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문제는 '작용'의 문제다.
부모들은 비슷하다.
우리 아이가 반 아이 전체에게 피해를 입었는 데 어떻게 화해를 하라는 말인가? 하고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보시는 학부모들이 대부분이다. 이럴 때 설명은 구체적이고 《인과관계》를 정확히 짚어 주어야 한다. 어느 한 단락에서도 누락되면 자칫 오해의 소지가 깊다. 쉽게 말해 차근차근 이해가 잘 되도록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남 지역에 거주하시는 어머님께서 갑자기 연락을 주셨다. 일전에 지방 강연을 갔을 때 내 강의를 들으시고 혹시 몰라 나의 연락처를 저장해두었다고 했다. 나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어머님은 나만큼 그리 반갑지는 않은 목소리였다.
"선생님, 저번에 강의를 들었던 학부모예요."
"아, 네... 어머님, 안녕하세요?"
"긴히 상의드릴 게 있어서 이렇게 갑자기 연락을 드렸습니다. 누구한테 물어볼 사람도 없고 해서요."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시죠."
"제 아들이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인데 덩치가 좀 큰 편이에요. 덩치가 크다 보니 학교 다니면서 사실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고 한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경미한 거라 그냥 잘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학교에서 우리 아이가 학급 반 전체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폭력으로 맞고 그런 건 아닌데, 반 아이들이 전체로 우리 아이 책상 위에 욕설을 써놨다고 하네요. 그래서 저한테 연락이 와서 당장 학교 선생님께 신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나서요. 왜냐하면 가해학생 중에 주도한 학생들 일부 부모님들이 계속 저와 만나자고 연락이 오고 학교에서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겠다고 하시는 데 이럴 때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좀 조언을 듣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반 아이 전체가 아드님께 그렇게 했다는 건가요?"
"네 선생님 말로는 조사해보니까 우리 아이만 빼고 반 아이 전체가 다 했다고 하네요."
"가해학생 부모님들은 왜 어머님을 만나자고 하는 건가요?"
"사과하고 싶다고 해서요. 저는 솔직히 너무 충격적이어서 사과는커녕 경찰서까지 가서 신고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아드님은 지금 어떤가요?"
"처음에는 많이 놀라서 당황했는 데 지금은 좀 괜찮아진 것 같아요. 그런데 학교를 가려고 하지 않아요."
"저라도 그럴 겁니다. 다른 한두 명의 아이들과의 문제도 아니고 반 아이 전체가 그렇게 행동했다면 자기가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을 거예요." "어머님의 솔직한 마음을 듣고 싶은데요. 이 사안이 어떻게 처리되었으면 좋을까요? 어머님."
"아이들이 한 행동이 괘심 해서 경찰서 신고는 아니더라도 학교에서 징계를 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어머님 마음이 좀 풀리실까요?"
"그거라도 해야지 저렇게 단체행동을 해서 우리 아들을 괴롭혔는 데 가만히 있으면 안 되잖아요."
"아드님은 뭐라던가요? 반 아이들이 징계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하던가요?"
"네, 아들은 무조건 징계를 내려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어머님,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일단 먼저 아드님이 앞으로가 더 걱정이 돼요. 만일 어머님과 아드님이 원하는 대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어서 학교폭력 조치를 받았다고 하면 모두 학생부에 기록이 올라갈 것이고, 자체 징계를 받으니까 당장은 아드님 기분이 좋을 수 있는 데 그다음이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괴롭힐까 봐 그렇다는 건가요?"
"아뇨. 징계를 받았으면 반 아이들은 절대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할 겁니다. 그렇게 되었으니 아드님은 같은 반에 있을 수도 없어서 다른 반으로 학급교체가 이루어질 것이고요. 그런데 문제는 징계를 받은 전체 아이들이 아드님을 왕따 시키는 것은 물론 아드님이 학교에서 욕설을 하거나 누구를 험담하거나 누구를 괴롭히는 일이 발생하면 즉각 학교에다 신고를 할 것입니다. 왜냐면 아이들도 당했으니 너도 당해봐라 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렇게 되면 무분별하게 신고가 이루어질 것이고 오히려 우리 아드님이 학교에서 견딜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입니다. 그게 저는 가장 걱정스런 부분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화해를 하는 게 맞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상황이라면 무엇보다 반 아이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 지 그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반 아이들과 아드님이 이야기를 해야겠죠. 대체 무엇때문에 이런 사단이 났는 지 말입니다. 그리고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미 학교에 신고해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열린다고 연락을 받았는 데요?"
"괜찮습니다. 아드님이 피해가 없고 화해를 원한다면 가해학생들은 조치를 받지 않습니다. 단지 중요한 것은 가해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해서 학교에 요청하여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조정해달라고 요청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들이 싫어할 것 같은데요..."
"아들의 의견은 지금 상황에서는 조금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드님은 지금 많이 흥분되어 있고 행위만을 생각하고 분노를 가지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가해학생들이 한 두 명도 아니고 여러 명도 아니고 반 전체가 그렇게 했다면 분명 아드님의 행동에도 그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상식적으로 말이죠."
"감사합니다. 선생님. 애기 아빠랑 의논을 다시 해봐야 할 것 같네요."
"네, 그렇게 하시죠."
이것은 '작용'이다.
어떠한 성질을 더해서 어떤 결과가 나온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경험 위에 상식적인 계산법이 적용되면 누구나가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러한 사실들을 너무 쉽게 알지 못하는 걸까? 그것은 바로 '감정'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물어보면 된다. 어떤 조치를 하느냐에 따라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아이를 놓고 실험을 한다는 것은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그 실험에 따라 아이에게 미칠 영향이 어떨지를 생각하면 이 것은 좀 더 안전한 가능성으로 생각을 모아야 한다. 적어도 이건 우리 자식들에 대한 문제이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