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그리고 부모
명절 연휴의 심야 공기에는 늘 기름 냄새와 피로가 정확히 절반씩 섞여 있다. 나는 구급차 조수석에 앉아, 언제 샀는지 기억나지 않는 미지근해진 캔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무전기가 건조한 기침 소리를 내며 울린 것은, 보름달이 작은 시골마을의 지붕 위로 완전히 떠오른 밤 11시 45분이었다.
도착한 곳은 남해 외곽의 오래된 단독주택이었다. 거실에는 먹다 남은 전과 과일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텔레비전에서는 명절 특선 영화가 소리 없이 번쩍이고 있었다. 늙은 어머니는 가슴을 부여잡은 채 소파에 기대어 식은땀을 흘렸다. 서울에서 내려온 아들과 며느리가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었다.
"체한 거야. 명절이라고 며느리가 해준 갈비찜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래. 까스활명수 하나 먹으면 금방 낫는다니까."
그녀는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완강히 버텼다. 그것은 마치 중력의 법칙만큼이나 단호하고 견고했다. 나는 혈압계를 뼈만남은 팔뚝에 감으며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았다. 통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식은땀과 불규칙한 맥박, 이것은 심장 쪽에서 보내는 명백한 적색경보다.
하지만 명절의 부모님들은 종종 자신의 육체보다 자식의 평온을 우주 질서의 더 높은 곳에 둔다. 모처럼 내려온 자식들의 소중한 연휴를, 구급차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소독약 냄새 나는 응급실의 백색광으로 망치고 싶지 않다는 일종의 서글픈 결벽증. 그것은 마치 우주선이 궤도를 이탈해 불타오르고 있는데도, 행여나 잠든 승객들이 깰까 봐 경보기를 조용히 꺼버리는 늙은 기장의 마음과 같았다.
가방에서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꺼내며 최대한 건조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체한 게 심장에 무리를 주고 있네요. 이대로 참으시면 내일 아침에 아드님이 더 크게 놀랍니다. 응급실 가서 주사 한 대 맞고 푹 주무시는 게, 자식들 돕는 겁니다."
나는 약간의 선의가 담긴 거짓말과 실용적인 타협안을 섞어 그녀를 들것에 눕혔다. 그제야 아들의 손을 꼭 쥔 노모는 작게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아프다는 사실조차 미안해하는, 그 기묘하고도 완고한 껍질이 조금 깨지는 순간이었다.
구급차가 사이렌을 끄고 텅 빈 밤거리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나는 뒷좌석에서 산소마스크를 쓴 노모의 규칙적인 호흡을 확인하며 창밖을 보았다. 차가운 유리창 너머로 둥근 보름달이 우리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조용히 따라오고 있었다. 명절이란, 참으로 이상한 시간의 터널이다. 사람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상처를 감추고, 감추기 때문에 더 깊이 앓는다.
나는 주머니에 있던 미지근한 캔커피를 만지작거렸다. 병원까지는 아직 10분이 더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