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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Jul 24. 2018

부사관이 되어 나타난 여학생

청소년을 위한 나라는 있다 -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건 이유가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그러니까 이 학생을 처음 마주한 게 4년 전이다. 꽤 오래전이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청소년 단체 '청바지'(청소년 바라는 지구대의 줄임말) 동아리를 통해 모 여고에 다니던 이 학생을 알게 됐다. 학생은 금세 눈에 띄었다. 생각하는 사고방식과 행동하는 간결함. 그리고 어리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원칙과 자기 규범이 있어 보이는 모습은 보는 내내 나로 하여금 흐뭇하게 만들었다.


"대장님, 죄송하지만 제 꿈은 경찰이 아니라 군인입니다."
"그게 뭐가 죄송해... 하나도 안 죄송하다..."


경찰관이 운영하는 동아리에서 군인이라는 꿈을 가진 것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예의 바른 학생이다. 2014년 그리고 2015년 두 해 동안 그러니까 고3이 되기까지 그 학생은 학창 시절을 청바지 동아리에서 거의 보냈다. 그리고 고3이 되고서는 거의 연락하지 못했다. 수능이 가까워져 왔을 때도 내가 보낸 문자는 거의 읽지 못하는 듯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공부를 위해서 휴대폰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만큼 자기 일에 빠지면 몰입 그 이상을 하는 친구였다.


하지만 그 해, 수능에서 그 여학생은 원하는 대학교를 가지 못했다. 그리고 이내 연락이 끊겼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조차 아는 이가 없을 정도로 두문불출하며 나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마음 한편 가끔 생각이 날 때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건강하게 잘 준비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기억에서 멀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더구나 하는 일에 비하면 자주 학생을 떠올린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했다. 그 학생과 나는 그렇게 각자 바쁘게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2018년 1월.

새해가 되고 나서 3일이 지났을 때 SNS 메신저를 통해 한 장의 사진받았다. 꽃다발을 들고 있는 공군 여군의 모습 사진 아래로 또박또박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대장님, 오늘 자로 공군 부사관 임명받았습니다."

 

연락이 온 그 날은 바로 공군 부사관 임명식이 있는 날이었다. 그러니까 부사관에 합격했을 때도 연락하지 않더니, 훈련 중에도 연락을 할만할 텐데 연락도 안 하더니 기어이 훈련을 다 완수하고 정식으로 공군 부사관의 계급장을 달고서야 게 소식을 전한 것이다. 무엇보다 학창 시절 멋있는 군인이 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는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난 그 약속, 잊고 있었는 데...


학생은 약속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대장님은 너와의 약속을 잊어버렸었다. 그냥 걱정만 하고 있었단다.라고 했지만 그 여학생에게는 나와의 약속이 지난 시간을 버티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힘든 시간이 많았을 것이다. 대학을 잠시 접고 부사관을 선택해야 하는 과정에서부터 꿈을 위해 보고 싶은 많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힘들다는 부사관 훈련을 이겨내기까지. 어른도 감당하기 힘든 시간들을 혼자서 감당하게 만든 것이 진심으로 미안했고 또 고마웠다.


학생은 이제 일주일 쉬었다가 자대 배치를 받고 정식으로 근무를 한다고 했다. 자랑스러웠다. 그냥 학생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어도 행복했다. 또 연락을 드리겠다는 말에 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최근 불거져 나오는 군내 성범죄 관련해서 혹시라도 트러블이 생기면 언제든지 대장님과 의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랬더니 웃는다. 당연하죠. 하고 그저 웃기만 한다. 아마도 내가 오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공군은 좋겠다. 이런 유능한 인재를 뽑았으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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