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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Mar 09. 2017

誹 : 사이버 폭력

청소년을 위한 나라는 있다 - 심각해져 가는 사이버 폭력, 답이 없다.

말씀 '언(言)'에 아닐 '비(非)'를 더하면 헐뜯을 '비(誹)' 가 된다. 2016년 지난 한 해를 갈무리하면서 스스로 올해의 한자를 꼽았을 때 당연 지고 '비(誹)'라는 한자를 택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헐뜯을 '비(誹)', 요즘 말로 하면 '악플'이다. 


2016년은 '학교폭력 피해 경험률'에 있어서 경이적인 기록을 경신한 한 해였다. 경찰은 물론 학교와 유관기관들의 노력 끝에 2012년 28%대였던 '학교폭력 피해경험률'이 무려 전국 평균 0.8%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 것이다. 다시 말해 학교폭력 피해를 당했던 경험이 있는 청소년이 100명 중 1명밖에 안된다는 결과를 낳았다. 겉을 놓고 보면 잔치를 벌여도 충분하다. 그리고 잔치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동안 학교폭력을 위해 묵묵히 신독(愼獨)의 자세로 최선을 다 했던 각 기관의 공동 성과라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어쩌지. 마냥 기뻐하기에는 이르다. 학교폭력 예방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경찰의 시각에서 보자면 겉살은 탱탱하고 단단한 껍질로 여물어 보이지만, 실상 그 속살을 들여다보면 학교폭력의 형태가 또 다른 변화의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두가 예상하겠지만 바로 사이버 폭력 때문이다. 


사이버 폭력, 예상했을 것이다. 


스마트폰 사용의 증가로 실생활에 있어서 완전 필수품이 되어버린, 없으면 중독현상까지도 가져온다는, 그야말로 필요악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고, 현대 문명의 업적이라는 칭송을 하는 이도 있는, 이 스마트폰 사용의 확장으로 학교폭력은 또 다른 범죄형태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용자 중에는 청소년층의 사용률이 거의 80%를 웃돈다는 것도 인과관계가 만들어진다.


현재 모바일을 통해 전달되는 사이버적 언어, 행동 그리고 그로 인한 인간 심리의 영향까지 지배되고 있는 것을 보면 '사이버 폭력'의 이슈는 이미 시작단계가 아닌 어느새 중간지점에서 꼭짓점을 치닫고 있다고 있는 모양새다. 범죄의 형태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처럼 학교폭력 또한 오프라인에서는 이제 사라져 가고 얼굴 없는 온라인으로 정착한 상황이다. 어떻게 보면  '무법천지'라는 생각도 그리 과한 표현은 아니다.


이슈가 되고 있는 '사이버 폭력'의
 유형에는
 '사이버 언어폭력' '사이버 따돌림'
그리고 '사이버 성범죄'가 대표적이다. 


그중에서도 지난해부터 부쩍 증가하고 있는 '사이버 성범죄'는 현재 가장 골치 아픈 거리가 되었다. 순차적으로 보더라도 카카**이 등장하면서 서서히 범죄의 동작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다 본격적으로는 카카**이 모바일 메신저를 장악한 시점부터 '사이버 폭력'은 학교폭력의 '주연'이 되어버렸다. 그 흐름 또한 '사이버 언어폭력'에서 '사이버 따돌림'으로 유행하다 이제는 '사이버 성범죄'가 심각한 학교폭력의 유형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 세 가지 유형은 청소년을 자녀로 두고 있는 학부모들에게는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과제다.  


어느 정도 심각하길래? 

중. 고등학생의 경우 대부분 활동하고 있는 '페이**'을 보자. 그들이 올리는 '타임라인'이나 '댓글'에서 욕설과 속어는 기본이다. 게다가 학년별, 성별, 학교유형별 등 계층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심한 경우에는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입에 담기 힘든 심한 욕설이 멀쩡한 문장이 되어 버린다. 거기에 콘텐츠를 덧붙여 사진과 영상까지 삽입하면 그야말로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모바일 메신저 같은 둘과의 대화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이미지 출처 : http://news.chosun.com
초등학생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중2병'을 몰아내고 '초4병'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학교폭력의 연령 또한 현저하게 낮아진 상태다. 이제는 북한의 김정은이 무서워해야 할 대상은 중학생 2학년이 아닌 초등학생 4학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피해학생의 기준에서 보자면 중. 고등학생들은 사이버폭력을 당하더라도 버틸 수 있는 저항력이 초등학생보다는 훨씬 높다. 하지만 초등학생의 경우에는 사이버 폭력을 당했을 때 저항하거나 이겨 낼 수 있는 '버팀력'이 매우 부족하다. 다시 말해, 고등학생이 아프다면 초등학생은 죽고 싶을 만큼 아프다는 뜻이다. 


학부모들에게 여쭙고 싶다. 

우리 아이의 스마트폰에는 무슨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지 혹시 알고 계시나요?라고. 그럼 학부모님들도 내게 물을 것이다. 아이가 보여주지 않는 데다 요즘 아이들 알겠지만 자기 스마트폰을 보는 것만으로도 전쟁을 선포하는 마당에 대체 어떻게 하면 알 수 있냐고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건 내가 답을 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같이 공유해서 풀어봐야 할 문제다. 


"그냥 폭력을 당하면 병원을 가면 되지만, 
사이버 폭력을 당하면 죽음으로 갈 수도 있다"


너무 심해 보이나? 그런데 사실이다. 왜 사이버 폭력이 무서운 범죄가 되었을까? 왜 사이버폭력을 당한 학생들이 자살률이 높을까?라는 의구심. 그것은 심리를 컨트롤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심리에 있다. 피해를 당하면 아이는 마치 심리를 쥐어짜고 잡아 흔드는 듯한 무서운 피해현상을 동반한다. 게다가 쉽게 노출이 되지 않다 보니 중간에 발견되는 부분이 생략되어 온전히 아이 혼자서 무거운 두려움을 짊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아이가 초췌해진 뒤에야 우리 부모는 알게 된다.  


회복은 어떨까? 심각하다. 

그야말로 우리 아이는 짧은 시간에 회복될 수 없는 중병에 걸리게 되는 셈이다. 지극히 체계적인 심리치료를 거쳐야 하고 환경적인 변화와 부모의 인식 변화는 물론 그에 따른 외형적인 행동의 변화도 요구하는 무서운 증상이 생기는 것이 바로 '사이버 폭력'이기 때문에. 치료를 거치고 다시 치유를 거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를 사이버 폭력에서 지켜낼 수 있을까? 


대부분의 교육자들이 말하는 대처방법은 정해져 있다. 아이들에게 스마트폰과 PC 사용 시간을 규제하고 특히 스마트폰 사용에 있어서 사이버폭력의 유형과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이슈들을 공유하여 미연에 우리 자녀가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예방교육을 시켜줘야 한다는 것은 늘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접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에는 부모와 자녀와 관계 형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대처방안을 보자면. 


우선 아이와의 소통이 중요하다. 


아이와의 소통, 그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상대가 부모는 아니다. 단지 이유는 대화가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와 재미가 있는 대화를 해야 한다. 그것이 우선 과제다. 


두 번째는 '진정성 있는 공감대'이다.


그러한 유쾌한 대화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진정성 있는 신뢰를 쌓고 나면 그다음은 아이와 정직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아이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바로 "아빠, 엄마도 사춘기를 보내 봤어"라는 말이다. "그러니 유별나게 굴지 말라"라고 무시부터 하고 본다. 그러면 안된다. 제발. 지금 아이들의 사춘기와 부모 세대의 사춘기는 질적으로 차이가 많다. 감히 말씀드리건대 '아는 체' 하시면 안 된다. 


그리고 마지막이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나부터도 장담할 수 없고, 모든 부모들이 절대 할 수 없는 일, 바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들어준다는 것이 생각보다 쉬워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우리 아이가 이야기를 조금 할라치면 대뜸 부모가 끼어들어 아이의 이야기를 끊어 버린다. 아니면 먼저 앞서서 이야기를 주도해나간다. 결국 이야기를 들어주는 형국이 아니라 한참 동안 부모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양새가 되어 버린다.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건, 아이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눈을 맞춰 집중하고 추임새를 넣어주며 함께 공감해주는 것이 진정한 '들음' 즉, 경청이다.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

부모가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가정에는 학교폭력은 없다. 당연히 사이버 폭력도 없다. 장담한다. 이건 공식이라고 보면 된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부모가 있는 데 아이가 문제가 생겼을 때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있는가? 피해를 당하는 학생들의 배경에는 부모와의 불통이 지배적이다. 


부모님, 제발 아이의 이야기를 '경청' 해 주세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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