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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Sep 02. 2016

경찰인권영화제 '특별상' 받다.

이렇게 감동적인 경험은 처음이다.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다양한 색감을 가진 섬유를 만드는 공장을 닮았다. 고요할 때와 시끄러울 때가 공존하는 것이 영화 작업이다. 그리고 제품이 나오듯이 필름이 나오는 것도 닮았다. 그래서 영화 작업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다들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순식간에 영화를 찍는다는 거, 상상하지 못하겠지만 나와 내가 교육하는 청소년들은 해냈다. 순식간에. 아주.


학교를 다니지 않는 학생을 가리켜 '학교 밖 청소년'이라 부른다. 개념적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단 알기 쉽게 보자면, 학교를 그만둔 친구들을 '학교 밖 청소년라고 보면 된다. 그러면서도 학교는 다니는 데 장기결석으로 인해 학업중단 위기에 놓인 학생 또한 '학교 밖 청소년'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부모님들은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다. "학생이 왜 학교를 안가?" "엥?" "30일이나 학교를 안 갔다고?" "말도 안 돼." "부모님들이 가만 놔두나?" 가만 놔둔다. 그냥 누가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조차 없다. 이해가 안 될 모르지만 사실이 그렇다. 나에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생각보다 많다는 건 청소년 업무를 담당하면서 많이 느끼는 부분이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담임선생님께서 문자나 까똑을 심심찮게 보낸다. 시스템에 의해서 만들어진 체계 같은 거다.



학교 밖 청소년은
큰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맞다.

담임선생님께서 이리 연락 주시면 그날 저녁은 가정방문을 하는 날이다. 거리는 상관없다. 그냥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가면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학생에게 먼저를 전화를 하지만 대부분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럼 저녁에 페**북과 카**톡으로 2차 접선을 시도한다. 그래도 안되면 이 친구와 서로 아는 친구로 되어 있는 친구를 수배해서 다시 부탁한다. 이게 마지막 3차 시도다. 그리고 부모님께도 연락을 한다. 반반인 것 같다. 결손가정이거나 조. 부모 가정이거나. 물론 평범한 가정도 있지만 사실 극히 드물다. 이것을 보면 학생의 학업 관심이 있고 없고는 가정환경이 지배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나 또한 이렇게 배웠다. 솔직히 많이 안타깝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학교 중에는 업무의 80%를 차지하는 학교가 있다. 독특하다. 이 학교. 벌써 4 담당하고 있지만 학생들을 장악하는 데 3년이 걸렸다. 꽤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 학교는 감동도 있다. 그런데 이 학교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바로 학생들의 장기결석이다. 업무가 많다는 건 당연히 사건. 사고도 많다는 거다.


그래서 학교와 내가 공동으로 장기결석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뽑아 스. 위. 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스. 위. 치. 말 그대로 "스스스로 위기를 치유하다"의 줄임말이다. 장기결석에 뽑힌 친구들은 매월 1회씩 나와 시간을 갖는다. 그룹으로. 내 강의도 듣고 같이 밥을 먹는 '밥팅'도 하고 마지막으로 영화도 같이 보는 시간이다. 그리고 프로그램에는 직업별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바리스타. 요리. 웹디자인 같은 청소년들이 좋아할 만한 직업군을 찾아 함께 체험을 해보는 시간도 갖는다. 괜찮은 프로그램이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표정이 밝아서 좋다. 처음에는 안 하겠다고 튕기더니 이제는 다른 친구들도 끼워달라고 연락이 오고 있다.


가능할까? 가능하겠지? 가능할 거야!


스. 위. 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서 한 달이 지났으니 7월 중순쯤은 됐을게다.

경찰서 다른 부서 직원이 내게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 이야기인즉슨, 7월 15일까지 경찰인권센터에서 해마다 인권영화제를 개최하는 데 이번 영화제에 청소년들과 영화를 한번 만들어 보는 건 어떠냐고. 청소년들을 많이 알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 아니냐고 했다. 그다음에 더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은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화 이야기를 하는 순간, 내가 교육하는 이 놈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가능할까? 가능하겠지? 가능할 거야. 이런 생각들로 가득 찼다. 어느 순간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영화를 찍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허락된 시간은 4일. 그런데 문제는 내 처지다.  청소년 경찰학교 교육에 지방 출강에 사무업무까지 겹쳐서 도저히 시간이 너무 빠듯했고, 집중하고 시나리오 컨셉을 잡아야 하는 데 급하면 안 된다고 좋은 소재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포기를 할까 그러다가. 응모 기한 하루를 앞두고. 밤에 촉이 왔다. 자세히 말하면 때마침 학생이 상담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상담내용은 '몸캠' 피해를 입어서 '멘붕'(멘탈붕괴)이라는 것.   


인권영화 시나이로 "나의 이야기를 지켜주세요."


줄거리가 면 뽑기에서 국수면이 나오듯 술술 뽑아져 나왔다. 몸캠을 당한 학생이 학교전담경찰관에게 이를 상담하고, 학교전담경찰관은 이 사실을 태연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누설함으로써 상담학생의 사생활과 치부가 노출되는 인권침해. 길고 스토리가 짧은 것이 흠이지만 학생들과 같이 영화를 찍기에는 소재와 대사의 무게감이 가벼워 괜찮을 것 같았다.


대사는 없다.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자.


대사는 주지 않았다. 촬영 씬(scene) 마다 상황만 설명했고, 평소 학교에서 나에게 상담하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너희들이 이러한 상황에서 던지고 싶은 대사를 마음껏 던지라고 했다. 카메라는 혼자서도 잘 찍게끔 해놓고. 그렇게 3시간에 걸쳐 논스톱으로 촬영한 끝에 무사히 촬영 작업은 끝났다. 대사를 주지 않은 것이 오히려 주효해 보였다. 만일 대사를 줬다면 학생들이 무척 부담스러워했을 것이다. 당연히 연기도 엉성했을 테고.


"나의 이야기를 지켜주세요" 영화 장면


퇴근을 하고 방에 틀어박혀 편집에 몰두했다. 별다른 스킬은 없고, 단지 이어 붙이기 수준의 편집. 그래도 시간은 새벽 늦게서야 편집을 끝냈다. 그리고 상담받는 역할을 맡았던 주인공 학생에게 보냈다. 물론, 출품하는 방법까지 상세하게 적어서.


당연히 출품에 의의를 둔 것이 사실이다. 학생들 또한 태어나서 처음 영화 찍어보는 것이고, 나 또한 그렇고. 단지 학생들이 영화 촬영 과정을 통해 새로운 경험과 재미와 더불어 중요한 인권의 의미까지 살짝 아는 계기가 된다면 더 없이 만족한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우리는 영화를 찍었다. 보란 듯이.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출품을 했던 학생에게 전화를 받았다. "대장님, 제가 잘못한 것도 없는 데 경찰청이라고 하면서 저한테 전화를 달라고 하는 데 어떡하죠?" "해야지. 아니다 대장님이 해볼게." 알고 봤더니 우리가 출품한 영화가 이번 영화제에 '특별상'으로 선정됐다는 것이다. 웃음만 나왔다. 왜냐하면 514편 중에 9작품이 선정되었는데 그 중에 우리가 뽑힌 것이다.


경찰 인권영화제 시상식장에 가는 날.

학생들은 올해 들어 처음으로 교복을 말끔히 차려 입었다. 부모님도 무척 좋아하셨다고 했다. 무엇보다 자기는 지금 100킬로그램의 나비가 된 기분이라고 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행복한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말이 별로 없는 놈인데 말이 너무 많았다. 우리는 시상식장에서 경찰청장 표창과 상금 20만 원을 받았다.


제5회 경찰인권영화제 시상식
가슴이 뭉클했던 건 다른 이유다.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는 건 작은 이유다. 정말 큰 이유는, 학교를 장기 결석하고, 아무 생각이 없고, 사고도 몇 번 쳤었고, 힘든 가정을 누구에게 말해본 적도 없고, 어느 누구한테도 도움이나 격려를 받지 못했던 친구들에게 특별상은 정말 특별한 상이다. 그래서 가슴이 뭉클했다. 미어지는 게 아니라 벅차오르는 감동은 이런 것일 거다.


오늘은 내가 참 괜찮은 어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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