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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Aug 17. 2016

이유없이 학교를 안 간다네요.

우리 딸이 이유없이 학교를 안 가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황당한가? 질문이.

왜 나한테는 이 질문이 황당하지 않은 거지? 그렇다고 내가 딸이 있어서 우리 집 딸이 자주 학교를 안 간 것도 아닌데. 또는 내 주변 지인들이 딸 문제로 상담을 해 온 적도 없는데. 그런데 난 이 질문이 왜 황당하지 않을까? 오히려 황당하지 않은 내가 좀 황당한 느낌이 들었다.


학생이 그랬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로 진학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하루도 학교를 나간 적이 없다. 그럼 이유라도 있어야 하는 데 이유도 없다. 그냥 가기 싫단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부모가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그 이유를 알아내는 데는 실패했다. 학생은 꽤 당당했다. 딸이 부모에게 버틸 수 있는 이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막무가내.


근데 황당한 상황이지만 부모가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어 보였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부모님이 계시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학생의 가정은 평범했다. 학생은 막 나가는 청소년이 반드시 가져야 할 '막돼먹은 가정' 이 있는 것도 절대 아니었다. 술, 담배 안 하고 오직 승진시험에 여념이 없는 성실한 아빠, 그리고 늦둥이까지 키우며 집에서 살림만 하시는 엄마. 두 살 아래 남동생도 엄마 설거지를 도와줄 정도면 그다지 문제없는 거고, 이제 5살 된 막내 동생이 크게 영향을 줄리는 없었을 거고. 이런 가정 분위기인데 학생은 대체 왜 학교를 안 가겠다는 걸까?


서먹함과 불편함이 거부를 만든다.


중학생들과 고등학생들 중 학교를 거부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서먹함'과 '불편함'에서 학교를 거부한다. 중학교 때 이 여학생은 학교에서 왕따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놀라운 것은 아니다. 부모들이 모르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우리 딸은 왕따를 당하지 않을 거야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보통이니까. 대한민국 모든 자녀는, 특히 여학생은 언제라도 왕따 피해를 당할 수 있고 또 왕따를 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 학생 또한 왕따를 시키는 가해학생도 되었다가 또 반대로 왕따 피해를 입은 피해학생도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럼 이유는 좀 좁혀진다.

학교를 가면 서먹하고 불편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학생을 서먹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는 뜻일거다. 학생과 직접적인 면담은 거부해서 어쩔 수 없이 카**톡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학교를 가기 싫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학생이 학교를 가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자신을 왕따 시켰던 친구가 같은 학교로 배정받은 것이었다. 단순하지만 너무도 타당한 이유다. 이후 나는 메시지로 대화도 했으니 가정에서 학생을 만나보고 싶었다.밖에서 만나면 더 좋겠지만 집에서 나오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가정방문을 시도했다. 하지만 만나지 못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카톡과 페이스북 메신저로 친분을 쌓는 데는 성공했지만 끝끝내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고집이 보통이 아니었다.

 

때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집 나가라고 할 수도 없고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어머니의 하소연이 저녁시간 내내 전화기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맞는 말이다. 때린다고 될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꼴 보기 싫으니 나가라고 할 수도 없다. 딸아이가 학교를 안 나겠다고 하는 건 정말 부모에게는 참 막막하고 가슴이 미어지는 상황이다. 더구나 방문을 걸어 잠그고 가족들과의 대화도 안하겠다면 이대로 가다가는 위험한 상황까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지속된 학생의 무례함이 아버지의 폭행을 불러왔다. 아버지께서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학생을 혼내는 데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쳤던 모양이다. 112신고까지 하며 경찰이 들이닥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아버님과 통화에서도 별 다는 소득은 없었다. 그냥 미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 외.

 

결국, 학교를 그만두었다.


결국 학생은 입학하고서 한 번도 교실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5개월만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대안학교를 알아보고 특성화고 전학까지 교육청 장학사님을 괴롭혀가며 알아봤지만 학생의 '자포자기'를 이길 수는 없었다. 이후 한 달가량은 어머니를 통해 학생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나름 표정도 밝고 전에 알고 지냈던 가출한 언니들도 이제 만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나이 많은 오빠와의 교제도 끝을 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네일아트를 배우기 위해 서울까지 다니며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더 이상 소식은 없었다.


그리고 어제, 약 두어 달 만에 어머니로부터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아버지께서 학생을 다시 죽일 듯이 폭행 해서 경찰서에 또 신고를 했다고 했다. 아버지께서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강아지를 키우겠다는 학생의 말에 안된다고 했더니 말대꾸를 했다고 그러던 중 목을 조르고 폭행까지 해서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했다. 이제는 아버님이 걱정이다.

돌이켜보면,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시점은 학생이 왕따 피해를 당했던 중3 끝무렵. 당시 왕따 피해를 입고 친구들을 거부하는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제대로 발견했었더라면 그래서 당시 '치료와 치유'가 함께 병행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줄곧 아쉬움으로 남았다. 스토리로 구성으로 보자면 가장 중요한 순간인 '위기 극복' 부분이 전개되지 못하고 삭둑 오려진 셈이다. 그래도 다행히 학생에게는 헌신적인 어머니가 계셨다.  그리고 다시 한번 어머니께 학생의 병원 치료를 권해드렸다. 나도 함께 가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계속된 권유에도 옴짝달싹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번 더 이야기 해보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학생이 바로 옆에 있었는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답을 주셨다. "딸이 받아보겠다고 하네요. 그렇게 할께요."


내일은 남양주로 출장을 다녀오면 학생과 함께 심리치료를 받으러 갈 것이다. 드디어 그 학생을 본다. 아쉽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게 많이 아쉽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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