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밥이 되면 좋겠다.
글이 밥이 되지 못한다 해도
나는 글쓰는 걸 멈출 순 없겠지만.
친구도 모르는
내 속마음,
박박 긁어주는 게 바로
글의 묘미
어떤이와의 약속 없어도
한 획으로 시작한 글자가
빈 페이지를 가득 채우면
따뜻한 장작 옆에서
언 발을 녹이는 것처럼
심장의 나사를
야금 야금 풀어버리는
마음의 이완제
부드러운 음악을 곁들인다면
고급 레스토랑에 앉아 있는 것도 같고
그저 고요속에서 나와 너만 헤매더라도
마치 템플 스테이에 들어온 것도 같으니
한자 한자 더 해지면
내 마음의
응고점에 언젠가는 닿을테니.
허나 모스기호를 풀어내려면 꽤 시간이 걸릴거야.
그땐 산책을 즐겨야지.
노트, 연필.
여유가 있다면 노트북도 좋지.
배를 타지 않고도 바다를 건너왔고,
우주선에 오르지 않고도 저 별을 보고 왔지.
심리치료사를 만나지 않고도
나는 내 마음 속에 다이빙 했단다.
어푸 어푸
수영을 하는 동안.
나는 몇번이고 숨을 몰아 쉬고,
때로는 물을 들이 마시기도 했지만.
헤엄을 즐기기 시작한 걸,
파도도 탈 줄 알게 된 걸.
풍덩.
잠깐 앉아서,
딱 커피 한잔 마실 시간동안.
커피가 싫다면
빨간 수박주스 한잔 마실 동안
수박주스도 싫다면
물한잔 마실 동안
아주 잠깐만
저 황무지에 있는 너를 다시
햇살이 비치는 저 지중해
올리브 가득한
포도밭으로 데려올
준비가 되었을까?
바로 여기,
하얀 여백의
시간 속으로.
휴가가 한창인 날들이다. 무더운 여름에는 계곡에서 수박을 꺼내어 잘라 먹던 날들이 생각이 난다. 어른이 된 휴가는 돈 적게 쓰면서 더 멋진 시간을 보낼 궁리를 하느라 며칠 밤을 설쳤다.
돈을 적게 쓰면서 더 멋지게 라는 말이 잘못되었는지 모른다.
뭐든 멋져 보이는 것들은 비싸기도 하니 말이다.
기분을 내며 고급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어보고, 멋진 호텔에서 잠을 자보기도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달래는 건
결국 나를 알아주는 일이었다.
이토록 내가 나를 몰랐었나?
내가 좋아하는 포근한 것들은
모두 글 속에서 만나고 헤어져야 하는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글을 쓴다고 특별해지는 것도 아니었지만,
저 멀리 가지 않아도
지중해의 포도밭이 내 앞에 있는
유일하게 돈이 안들고 더(?)멋진 수단은
글쓰기인지 모르겠다.
이 글을 쓰고 나면 분명
또 멋진 곳을 찾아 해매겠지만,
적어도 돌아올 곳을 아니까,
결국에는 마음으로 돌아오기 위해
그 먼 여행을 떠나는 줄을
이제는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