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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Nov 20. 2017

눈에 띄는 신조어,   그루밍(Grooming)

청소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 그루밍을 아시나요?

얼마 전 '한국 청소년정책연구원' 홈페이지에 눈에 띄는 신조어가 담긴 토론회를 공지를 보았다.

<아동. 청소년 성범죄 속 그루밍(grooming)을 어떻게 볼 것인가?>

눈에 띄는 신조어 : 그루밍(Grooming).


수년간 청소년 업무를 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도 '그루밍(grooming)'이라는 단어는 매우 생소했다. 궁금한 정도를 따지면 꼭 토론회에 참석하고 싶었지만 업무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대신 참석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주최 측으로부터 료를 받는 것으로  대신했다.


원래 그루밍(grooming)은 동물들의 행동에서 유래한 단어다. 고양이, 토끼 같은 동물들이 혀 또는 손발 등을 이용해서 자신의 털을 다듬는 행위를 가리켜 그루밍(grooming)이라고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언론에서는 '그루밍'을  아동, 청소년 성범죄 사건들에 사용되는 범죄수법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다.


발달심리학에서 보면 아동. 청소년은 사춘기 과정에서 기존의 관계를 부정하고 자신만의 영역을 인정해주는 새로운 관계를 찾으려고 하는 시기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사춘기를 맞은 청소년과 상실감을 겪게 되는 아동에게는 이 시기가 되면 부모와의 관계를 멀리하고, 자기를 편들어 주는 사람을 찾는 습성이 있다. 그러다 보니 범죄자들은 이 틈을 노리고 아동, 청소년에게 접근해 마치 조력자와 멘토 같은 역할을 자청하면서 친밀감과 신뢰를 형성한 후 자연스럽게 성적 요구에 응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그루밍 (grooming)' 이라는 범죄수법이다.

그럼 우리가 몰랐던
 그루밍 (grooming) 범죄 수법은 어떤 게 있을까?


며칠 전, 언론에서는 2013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연예기획사 대표의 여중생 성폭행 사건의 최종 판결을 일제히 기사로 다루었다. 당시 화두가 되었던 이유는 연예기획사 대표가 27살이나 어린 여중생과의 성관계를 두고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충격을 주었다. 당시 연예기획사 대표는 42살이었고, 여중생은 고작 15살이었다. 피해학생 쪽에서 주장하는 정황을 보면 그 여중생을 꼬드겨 가출을 하게 만들고 함께 동거까지 하는 과정에서 여중생은 임신까지 했었다고 주장했다. 여중생과 부모는 지금까지 연예기획사 대표에게 속아 강요에 의해 성관계를 가졌다고 뒤늦게 신고를 했고, 연예기획사 대표의 주장은 절대 강요는 없었다. 단지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항변했다.


결국 판결은 무죄였다. 관련기사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등) 등으로 기소된 연예기획사 대표에게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1,2심에서는 각각 징역 12년형, 9년형으로 연예기획사 대표의 성폭행 혐의를 인정했지만 결국 오늘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을 판결한 것이다.

이미지 : YTN
이미지 : YTN

무엇이 무죄의 결정적 증거가 되었을까?

재판에서는 여중생이 연예기획사 대표에게 보낸 '사랑한다'의 표현과 친숙함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이 수회 발견된 점 그리고 구속된 대표를 접견한 피해자와의 접견기록을 결정적 증거로 보았다. 다시 말해 강요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피해자와 검찰은 '두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강요된 표현이라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그간의 '서신'과 '접견록' 기록을 내세워 피해자의 진술을 믿기가 힘들다고 판결했다.  이번 사건이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폭력 범죄에 이용되는 '그루밍 (grooming)' 수법으로 의심되는 이유는 왜일까?


청소년과 아동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많은 성범죄 사건들을 경험한 나로서는  '그루밍(grooming)'이라는 신조어가 우리 사회에 정착해버리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을 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경험했던 청소년과 성인 간의 강압적 또는 위계적 성범죄 사건들이 마치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처럼 스쳐 지나갔다.


한달 전, 가출한 여학생의 어머니께서 연락을 해온 적이 있다. 남편과의 불화로 수년째 각방을 쓰면서 딸아이도 온전마음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을거다. 그렇게 시작된 딸의 가출은 어느새 열 손가락 모자랄 만큼의 횟수를 채우고 지금은 그저 연락만이라도 잘 받고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스스로 집에 왔다가주는 것만으로 고마운 상황이라고 했다.


그런데 가출한 딸이 당당하게 집에 와서 29살 남자랑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그 남자랑 같은 방을 쓴다고 했다. 어머니의 태도는 우유부단했다. 논리적이지도 못했다. 가출신고를 하라고 권유했더니 그렇게 되면 딸이 자기와의 연락을 끊고 잠적할지도 모른다며 가출신고는 절대 안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남자랑 떨어뜨려 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 남자와 분리를 시키려면 법적인 조치가 따라야 하고, 결국 가출신고를 해서 '아동. 청소년 성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신고의무자 위반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다고까지 말씀을 드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무조건 가출신고는 안된다는 논리만 늘어놓았다. 이후 가출한 여중생을 만났을 때 나에게 보였던 행동은 너무도 당당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예요." 내 참...

이 외에도 초등학생과 성관계를 나눴다는 초등학교 여교사 사건에서도 당시 경찰조사에서 피해학생은 선생님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진술했던 적도 있다.


어찌 보면 '그루밍(grooming)'이라는 형태 아쉽게도  우리 주변에 널리 퍼져 있다는 생각든다. 범죄의 종류에는 수법이 있는 범죄와 수법이 없는 범죄로 나눌 수 있다. 수법이 없는 범죄란 결국 우발적이고 즉흥적이며 동정을 유발하는 그럴싸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처벌 또한 그리 무겁지 않다. 그러나 수법이 있는 범죄는 다르다. 무엇보다 계획적이다. 그리고 지극히 고의적이고 중요한 건 수법이 있는 범죄는 피해 당사자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성격도 띤다. 이런 범죄를 통상 판사들이 "죄질이 불량하여..."라고 표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걱정되는 건 '그루밍(grooming)'이라는 신조어가 이미 정착되고 있다 라는 것에 주목을 하게 된다. '신조어'가 생겼다는 건 우리사회의 악을 구성하는 '요소'가 또 출현했다는 의미를 뜻하기도 하고, 신조어가 자칫 개념 없는 범죄자들에게 계획단계에서 '착안'이 되면 어쩌나 하는 고민도 하게 된다. 하지만 마냥 부정적인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범죄, 특히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자행되는 성범죄에 대하여 범죄의 실체적 진실을 파헤지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도 크다. '그루밍(grooming)'은 아직 범죄수단으로써 고유한 판례를 지니고 있지 않지만 앞으로는 못된 사람들에게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키지 못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


'그루밍(grooming)'은
심리현상 '감정전이'와도 닮았다.


아니다. 엄밀히 따지면 '그루밍(grooming)'을 완성시키기 위한 수단을 '감정전이' 라는 현상을 이용하여 추악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겠다 라는 생각도 든다. '감정전이(Transfer of affect)'란  어떤 대상에 대한 감정이 그와 관련된 것에까지 옮겨지는 현상으로, 어떤 사람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면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사물조차도 긍정적으로 경험되는 심리적 현상이다. 특히 '감정전이'는 연령이 어릴수록 쉽게 나타난다.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읽지 못하는 아동과 청소년에게 이러한 '감정전이'가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그루밍(grooming)'과 같은 범주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해답은 교육이다. 단순히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고 친절하게 대해준다고 믿으면 안된다 라는 단순한 주입식 설명 말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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