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민수 Aug 03. 2016

쉼터는 아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가출이 아닌 탈출이라고 말하는 아이들.

몇 번째 '밥팅' 인지는 모르겠다.

그동안 너무 많은 아이들과 '밥팅'다. 아이들과의 만남에서 나는 꼭 '밥'을 초대한다. '내가 할 수 없는 역할을 '밥'은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가출청소년에게 '밥'은 아이들과 내가 함께 건널 수 있는 '건널목'이자 그들의 이야기를 편하고 재미지게 이끌어 내는 '무한도전 김태호'다. 단, 우리의 만남에서 '유느님'같은 MC는 굳이 필요 없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밥은 참 맛있고 즐겁다.


오늘은 세명의 가출 소녀들을 만났다.

윤, 예린 그리고 은희. 모두 가명이다.

모두 학교를 다녔다면 고등학교 1학년이다.

- 아이들과 맛있는 밥팅 -

하윤이는

가출소녀답지 않게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아이다. 보통의 가출소녀처럼 가정에 문제가 있어서 거리로 나온 것이 아니다. 하온이는 엄마, 아빠를 사랑한다.  하지만 집이 싫다단. 다시 말해, 집이 그냥 싫은 아이다. 그래서 가출팸을 떠돌다가 정작 갈 때가 없으면 집 가듯 쉼터를 찾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위치를 부모님께 보고하는 습관도 가지고 있다. 물론 매월 용돈도 받는다. 부의 기분에 따라 용돈 금액이 차이가 나긴 하지만 그래도 최저 가출 생계는 다고 한다. 실제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하윤이는 어제 여성청소년 쉼터에 들어갔다. 집 가듯 찾아간 쉼터는 지역에 있는 이름이 이쁜 쉼터였다. 이번이 네 번째라고 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출을 시작했다고 했다. 예린이, 은희와 함께 있었던 '가출팸'에서 짐이라고 가지고 나온 건 배게였다. 그것도 별 모양이 그려진 빨간 베개가 전부다. 나는 때가 묻을대로 묻어 색까지 바랜  베개를 끌어안고 나온 이유를 물었다.


" 그 베개는 뭐야?"

" 제꺼라서요..."


생각보다 대답은 간단했다.


예린이는

고개를 들지 않는 아이다. 왜 고개를 숙이고 있냐고 물었더니 '생얼' 때문이란다. 화장을 안 하면 사람들을 잘 쳐다보지 못한다고 했다. 물론 남자들만. 예린이는 쉼터를 싫어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집이 좋다는 아이다. 그런데도 가출팸에 섞여 있는 건 하윤이와 은희랑 같이 있고 싶어서라고 했다.


나를 만나기 전 일어나자마자 라면 두 개를 거뜬하게 먹었다고 했다. 은희 말로는 너무 맛있어서 눈물을 흘리면서 냄비채로 국물까지 다 마셨다고 했다. 그리고 나와의 식사시간에 목살 스테이크 2개와 까르보나라 2개를 시켰다.


은희는

스타일이 터프하다. 말도 빠르고 시선도 강하다. 무엇보다 단단해 보였다. 모자를 눌러쓴 건 얼마 전 '가출팸'이 있는 빌라에서 수도세를 납부하지 않아 3일 동안 씻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고서 모자를 더 꾹~ 눌러썼다.

중학교 2학년 무렵 서울에서 인천으로 가출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물론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가출팸 사이트에서 만난 23살 먹은 오빠랑 같이 산다고 했다.  오빠는 큰방에서 자고, 자기는 작은방에서 잔다고 했다. 그 작은방에 지금 예린이가 있고, 얼마 전 하윤이가 있었다. 왜 잘 알지도 못하는 오빠랑 같이 사냐고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딱히 은희에게는 지난 3년 동안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았으니까.  밥을 먹을 때 조심스레 물었다. 하윤이처럼 쉼터에서 지내는 건 어떠냐고. 이유가 너무 빨랐다.


"싫어요. 답답해요. 담배도 못 펴요. 통금도 있어요."  


  아이들과 밥을 먹고 영화를 보았다. 맛있게 밥을 먹는 모습을 보았고, 영화에서 슬픈 장면이 나오자 훌쩍거리는 소리도 들었다. 예린이는 두 번째 보는 데 두 번다 울었다고 했다.

아이들은 내게 자기들의 아지트(?)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 또한 지금은 타이밍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예린이와 은희를 아지트 근처에 내려주고 하온이를 쉼터에 데려다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헤어지는 인사가 길어진다. 좁은 빌라 골목은 차를 주차하기 힘들다. 그래도 동네를 다섯 바퀴 돌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기다려 주었다. 차에 올라타는 하윤이가 말했다.


"은희도 지금 제가 있는 쉼터로 간대요"


쉼터로 가는 길에 쉼터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원래는 안된다고 했다. 친구랑 같이 센터에 들어가는 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희는 경찰관인 내가 자기를 발견해서 데려가면 된다고 말했다. 말투가 이러한 상황에 매우 익숙해 보였다.


은희는 하윤이랑 같이 있고 싶은 것이다. 은희는 인천과 부천, 광명까지 쉼터의 현황을 따 꿰뚫고 있었고, 이 모든 쉼터를 전부 봤다고 했다. 그리고 사고도 많이 쳤다고 머리를 긁적거렸다. 지금 하윤이가 있는 쉼터도 벌써 네 번째. 그리고 지난 세 번 모두 규칙을 어기고 문제가 생겨서 쫓겨났다고 했다. 그게 중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예상대로 결과는 '입소불가'

하윤이를 쉼터에 들여보내고 선생님을 다시 만나 부탁을 드려도 소용이 없었다. 은희는 지난 세 차례 쉼터 생활에서 모두 규칙을 어겼고, 지금은 우울증이 심해 자해하는 학생까지 있어서 은희를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다.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쉼터에서 규칙은 엄하다. 그리고 필요하다. 왜냐하면, 다른 친구를 받아주면 또 다른 친구가 튕겨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쉼터는 은희를 받아주지 않았다.

다른 쉼터는 싫다고 했다. 다른 쉼터 또한 사고를 치고 규칙을 어겨 쫓겨났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쉼터에는 친구 하윤이가 없다는 것이 절대적인 이유다. 결국 다시 가출팸이 있는 빌라 골목에서 은희를 내려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서글픈 공허함이 몰려왔다.


"서울이라고 했었지. .. 은희 부모를 만나봐야겠다."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