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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Aug 22. 2016

아들을 정신병원에 보내야겠어요.

 자녀는 외계인, 부모는 지구인 - 사랑앓이를 하는 철없는 아들때문에.

"엄마, 책상에 올려져 있는 편지지 한번 읽어보세요"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은 아들.

엄마는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어 아들방으로 달려가서 책상 위 하얀 편지지를 발견했다. 구구절절 써 내려간 아들과 여자 친구와의 사연 이야기가 편지지로 두장 반이다. 그리고 어디서 본 건지 아니면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적은 건지. 편지지 첫 장 맨 위줄에 떡~ 하니 '유서'라고 적혀 있다.



아들이 유서를 썼다.


 겨우겨우 잠들었는데. 새벽시간 어느 학생 아버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 학생은 내가 지난 1년 넘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모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이다. 나에게는 전화를 받을 때 언제 어디서든 꼭 지키는 습관이 하나 있다. 어떠한 상황이건 전화를 받을 때는 공손하고 밝아야 한다는 것. 새벽시간의 경우 아무리 잠에서 깼다 하더라도 내 목소리의 평균 발성은 도레미파솔 중 바로 '솔' 발성에 가까워야 한다는 것. 굳이 이유를 말하라면 상담하는 분들이 미안하지 않게끔, 그래서 말을 아끼지 않게끔이다.


그런데 그날은 '솔' 발음을 내지 못했다. 멀리 지방 출장까지 다녀왔고 또 돌아오자마자 청소년들을 만나 격려를 해주는 이벤트가 있었다. 물론 내 사정이다. 그래서 그날은 나도 모르게 도레미파솔 중에 까끌까끌한 '레' 발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아차 싶다. 잠을 깨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버님의 첫 말씀이 단번에 잠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아들을 정신병원으로 보내야겠습니다."


아들을 정신병원에 보내야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1개월 전쯤이었을게다. 학생이 내게 전화를 걸어서는 다짜고짜 사귀던 여자 친구랑 헤어졌는 데 앞으로는 '경찰 공부'에 전념할 거란다. 무슨 엉뚱한 소리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너무 결의에 차 있어서 반목 대신 동조를 해줬다. 시험공부에 필요한 팁을 알려주고 신분이 고등학생이니 현재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영어 중심으로 공부를 하면 된다고 충분히 격려까지 해줬다. 그런데 그 친구의 아버님이 전화를 주셨다.


일단 중요한 말부터 하고 보자. 안됩니다. 거듭 말씀드렸다. 정신병원은 절대 보내선 안된다고. 물론 내용을 듣지도 않고 먼저 앞서 나갔다. 당연히 멀쩡한 놈이 한 달 사이에 정신병원에 갈 만큼 이상해질 수 있다 라는 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리고 말씀드렸다. 병선이가 나중에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가고, 취업을 하고 또 결혼을 할 때도 정신병원 진료 이력은 계속해서 따라다닙니다. 정신병원 이야기는 그리 쉽게 말씀하시는 게 아닙니다. 그럼 어쩜 좋을까요? 경위님.


아들이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고 했다.


발단은 이별에서 문제가 생겼다. 겉으로는 거칠고 둔탁해 보이지만 그런 친구들이 은근히 여릴 정도로 아기 같은 구석이 많다. 병선이가 그랬다. 한 달 전에 내게 당당하게 이별을 알리고 새롭게 마음을 고쳐먹겠다고 자신만만했음에도 그 한 달을 못 참고 엄마를 달달 볶았던 모양이다. 아버님께는 그리 불안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대한민국 막내아들에게 언제나 만만 한 건 우리 어머님이다.



여자 친구랑 헤어진 후 한 달이 지나서야 여자 친구가 보고 싶다고. 다시 사귀고 싶다고. 조금 전까지 어머님을 달달 볶아 됐던 모양이다. 어떻게 덜덜 볶았을까? 자기 전화는 받지 않으니 여자 친구에게 자기 마음을 알려 달라고 달달 볶았다. 그런 부탁이 벌써 다섯 번. 그런데 아무리 자기 자식이지만 다섯 번 이후로는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거절했더니 그때부터 방에서 물건을 집어던지고 책꽂이를 뒤집어엎고. 심지어 어머니 앞에서 발작증세까지 보이며 달달 볶았다고 했다. 마치 정신이 이상한 사람처럼.


오전에는 유서를 써놓고 나갔단다. 유서를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더니 아들이 유서를 쓰고 나간 후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더니 몇 시간 지나 스스로 연락을 해왔다고 했다. 엄마, 책상 위에 하얀 편지지 좀 읽어보세요. 읽어봤더니 내용이 눈물겹다. 물론 아들 기준에. 유서의 내용은 구구절절 애틋한 문장들로 빼곡히 적혀 있었다.  여자 친구와 사귀면서 좋았던 점, 헤어지게 된 이유. 결국에는 살 자신이 없다며 이렇게 죽을 테니 부모님 보고 그동안 키워줘서 고맙단다. '만수무강' 까지 적어놓았다고 했다.  그래서 잠까지 설쳐가며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하다 내게 전화를 주셨다.   


물론 쇼다. 좀 심하게 말하면 생쇼다.


경찰 입장에서 보면 유서를 쓰고서 스스로 유서를 보라고 이야기를 했다는 거와, 유서를 쓰고 나서 자신의 유서를 봐달라고 하는 거와 유서의 내용이 죽을 만큼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거. 물론 부모님도 쇼를 부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상담을 요청한 건 부모님이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생쇼지만 '만약에'라는 것 때문에 부모님은 이를 대수롭게 생각하지 못한다. 나 또한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지만 생쇼로 받아들일 자신은 없다.  


일단, 헤어진 여자 친구와 통화를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무슨 이유로 헤어졌는 지를 알아야 답을 찾을 수 있으니까. 헤어진 여자 친구와 통화를 하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단번에 통화가 가능하다고 문자가 왔다. 헤어지는 이유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지금까지 사귀면서 성격 때문에 많이 힘들다는 것과 자기 기분이 너무 강해서 자기가 원하는 게 아니면 그 즉시 욕설이 쏟아져 나왔던 것.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병선이와 연결되고 싶지 않다고 울음까지 들려주며 말했다.   


부모님께만 말씀을 드렸다. 며칠만 더 지켜보는 게 좋겠습니다. 헤어진 여자 친구와 통화했던 내용과 평소 병선이의 행실을 고려해서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정신병원에 넣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일단은 며칠만 지켜보자고 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라면, 병선이는 어제오늘 주말 내내 친구들과 어울리며 게임을 하고 놀았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 아직까지도 쇼를 한다면 그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정말 '정신병원'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이틀이 지난 조금 전 아버님과 통화를 마치고 이어서 어머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다.



경위님 말씀대로 다시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여자 친구 이야기도 안 하고. 표정이나 기분이 예전처럼 많이 좋아졌습니다.라고 했다. 확신을 이길 수 있는 건 직접 듣는 것이다. 직접 들으니 그제야 나도 안도의 한숨을 내실수 있었다. 하지만 또 언제 변죽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다. 고등학생에게 사랑은 짧다고 하지만 내 생각에 청소년의 사랑은 대부분 짧지만 간혹 아주 끈질기게 긴 사랑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그게 전부인 친구는 더더욱 문제라는 것도.


병선이에게는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 연락할 이유도 없지만 만일 연락해서 어머님을 왜 그리 힘들게 하냐고 말한다는 것도 겨우 정신을 차린 병선에게 할 말은 아니다 싶다. 내 방법이 옳다고 말한 적은 없다. 물론 지극히 애기짓을 하는 병선이를 전문 기관에 치유목적으로 상담을 의뢰할 계획은 있다. 하지만 그 또한 타이밍이 중요하다. 지금은 그 타이밍이 아니다.  


어머님, 또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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