이었다. 그곳은 정말 기묘한 곳이었다. 매우 부유했던 가드너라는 여성이(1840-1924) 미망인이 된 뒤 자신의 비전을 담은 예술적 공간을 조성하는 것에 온 영혼을 기울였던 곳이었다. 엄청나게 귀한 작품들을 수집한 뒤 직접 설계를 구상한 4층짜리 건물의 각 방의 천장부터 바닥까지, 테이블 위에 놓인 물건의 위치와 구도까지, 빈틈없이 의도를 넣어 배치했는데, 전형적인 예술의 특성들을 파괴하는 대담하고 특이한 해석을 보여준다. 건물의 구조에 따라 한 층씩 올라가며 감상하다 보면 마지막 층, 마지막 순간에 아주 기묘한 가드너의 전신 초상화를 마주하게 된다. 젊고 아름답고 여성스러운 모습의 그 초상화는 다만 중성적으로 느껴지는 멀건 얼굴 뒤에 은은한 후광이 떠있다. 그 초상화 또한 스스로 세심하게 기획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불교적으로 표현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긴 팔과 상체를 아주 살짝 앞으로 숙인 듯한 특이한 포즈를 하고 있는 한편 그 몸은 또 아주 전형적인 서양식 드레스가 감싸고 있다. 관객과 정면으로 눈을 부드럽게 마주치며 무언가 말을 할 듯한 그는 내게 “어서 와요. 잘 봤어요?”라고 인사하는 것 같았다.
(출처: https://www.gardnermuseum.org/experience/collection/10867)
최선을 다해서 관리하고 있어도 낡아 떨어진 건물과 빛바래고 삭아가는 그 안의 물건들로 인해 뮤지엄은 죽음과 무덤의 기운을 강하게 풍긴다. 조금의 변형도 허용하지 않는 그 보존에 대한 집착은 이 집 전체가 일종의 미라와도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참고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 도난 사건이 이곳에서 일어나기도 했는데,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작품의 흔적조차 못 찾았다고 한다. 그 기묘함 또한 너무 흥미로워서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고 한다. (This Is a Robbery: The World's Biggest Art Heist라는 제목으로 된 4편짜리 미니 시리즈이다. 2021년에 만들어졌다) 지금 뮤지엄에서는 도난된 작품의 자리를 빈 프레임 그대로 두어 아직도 그림이 돌아오길 기다린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잃어버린 작품의 가치를 대체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빈 프레임이 뮤지엄의 유령스러운 분위기를 한층 더했다.
다만 생동감을 주는 것은 건물의 정중앙에 조성된 정원의 존재였다. 엘에이의 게티 빌라를 떠오르게 하는 그 정원만은 늘 계절에 맞는 꽃을 정성스레 구성해서 공간에 엄청난 활기를 주고 있다. 뮤지엄이 늘 매진인 이유가 이 정원 때문이라고 했다.
(출처: https://www.thebostoncalendar.com/events/isabella-stewart-gardner-museum-general-admission)
가드너 뮤지엄에서 마주친, 과거를 보존하면서도 생동감을 섞어 넣는 방식의 공간 구성은 보스턴이라는 도시 전체에서도 마주했다. 보스턴은 미국의 다른 도시들과 느낌이 너무 달랐다. 미국에도 이렇게 안정적인 기운을 가진 곳이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그동안 가봤던 다른 곳들이 어딘가 공허하고 붕 뜬 느낌이었다는 걸 보스턴 때문에 깨달았다. 전체적으로 유럽풍의 느낌이 강하다는 얘기를 하자 친구가, “당연하지, 유럽에서 왔잖아”라고 답했다.
바로 그거였다. 해안에는 ‘보스턴 티 파티 뮤지엄’이 있고, 시내에는 ‘Freedom Trail’이라는 역사 투어 걷기 코스가 있다. 즉 보스턴은 미국의 역사가 시작된 곳,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이뤄낸 곳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프리덤 트레일을 보면 역사를 짚어볼 수 있게 과거의 건물과 흔적을 보존해 놓았지만, 그 건물들이 원래 담고 있던 영국 왕실 상징을 미국을 상징하는 독수리로 바꾸는 등 변형이 가해져 있었다. 예를 들어 “스테이트 하우스(state house)” – 일종의 시청 건물 – 의 외벽을 보존해서 사람들이 역사를 느껴볼 수 있게 하는 한편 그 안을 “스테이크 하우스(steak house)”로 바꿔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그런 식이다. 과거를 지나치게 떠받들며 신성시하는 대부분 문화의 방식을 반기지 않는 사람으로서 이런 부분들이 어느 정도 재밌고 신선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복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맞다. 그런데 그 연결을 스스로 끊어버리는 순간, 미국은 조상을 잃어버렸던 게 아닐까. 공포 영화 패널에서 우리는 모두 조상과 소통하지 못하면 찾아오는 실질적인 문제들을 다뤘다. 가장 근원적인 존재적 공포와 파괴를 가져오는 건 늘 잊힌 조상이었다. 조상의 흔적을 지우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억압의 서사와 자유를 외치는 것이 보스턴에서 마주한 미국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어색하게나마 자리한 조상의 숨결이 이 도시에 어떤 안정감과 건강한 정신을 주고 있다고도 생각했다. 트럼프 정부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공방 중인 하버드 대학교가 보스턴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이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여러 친구들과 변화하는 관계 속에 이제 좀 더 가만히 서서 조용히 받고 또 흘려보내고 있단 걸 자각하는 시간이었다. 전처럼 휘몰아치는 에너지로 이리 튀고 저리 튀면서 애정을 막 뿌리고 다니다가 제풀에 지쳐버리지 않는 대신, 내가 어떤 상태에 있든 변함없이 기뻐하고 존중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소중한 친구지만 아직 많이 내게 기대하고 투사하고 비교해서 나를 힘들게 하는 에너지들도 있다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 후자의 친구에게 닿지 못하는 내 마음을 슬퍼하기보다는, 선생님이 하던 것처럼, 그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내 마음을 믿고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그 자리에 있어주는 걸로 더 믿어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