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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Jul 24. 2018

축구를 그만두었지만.

 청소년을 위한 나라는 있다 - 축구 대신 더 멋진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2015년 4월.

중학생 축구부 선수들을 만났다. 운동선수 아니랄까 봐 원래부터가 말이 없던 아이들. 생전 가까이에서는 처음보는 경찰관이라 그런지 눈치를 보듯 시선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들이 조금 우습게 느껴졌다. 그 친구들을 만난건 재밌는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사전에 학교폭력 예방 교육을 위해 코치님과 협의가 있기는 했지만 의외로 아이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따라주었다. 가끔 여자 친구에 대해 말이라도 꺼내면 수줍게 고개를 돌리던 모습들까지 기억이 난다. 어쨌든 그 날 교육은 좋았다. 아무래도 고된 훈련보다는 백배는 나았을 것이다.

교육 이후로 나는 아이들과 빠르게 친해졌다. 훈련 소식과 경기 소식이 그들의 SNS를 통해 나의 SNS로 전달되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빠짐없이 댓글을 달아줬고, 때로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중학교 강연 시간에 사례로 들려준 적도 있었다. 꿈을 쫒는 아이들의 모습은 언제나 좋은 교육 소재였다.


그들은 늘 말했다. 훈련은 힘들다고. 더구나 학창 시절 다른 친구들이 공부하고 있을 시간에 필드에 나와 흙과 땀을 묻히는 훈련이란 솔직히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에게는 지금의 훈련이 도박과도 같은 모험이라고도 했다. 고작 이제 중학교 2학년이지만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부상. 재활. 재기 또는 포기.


2018년 3월

당시 축구부 주장이었던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거의 2년 만이다. 서로가 주어진 여건이 다르다 보니 많이 친했음에도 SNS 말고 직접 만나서 얼굴 보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당시 축구부 주장이었던 친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 대장님, 저 축구 그만두었습니다."


놀랐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해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던 친구였다. 부모님의 정성과 후원도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친구에게 축구를 그만두었다는 말을 듣고서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축구를 그만두게 계기는 고등학교 진학이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당시 팀원이었던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들이 했던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이 친구만은 안타깝게도 함께 가지 못했다. 그리고 부모님과 의논해 인근 지역 고등학교로 입학하여 축구를 이어갔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적응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대장님, 보고 싶습니다."


나는 한 걸음에 달려가서 그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우리는 밥을 먹었다. 나를 부른 날이 축구를 그만두겠다고 코치님께 말하고 채 2시간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물론 사전에 부모님과의 이야기는 이미 끝났다고 했다.


축구를 상실한 친구의 모습은 걱정했던 것보다 많이 좋아 보였다. 좋아 보인다는 것은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많이 고민했기 때문에 지금은 좋아 보이는 거다. 또 하나는 좋지 않은데 나를 위해 좋아 보이는 것 처럼 감추는 것이다. 둘 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앞으로의 계획을 잘 말해주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같아 마음이 좀 짠했다. 2학년이 되었고, 공부에 대한 기초가 없지만 부모님께서 도와주시기로 했다며 되려 나를 안심시켰다.


식사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 나는 친구의 결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아무래도 중간중간 '그래도...'라는 말을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의 결정에 당당하고 그 뒤에 든든한 부모님이 버텨주고 계시다는 걸 확인했으니 식사가 끝나갈 무렵에는 나도 부드럽게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음이 편해졌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가게 앞에서 셀카를 찍었다. 그리고 앞으로 10년까지 이 사진을 꼭 간직하자고 서로 약속했다.


버스에 오르는 친구를 뒤로하고, 나는 돌아오는 길에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쉽지 않았던 결정을 하셨습니다. 아버님."
"아이가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하니까 따라주었을 뿐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항상 옆에서 돕겠습니다."
"지금까지도 사실 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위님."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내가 마음이 아픈 건 어찌 보면 경찰로서가 아닌 부모라는 생각에서 마음이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부디, 축구 대신 더 멋진 꿈을 펼쳐 주기를 바라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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