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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Aug 09. 2016

속 터지는 부모, 떼쓰는 딸.

대장님, 저 집에 좀 데려다주세요...

밤이다. 11시 반이다. 

스마트폰이 울리는 거 그리 놀랍지 않다. 누가 전화했나 연락처를 봤더니 꽤 오랜만에 연락 오는 여학생이다. 잠깐 셈을 했더니 고1 때 자주 보고, 고2 때 가끔 보고 그리고 거의 1년 만에 처음 연락해 온 것이다. 안 좋은 일일 거야. 분명해.


통화버튼을 획~ 하고 그읏다. 

그런데 울고 있었다. 너무 심하게 울고 있어서 다짜고짜 무슨 일이니?라고 했지만 내 말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울음을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끄억~ 끄억~ 하는 소리가 나서야 여학생이 말문을 열었다. 


대장님, 저 좀 집에 데려다주세요


순간 스쳐간 것이 성. 범. 죄를 당했구나. 였다.

직업이 경찰인지라 상대의 목소리와 호흡만 들어도 어떤 상황인지 추측을 할 수 있다.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다. 제빵사가 빵의 냄새만 맡고서도 무슨 빵인지 아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울음을 멈추고 나온 말이 자기를 집에다 데려다 달란다. 지금 시간이 11시 30분을 넘어가고 있는데. 


무조건 집에 데려다준다고 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인지부터 알려달라고 했다. 어찌 됐건 응급조치할 게 있는지가 먼저 확인되어야 하는 부분이니까. 만나서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을 급한 마음에 졸랐다. 그제야 울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당시 여학생은 모 여고 3학년이었다. 이 친구를 알았던 때는 고1, 그러니까 내가 운영하고 있는 청소년 동아리에 소속된 모 여고 학생이었다. 당시를 생각하면 꽤 옷맵시나 말투, 행동 등이 개성이 강한 스타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외모도 이뻐서 동아리 남학생들에게는 인기가 많았지만 같은 학교 동아리 회원들과는 좀 어울리지 못하는 특성도 있었다. 그래도 나에게는 언제나 씩씩하게 자기 할 말을 다하곤 하는 나름 단단한 아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왜 나한테 심야시간에 전화를 했을까?


시간을 아끼기 위해 통화는 차량 내 블루투스로 했다. 내용은 이랬다.

자기는 꿈이 걸그룹인데 부모님은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단다. 춤을 출 거면 집을 나가라고 해서 사실 '야자시간'을 빼먹고 부모님을 속여가며 댄스 연습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기간이 고등학교 1학년부터 지금 3학년까지. 그런데 오늘, 정확하게 말하면 방금 전 아빠가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해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담임선생님에게까지 연락을 해서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했는 지를 물어보고 최근 학교생활도 함께 물어봐서 아빠가 단단히 화가 났다고 했다. 그리고 아빠랑 통화를 했는 데 죽일 듯이 자기를 야단치면서 집에 들어와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단다. 그래서 춤 연습을 하고 있는 친구 집에 피신해 있다가 내가 생각났다는 것이다. 


학생이 말했던,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와서 그네에 앉아 있는 여학생 두 명을 보았다. 얼마나 울었는지 서툰 화장을 한 친구가 누가 봐도 그 여학생이었다. 덩달아 옆에서 같이 울었는지 친구의 눈가에도 울었던 자국이 보였다. 은민이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가는 길에 아버지께 전화를 했다. 학생으로부터 내 이야기를 몇 번은 들었던 모양이다. 나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는 것 같아 일단 대화는 불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따님을 데리고 가니 잠시 밖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전화하는 내내 여학생은 살며시 들리는 아빠의 목소리에 꽤 신경을 쓰는 듯했다.  


아버님은 나를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몸이 좋지 못해 이런 상황에서 나를 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보통은 이렇게 대화를 요청하면 부모님들은 받아주신다. 그런데 아버님이 무척 화가 나셨는지 아니면 본인의 자존심 때문에 나를 보지 못하는 것인지 정확한 이유를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중요한 건 대화를 해야 하는 데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해서 우선은 당황했다. 


이야기는 하지 못하더라도 아버님께 한 가지만 부탁을 드렸다. 따님을 때리지 마시고 집에 들어오면 일단 재운 다음에 내일 말씀을 나눠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버님은 답변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참 지나서야 말씀을 하셨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버님은 울고 있었다.


아버님, 오늘은 일단 재우시죠...


여학생이 사는 아파트 단지 안으로 좀 더 들어가자 학생의 어머니와 언니가 나와 있었다. 학생이 내리자 언니가 데리고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어머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물론 어머니께서 이런 일로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괜찮습니다. 


학생은 어릴 때 목욕을 같이 할 정도로 아빠가 애지중지 키웠다고 했다. 공주님이라고 부를 만큼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해서 언니가 잠시 학창 시절에 방황하는 시절도 있었다고 했다. 그런 공주가 고등학교를 들어가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대학을 갈 것인지 취업을 할 것인지 아무런 꿈도 없이 무작정 댄서가 되겠다고 하니 아버지의 반대가 당연하다고 했다. 솔직히 춤추는 걸 봤는 데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춤을 잘 추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처음에는 때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전에 아버님은 술도 안 하시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고 했다. 가정폭력 같은 학대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그런 아버지가 딸아이를 때렸을 때는 상식적이지 못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회초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자신이 잘못하면 아버지가 죽일 것처럼 때린다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다니고, 동네 사람들에게도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중요한 건 해결책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어머니께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타협'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부모의 일방적인 지도는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오랫동안 더구나 미쳐있을 만큼 춤이 좋다고 하니 부모님께서 따님을 지지해주는 모습을 보여주고, 학생 또한 부모님이 원하는 생활패턴을 고쳐 잡을 수 있다면 일단은 해결의 시작점으로는 괜찮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야자시간을 빼먹고 부모님을 속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아이가 원하는 것을 밀어주되 부모님께서 걱정하는 부분을 노력해줄 것을 서로 '타협'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권해 드렸다.  


다음날, 청소년 경찰학교에서 교육을 하고 있는 데 학생의 아버지께서 전화를 주셨다. 어제는 너무 죄송했다고 하셨다. 죄송한 일 아닌데 말이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죄송한 일은 아니다. 어제 잘 참고 아이를 재웠냐고 물었더니 아버님께서 그냥 모른척하고 잤다고 하셨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를 해볼 생각이라고 하셨다. 무슨 이야기? 


'타협'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고 하셨다. 아이와 타협을 한다는 것 자체를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셨다. 그런데 타협을 한번 해보겠다고 하셨다. 정확하게 말하면 "타협을 해야겠네요..."라고 하셨다. 그리고 저녁 무렵 여학생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대장님, 어제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구해준 게 아닌데 라고 생각했다가 한동안 학생의 문자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더니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맞다. 나는 어제 한 그 친구를 구해었구나 라는 걸. 


아이들과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마주하는 게 있다. 무엇이든지 내 입장에서 아이들의 생각을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다른 동료들은 반색하는 경우가 많다. 그 시간에 아이를 데려다줬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내가 아이를 데려다주었던 이유는 바로 그 여학생에게는 게는 어제가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본래의 목적은 학새의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무쪼록 타협이 잘 되었으면 싶다. 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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