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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Nov 04. 2019

자녀의 스마트폰 : 자녀가 <투명인간>이 되었습니다.

자녀가 스마트폰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 : <투명인간>적 사고

너무 당연한 말을 한다는 생각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사이버 공간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냄새도 맡을 수 없는 공간이니까요. 그래서 투명 공간이고, 그 속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모두 <투명인간>이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논리입니다.


하지만 이유가 있습니다.

자녀를 <투명인간>으로 비유한 이유에는 사이버 공간에서 자녀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묻고 싶어서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자녀는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이 마치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고 있을까? 또 이를 무심히 지나쳐왔던 우리 부모의 <인식>은 어떨까? 에 대한 질문 말입니다. 짐작해보면 자녀는 <인식>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자신이 실제 정체성도 지금 알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이버 공간에서의 정체성을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모님 또한 저는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합니다. 인식할 수 있는 수준은 되지만 정작 여유가 없습니다. <인식>은 사고의 과정을 통해 도달하는 데 우리 부모님들에게는 사실 이러한 사고를 할 여유가 없으니까요.




일단, 궁금합니다. 자녀는 <투명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내가 만일 투명인간이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을까?" 초등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남학생들은 <투명인간>이 되면 부모님 몰래 실컷 <게임>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많았고, 여학생들 경우에는 부모님 몰래 아이돌 가수처럼 화장도 하고 실컷 친구들하고 멀리 놀러 가고 싶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공교롭게도 남. 여학생 모두 <부모 몰래>라는 은밀한 단어가 공통적으로 나왔습니다. 생각만 해도 좋았던지 대답하는 자녀들의 표정은 대부분 신나 있었습니다.


또 많은 수는 아니지만 아동과 청소년 자녀를 둔 20여 명의 부모님들에게도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우리 자녀가 학교와 밖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몰래 뒤따라 가서 보고 싶다는 답변이 많았습니다. 다음으로는 근소한 차이로 자녀의 사이버 공간에서의 생활을 몰래 엿보고 싶다는 답변이 많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부모님도 <자녀 몰래>라는 공통적인 단어가 있었습니다.


<투명인간>이라는 용어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어릴 적 텔레비전을 통해 영화나 만화영화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자세하게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봤더니 <투명인간>이라는 단어는 꽤 오래 전인 1897년에 물리학자이면서 소설가인 '허버트 조지 웰스'라는 작가가 발표한 '투명인간(The Invisible Man)'이라는 SF 소설에서 유래되었더군요. 줄거리를 읽어 보니 '투명인간'은 자신의 신체를 투명하게 만드는 약품을 발명한 박사가 이를 이용해 돈과 권력을 취하려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다 결국은 사람들에게 쫓기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투명인간>에 관한 또 다른 창작물로는 '투명인간의 사랑'이라는 영화도 있었고, 저도 본 기억이 있는 ‘할로우 맨’이라는 영화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투명인간>이라는 정체 자체가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상식적으로 상상을 해도 <투명인간>이라는 능력을 가진다면 일단 누구를 몰래 도와주는 선행보다는 다른 사람들 몰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악행을 하고 싶은 유혹이 먼저 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정확한 느낌은 제가 다음에 <투명인간>이 되어본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쨌든 조지 웰스의 소설에서도 주인공은 악행을 했고, 다른 창작물에서도 투명인간은 공정하지 못했으며, 악행을 저지르는 행동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우리 아이들도 <부모 몰래>라는 은밀한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제 상식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투명인간>이 된다는 건 자신을 둘러싼 <금지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은 강한 동기가 포착됩니다. 그러니까 <투명인간>이 된다는 건 평소 자신을 구속하던 <도덕>과 <규범> 등에서 탈출하여 <충동>과 <본능>에 따라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환상>을 제공하는 데 충분합니다. 이 이론을 자녀에게 적용시켜보면 <투명인간>이 된다는 건 자녀가 가지고 있는 신분, '학생'과 '자식' 그리고 '사회적 약자'로서의 역할과 책임에서 통쾌하게 <해방>될 수 있다는 환상을 품게 만든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바로 질문을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이유 때문에 자녀는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고 들어가서 나오기를 싫어하는 것일까? 제 관점에서는 그렇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자녀가 스마트폰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이유에는 바로 <투명인간>이라는 정체성이 크게 혼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이렇게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왜 자녀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대화가 공격적이고 다 욕일까? 글투는 또 왜 그리 삐딱한 걸까? 게다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성적인 표현이나 이미지는 어찌 그리 또 쉽게 올리누...라고 생각을 한 번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녀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알아보는 사람이 없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자기의 멱살을 잡을 사람 또한 야단칠 사람 조차 없다는 것이 사이버 공간이고 그래서 자신은 안전하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지극히 <투명인간>적인 사고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맞습니다. 다시 강조하겠습니다. 이 모든 건 자녀의 <투명인간>적인 사고 때문입니다.




자녀는 어른과 사회를 마주하면 자신 없어합니다. 보통의 자녀가 그렇습니다. 잘못이 없는데도 일단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응시합니다. 자녀의 이러한 행동은 <수줍음>이라고 말할 수 있고, 자녀에게 <수줍음>은 자존감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은 아마도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수줍음>은 수줍음으로 끝나지 않고 자녀의 다양한 행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면대면>입니다. 자녀는 일단 <면대면>을 싫어합니다. <진지> 한 것도 싫어합니다. 결국, 그 바탕에는 무엇이 숨어 있을까요? 알 것 같은데 확신이 없어하는 불확실한 생각과 또 맞는 것 같은데 그래도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낮은 자존감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자녀들은 "면대면은 제발..."이라고 속으로 말합니다. 자신의 수준을 들키기가 싫은 겁니다.


그런데 사이버 공간은 어떨까요?

맞습니다.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가 사이버 공간에 입장하는 순간, 우리 자녀는 자신의 신체가 사라지는 <투명인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투명인간>적인 사고는 자녀로 하여금 아닌 것을 맞다고 믿으면 실제 맞는 것이 되는 게 사이버 공간의 구조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자신이 <투명인간>처럼 보인다는 사실이 얼마나 환상적일까요? 이보다 더 좋은 <마법> 어디 있을까요? 얼마나 통쾌하다고 생각할까? 이 때문에 스마트폰은 자녀에게 마치 판타지와 같은 환상의 세계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사이버 공간에 입장한 자녀는 대체 어떤 <자유>를 감지할까요?

그렇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니 당연히 지키기 싫었던 <도덕><규범>은 나 몰라라 합니다. 자녀는 외부로부터 어떠한 간섭을 받지 않는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할 것이고, 거기에 이미 사이버 공간은 자녀에게 너그러운 공간이니 무슨 이야기를 해도 또 심지어 속에 담아 두었던 감정을 마음껏 풀어도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정도가 심해 간혹 비난을 하는 피드백이 있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됩니다. 왜냐면 무시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니 자녀는 점점 더 당당해하거나 반응에 무뎌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이버 공간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들켜도 오프라인 공간처럼 <수치심> 따위는 없습니다. 수치심을 거부하고 잘못을 합리화하는 이러한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비도덕적 합리성>이라고 부릅니다. 거기에 잘못에 대한 인식이 없어지고 상대에 대한 반응이 점점 무감각해지면 이제 <반응의 둔감성>이라는 걱정스러운 심리 작용까지 끼어듭니다. 지금 자녀는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이 <투명인간>이라는 착각으로 이 <비도덕적 합리성>과 <반응의 둔감성>을 장착하고 활개를 치며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녀의 인지구조는 <도덕적 이탈>을 부르고, 또 자녀가 결코 가져서는 안 되는 <도덕적 해이>까지 올라갑니다. 즉, 상대의 반응에 무감각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결정하거나 타인을 동조하는 것은 물론 상대의 이성적인 주장이나 비난에도 단지 자기와 다르다는 이유로 극도로 흥분하는 이상 심리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자녀가 <투명인간>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도전해 볼 수 있는 용기을 준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평소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사이버 공간에서는 마음껏 허용해주니 자녀에게 자신감을 세워주기에는 충분한 공간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자녀의 생각이 옳은 지 그른지 어떠한 검증도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자기 결정과 자기 평가로 결론을 지어버리는 문제는 심각합니다. 이것은 자녀가 자신의 잘못된 행위마저도 합리화하는 잘못된 판단력을 갖추는 위험을 초래합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사이버 공간에서 익명의 타인과 대화를 나눈다고 가정해보면, 상대가 여성일 경우 보이지도 알지도 못하니 성적 호기심이 충분한 자녀에게는 <성>과 관련한 불편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꺼냅니다. 이야기를 들은 상대는 대화 상황이 잘못되었다 싶어서 상대의 아이디와 화면을 캡처해서 수사기관에 신고를 하게 되고, 조사받는 과정에서 자녀는 본인이 여기서 왜 조사를 받는지 조차도 모르고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때서야 자신이 어떤 큰 잘못을 저질렀는 지를 후회합니다. 노출되지 않는다는 건 실제 대면하지 않는데서 오는 용기를 만들어줍니다. 또 익명이라는 건 내가 누구인지 나의 신상정보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으로 인식해서 평소 규범적이었던 본능의 행동을 부추기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녀의 행동이 자녀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사이버 공간에서 사이버 친구들이 가르쳐준 학습의 효과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녀는 학습으로 성장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그만큼 스스로 통제가 되고 안되고에 따라 행동에 문제가 생기고 안생기고가 결정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조금 고민이 됩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투명인간>적 사고를 <익명성>이라고 해야 할지 <비노출성>이라고 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대부분의 사이버 심리학자들은 사이버 공간의 주요 특징으로 <익명성>과 <비노출성>을 꼽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자녀교육 강연에서도 강사들은 사이버 공간의 문제점을 이 <익명성>을 두고 강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투명인간>적 사고가 주는 심리 현상은 자신이 노출되지 않는 그 자체가 주요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비노출성>은 <익명성>을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입니다. 거기에 <비대면성>도 포함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투명인간>의 심리적 개념은 <비노출성>이고, 이 <비노출성>은 <익명성>과 <비대면성>을 포괄하는 상위 개념으로 정의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해 가장 위험한 건 결국 <투명인간적 사고>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렇다면 자녀가 <투명인간>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어떤 나쁜 결과를 초래할까요? 사실 우리가 가장 걱정하는 건 이 부분일 겁니다. 자녀의 행동 문제가 되면 안 되는 데 문제가 되거나 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항시 노심초사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잖습니까? 사이버 공간에서 보이는 대부분의 역기능적인 결과. 그러니까 사이버 비행과 사이버 범죄와 같은 사이버 이탈행위가 어떤 게 있는지 대표적인 세 가지를 알아보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플레이밍 - Flaming>입니다.

<플레이밍>은 사전적인 의미로는 불타는, 불을 뿜는, 타는 듯한, 열정에 불타는, 열렬한, 눈이 이글이글 빛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 용어로써 <플레이밍>은  상대에게 모욕적인 말, 욕설, 적대적인 언어 등을 공공연하게 사용해서 상대를 화나게 만든다는 뜻을 말합니다. <투명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잘못된 행위입니다. <플레이밍>을 쉽게 말씀드리면 자녀가 상대에게 시비를 거는 겁니다. 아니꼬운 말투로 시비를 걸고 힐난하는 말투로 상대를 깎아내려 상대로 하여금 화나게 만드는 게 목적입니다. 학교폭력과 청소년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지금 가장 경계해야 할 사례로 이 플레이밍을 1위로 꼽기도 했습니다. 저 또한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이전 글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자녀가 사이버 공간에서 상대에 대한 <모욕><명예훼손>적 발언을 하거나 동조하는 이유는 <리터러시 - Literacy>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져서 발생한 결과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읽기, 쓰기, 말하기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다른 사람의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 정확한 판단이 없어 다른 사람들을 따라 '악플'을 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플레이밍>은 비난과 악플을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결정하는 심리적 태도라는 관점에서 이해해주면 좋겠습니다. 다시 말해 <플레이밍>이라는 심리적 구조가 없다면 상대를 모욕하거나 비난하는 행위 또한 시도조차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사이버 스토킹>입니다.

<사이버 스토킹>은 상대를 괴롭힐 목적으로 문자나 메시지, SNS 등을 이용하여 지속적으로 욕설이나 협박을 통해 상대를 괴롭히는 행위를 말합니다. 오프라인에서의 스토킹 범죄에서 의미가 옮겨온 것으로 최근 쉽게 분노하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플레이밍> 다음으로 심각하게 문제가 되고 있는 사례입니다. 이렇게 피해를 당하는 상대는 자신의 결점과 실수 때문에 부모나 선생님 그리고 경찰에게 쉽게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심리적 압박을 동반합니다. 결국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위험한 상황까지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사이버 공간은 약점이 많은 곳입니다.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풀고 오프라인에서의 정체성을 효과적으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해주면 너무 좋겠는 데 그렇지 못합니다. 오히려 사이버 공간은 극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만들어내는 사이버 심리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가 사람과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여기서 바라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즉각 옮깁니다. 불편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버 친구들을 동원하고 뒤쫓아가서 분이 풀릴 때까지 분노를 쏟아냅니다.


여기에 또 중요한 특징이 '폐쇄적'이라는 약점입니다.

쉽게 말해 피할 곳이 없는 곳이 사이버 공간입니다. 그래서 스토킹 피해를 당하면 인터넷 계정을 탈퇴하거나 폰 번호를 바꾸지 않는 이상 피할 곳이 없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스마트폰에 안 들어가면 되는 걸 가지고 괜히 고민한다 하시겠지만 그것은 자녀에게 억울한 형벌입니다. 그럼 신고라도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쉽게 말하지만 말처럼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상대는 자녀가 수치스러워할 만한 충분한 약점을 가지고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약점이 없더라도 거짓으로 꾸며대면서 덤벼들면 자녀는 자체만으로도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이버 섹스팅>입니다.

오해하실 것 같아 설명드리자면, <섹스팅>은 섹스를 하기 위해 미팅을 한다는 뜻이 아니라 성(sex)+텍스트(text)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인 표현>을 의미한다고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스마트 강국 대부분의 국가에서 <섹스팅>은 가장 부상하고 있는 문제 사례입니다.


<섹스>는 자녀에게 있어서 매우 금기시되고 있으면서도 호기심면에서는 매우 궁금한 영역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오프라인 상에서는 그 어떤 <성>적 표현마저도 할 수 없는 불편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소년에게는 <성>이 죄악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 보니 <성>의 왜곡된 표현까지 안타까운 사건으로 번지는 사례도 많습니다. 하지만 사이버 공간은 이를 충족하기에 매우 편리한 공간이라는 장점이 있고, 또 자신이 <투명인간>이라는 착각을 하게 되면 불편하고 두려웠던 <성>에 대한 표현이 매우 적극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지난 글에서 청소년 <페**북> 페이지에서도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성적인 대화는 적당하게"라는 매우 완곡한 표현을 쓴 것을 보면 이미 사이버 공간에서 성적인 대화는 잘못의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자녀끼리 평범하게 말할 수 있는 공간임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적인 표현은 왜곡된 <성인지>를 심어주게 되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외에도 사이버 공간에서의 <투명인간>적 사고가 제공하는 불편하고 잘못된 사례는 너무 많습니다. 참고로 <사이버 따돌림>, <사이버 명령>, <사이버 감옥>, <아이디 도용>, <이미지 유포> 등이 있다는 정도는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보다 더 많은 사례는 다음 사이버 이탈 사례를 통해 자세하게 말씀드릴 예정입니다.




이렇게 되면 <해법>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녀의 <투명인간>적인 사고를 제거할 '특효약'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렇게 완벽한 마법을 자녀에게 하지 말라고 <빗장>을 걸었다가는 오히려 자녀가 거부감을 가지고 모든 대화 창구를 차단할지도 모릅니다.


일단,

플레이밍, 사이버 스토킹, 사이버 섹스팅 같은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자녀는 지극히 명확하지 않으면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다고 전에 글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그래서 명확하게 설명하되 구체적으로 즉, 사이버 공간에 들어가면 마치 내가 <투명인간>으로 느껴지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며, 모든 행동의 <흔적>과 <증거>가 오히려 오프라인 공간보다 더 노출될 수 있다는 설명을 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재차 사이버 공간은 항상 기록이 남고 디지털 시스템이라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면 아주 손쉽게 <투명인간>이었던 사람을 확인할 수 있다고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사이버 공간은 오프라인 공간보다 범죄의 흔적과 증거를 수집하기에 매우 쉬운 공간인 건 사실이니까요.


지금까지 우리는 사이버 공간이 자녀에게 어떤 심리적 지배력을 가지고 있을까? 에 대한 인식이 모호했습니다. 그냥 일방적인 추측이나 미디어에서 보여준 뉴스 정도로만 받아들이고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 글의 진정한 목적은 인식입니다. 이제부터 자녀의 착각을 어떻게 부드럽게 수정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자녀에게 애매모호한 방법으로 교육하는 건 어울리지 않습니다. 또 자녀가 호기심 때문에 실수를 했다고 하더라도 자녀를 다그치고 비난하는 훈육은 더더욱 해서는 안될 행동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사이버 공간에서 자녀가 행하는 잘못된 행동은 결코 자녀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부모의 <인식>이 결국 우리 아이를 변하게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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