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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Aug 03. 2016

아들에게 분노는 없었다.

자녀는 외계인, 부모는 지구인 - 아들이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것 같아요

청소년 업무를 하면서 좋은 점은 나보다 훨씬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지도자나 상담사 그리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부모님들까지.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많이 만나는 분들은 바로 선. 생. 님.이다. 


나는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리고 무척 힘든 일을 하는 분들이다. 왜냐하면, 선생님들은 평생을 학생들의 훈육에 힘쓰는 분들이니까.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평생을 훈육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지 이해가 되지 않을 거다. 선생님이 되기 전부터 된 이후 그리고 평생까지 선생님들의 모습은 언제나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준비를 갖추고 있는 분들이다. 이것은 지난 5년 동안 내가 청소년 업무를 통해 직접 보고 느낀 점이다. 


                         이번 글은 평소 존경하는 모 고등학교 선생님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 교감선생님과의 카카오톡 메신저 대화 -

저녁 늦게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온다는 건, 10개 중에 9개는 틀림없이 무슨 사건이 생겨서다. 더구나 스마트폰 액정에 연락처 이름이 '교감선생님'이라고 뜨면,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긴장모드로 돌입한다. 더구나 이번 경우는 문자나 카톡 같은 예고 없이 오는 전화가 아닌가. 그리고 급하게 찾는 건 메모지와 필기구. 늦은 저녁시간, 평소 존경하는 교감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고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엇보다 교감선생님이라면 학생들의 지도와 훈육에 힘쓰는 분들이기에 아들의 문제를 가지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당황스러웠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 고마웠다.  


교감선생님의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으면서도 조금 충격적이었다.  평소 그렇게 말을 잘 듣던 아들이 요즘 들어 엄마에게 부쩍 대드는 행동이 많아졌는가 하면 감정조절을 못해 홧김에 휴대폰을 집어던지고 심지어 얼마 전에는 이야기를 하다 자기도 모르게 칼까지 들었다가 놓았다는 것이다. 갑자기 그게 가능할 수 있을까? 갑자기 그럴 수는 없다. 무엇이든지 이유가 있다는 건 여러분들도 다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아들을 만났다. 


아들은 모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었고, 이과에서 문과를 전향한 평범한 고등학교 남학생이었다. 담배는 피우지 않았다다. 술도 먹지 않았다. 공부는 학교에서 전교 15등 정도 하고 있었고, 내신 2등급을 유지하고 있었다. 옷차림과 말투 그리고 표정까지 지극히 학교에서 공부 좀 하는 학생처럼 보였다. 이런 친구가 어떻게 엄마 앞에서 칼을 들었다는 거지? 나쁜 친구가 옆에 있는 것일까? 흔한 의심이 들어 물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거린다. 지극히 평범한 친구들이 주위에 있었고, 축구를 좋아하는 여느 17살의 남학생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다행이었다.

처음 보는 학생과의 상담은 직접적이어선 안된다. 오늘은 그냥 인사만 하고 헤어질 수도 있다는 여유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 결국에는 나는 들어주는 사람이고, 학생은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학생이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잘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어찌 됐건 부모님과 선생님께 풀어놓지 않는 보따리를 풀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게 내가 알고 있는 상담의 역할이다.


학생의 이야기는 말랑말랑하게 부드러웠다. 그리고 고맙게도 지난 시간들에 대해 차근차근 이야기를 다 해주었다. 학생은 자신의 어머니가 강하다고 했다. 그리고 고집도 세고, 엄마가 만들어놓은 틀에 자신이 맞게끔 행동해야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생이 말해주는 충격적인 이야기에 잠시 나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저씨, 우리 집에는 없는 것이 세 가지 있어요."

"심각한 것은 아니에요, 지금은 익숙해졌으니까."


학생의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가 텔레비전을 없앴기 때문이다. 상상하면, 10시까지 자율학습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딱히 할 게 없단다. 공부를 하거나 침대에 누워서 책을 보거나 잠을 자는 것이 전부다. 한 번은 친구들이 자기 집에서 자고 갔는 데 텔레비전이 없는 것이 친구들끼리 페이스북으로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으로 다 하니까 스마트폰을 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학생은 고등학교 때부터 스마트폰이 없다. 2G 폰을 가지고 다닌다. 당연히 카톡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할 수 없다. 엄마의 의견은 단호하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으면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요즘은 학생들이 전부 카톡이나 페이스북 메신저로 대화를 하고 있는 데 그곳에 낄 수가 없다는 것이 무척 화가 난다고 했다. 또 학생은 친구들에게 심각하지 않는 조롱을 받고 있다고도 했다. 하기야 스마트폰이 없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희귀한 친구로 유명세를 날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방에 있는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면 되지 않겠어? 


그런데 마지막으로 학생의 집에는 컴퓨터가 딱 한 대 있다. 그것도 거실에 자리하고 있단다. 이것이 놀라울 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엄마가 컴퓨터에 비밀번호를 걸어놨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내 기준으로 봤을 때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의 표정은 오히려 담담했다. 괜찮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적응이 됐기 때문에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다 라고 했다. 단 하나만 빼고. 바로 스마트폰은 꼭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고 중학교 때보다 스스로 공부에 방해되지 않게끔 충분히 자기조절을 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한다. 나는 마지막으로 학생에게 두 가지를 물었다.


" 학교생활은 1부터 10까지 만족감이 어때?"

"학교생활은 8이에요, 아주 좋아요."


" 그럼, 집에서의 생활은 1부터 10까지 했을 때 어때?"

" 3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지금까지 네가 공부를 상위권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어머니의 단호한 결정 때문이지 않았을까...?"

"아니오,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학생과의 상담을 마치고 며칠 뒤 교감선생님과 단란하게 점심식사를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들과의 상담내용을 말씀드렸다. 


"아들은 전혀 문제없습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목표가 뚜렷하고 인성도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교감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집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물론 교감선생님도 아내의 성격이 단호하고 조금 강하다고 한다. 하지만 교육의 열정보다 아이의 인성교육에 많이 신경 쓰고 있고, 그게 큰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등학교 2학년 들어와서는 공부를 마치고 저녁 늦게 축구를 한다면서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운동하고 들어오는 것도 요즘 큰 고민이라고 한다. 고민이 또 하나 늘은 셈이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나는 교감선생님께 질문 하나를 드렸다. 


"그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선생님, 아들이 왜 새벽 1시, 2시까지 축구를 하고 올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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