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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카페 사장의 비밀

by 미누


이곳 거문마을에는 특별할 일이라고는 없었다. 10 가구 정도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 그런데 요즘 들어 특별한 일들이 생기고 있었다. 마을에 새로운 사람들이 자꾸만 들어오고 있다. 그것도 젊은이들이 말이다.

이현이 처음 거문마을에 왔을 무렵에 젊은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각기 다른 노인들의 집에 잠깐씩 아들 딸들이 올 때마다 온 마을은 잔치 분위기였다. 기저귀 갈 때부터 봐온 나은이가 도시로 취업해 나가 결혼을 하고 아들 딸 하나씩을 데리고 골목을 거닐 때는 추운 겨울 따뜻한 봄이 온 것 같이 마을에 온기가 퍼졌다. 특별할 일 없는 것이 좋은 것일지도 모르는 노인들에게 하루 중 가장 호사로운 일은 꽃집 할머니네에서 다방 커피 한잔씩을 마시는 것이었다. 그런 호사로운 일상이 더 특별해진 것은 바로 재이가 온 이후였다. 재이가 온 이후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꽃집 할머니네에 머무는 시간이 아주 많이 길어졌다.

하지만 그런 시간도 잠시였다. 어느 날인가부터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남아있던 어르신들의 흔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언제나 동네 일에 앞장서던 동하네 할아버지가 앞마당 돌부리에 걸려 크게 넘어지신 후부터였다. 다리가 부러진 후 치료가 늦어져 돌아가시자 마을에는 어둠이 내려앉은 것 같았다. 남은 해는 서로를 돌보자며 약속했던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자 혼자 남겨진 동하네 할머니도 시름시름 앓기 시작해 곧 돌아가셨다. 다음 차례는 석현이네였다. 석현이네 할아버지는 아들네에 들렀다가 간에 있는 암덩어리를 발견했다며 꽃집할머니네서 커피를 마시다 불쑥 말을 꺼냈다. 몇 달을 아들과 실랑이 끝에 석현이네 할머니랑 아들네 근처 요양원으로 들어가셨다. 그래도 아들네 가까이로 간다며 남은 이들은 담담하게 위로했지만, 할머니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나는 죽어도 여기서 죽고 싶어."

석현이네 할머니는 원체 감정 표현이 없어 늘 높낮이가 일정하던 목소리가 특색이었다. 그러나 이별 앞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주체 없이 높아졌다 낮아지곤 했다. 다음은 나은이네였다. 간호사 딸을 뒀다고 동네방네 자랑하던 나은이네 할머니는 한두 번씩 딸네로 아이들을 봐주러 가더니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한 달에 되었다. 결국 나은이네 할머니마저 바쁜 딸내미의 손주들 걱정에 짐을 쌌다.

그렇게 하나둘씩 집들이 비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도시와 달리 시골에는 빈 집이라 할지라도 새 주인을 맞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폐가처럼 버려진 집이 하나 둘 늘어가던 때였다. 티브이에서 곧 이태리의 휴양지 같은 곳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공약이 나온 직후, 간간히 사람들이 집을 보러 왔다. 하지만 선뜻 사겠다는 사람 하나 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사뭇 달라진 분위기였지만 이현은 그래도 이 거문 마을이 좋았다. 노인들만 살고, 노인들마저 떠나 빈 집이 흉흉하게 남아도, 이 마을에는 다른 마을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 이유는 대체 뭘까. 이현도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그건 아마도 작은 꽃집 할머니 집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part 2


작은 꽃 집 할머니마저 떠난 후 남겨진 집은 달라졌다. 그래도 살만했던 동네도 그녀에게 무의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현은 마을을 떠날 결심을 하지 않았다. 남겨진 그녀에게 할 무언가가 있으리라. 하지만 이현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먼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했다. 작은 꽃집할머니네 집을 치우는 일을 시작했다. 마당에 꽃을 돌보고, 식기들을 종종 꺼내 쓰고 닦았으며 바닥에 먼지를 털었다.

그전부터 궁금했던 사진 속 인물이 혹여나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할머니는 그녀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듯 보였다.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굳이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와 보낸 시간을 통해 이현은 그녀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할머니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이를 혼자 길렀으며, 그 남자아이는 이곳을 떠나 돌아오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할머니의 낡은 책상 서랍을 열자 액자에 꽂힌 그의 빛바랜 사진들이 있었다. 할머니는 어떤 오해였는지 몰라도 아들과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다. 그러나 아들에게 써두었던 할머니의 편지 수십 통은 그녀가 죽고 난 후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이현은 그 편지를 모아 봉투마다 또박또박 쓰여있는 동일한 집주소로 보냈다. 혹시나 이사를 갔을 경우를 대비해서 편지는 복사를 해 두었다. 아마도 그 일이 그녀가 할 일이라 느껴졌다.

재이는 종종 이 마당에 와서 풀을 뽑거나 농사 놀이를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현은 집 안 곳곳을 쓸고 닦다가 힘들 때는 아무 데나 걸터앉아 꽃들이 핀 마당을 바라보았다. 할머니의 손길이 사라진 마당이지만 아직 꽃들은 그대로였다. 아장아장, 엉덩이를 씰룩이며 걷던 재이는 이제 손쌀같이 바람을 가르며 뛰어다녔다.

변한 것은 할머니가 사라졌고, 그의 아들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사실 이현은 처음 그를 바라보았을 때 단숨에 알아챘다.

'작은 꽃집 할머니의 아들이 돌아왔어.'

할머니는 아들에 대해 말을 아꼈었다. 하지만 재이를 다루는 손놀림에 그대로 할머니의 젊은 시절 엄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밥을 먹이는 손길, 아이를 달래는 말솜씨, 곳곳에 비밀처럼 숨겨둔 동화책들을 꺼낼 때면 한 아이를 길러낸 시간을 엿볼 수 있었다

.

'아이는 성심성의껏 키워서 세상에 내 보내는 게 엄마 임무야."


그 말이 언제나 슬펐다.


"이렇게 애써 키우는데 세상에 보내면 안 되죠. 제가 끼고 살 거예요."


웃으며 하는 이현의 말에 할머니는 쓸쓸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면 재이엄마가 더 외로워."


"할머니, 외로우시구나?"


"나? 그렇지. 보고 싶지. 문득문득.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할머니의 말 끝이 흐려졌을 때 이현은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


'그 아들은 왜 엄마를 보러 안 오는 거예요?'


이현은 속으로 아들이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거나, 머나먼 이국으로 이민을 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아들은 지금 버젓이 살아 이 집에 있었다. 할머니가 가고 그의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



part 3



이현은 며칠 전 그녀에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한주와 해안이 카페 안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둘의 분위기를 눈치챈 기훈과 수호는 각기 제 자리로 돌아갔다. 기훈은 바에 남아 일거리를 찾았고 이현과 수호는 바 뒤편의 베이커리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이현은 그곳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기훈이 팔을 들어 베이커리 창고를 가르치며 둘은 그곳으로 들어가 있으라는 몸짓을 한 이상, 계속 그곳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 수호는 살짝 문을 잡아당겼지만 바람결에 문이 닫혔다. 밖에서는 둘의 진지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해안의 목소리인지 한주의 목소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그런데요, 왜 왔어요?"


적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서 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 물음이 적절치 않다는 생각을 한 순간 이미 시간은 늦었다. 이현의 말투 끝이 흐려졌다. 그리고 눈빛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때까지 카페에서 수호와 기훈을 바라본 이현이었다. 그녀가 비밀을 알 거라고 수호는 생각하지 못하였을 테니까.


'수호는 지금 이 질문의 의미를 과연 알 수 있을까?'


하지만 이현의 생각은 빗나갔다.


"거문마을이 좋으니까요."


그녀의 질문은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지 못했다. 정작 그녀가 물었다고 생각했던 질문은 이랬다.


"그런데요, 왜 (돌아) 왔어요?"


"이현 씨도 그래서 이 거문마을에 게스트 하우스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죠. 하지만 저는 사연이 있어요. 어떤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이곳에 오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수호가 길고 하얀 손가락으로 오븐을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저도 그래요."


침묵이 이어졌다. 이현의 예상은 또다시 빗나갔다. 수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가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을.


"저도 그 할머니 덕분에 돌아왔죠. 다시."





epilogue




한주와 해안의 대화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은 기훈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여기 이 커피 좀 마셔볼래요? 이현 씨?"


둘의 대화가 끝났으니 나와도 된다는 기훈의 사인이었다. 이현은 수호의 눈을 처음으로 바라보았다. 베이커리 룸으로 들어와서 첫 눈 맞춤이었다.


"기다렸었어요."


이현이 말했다.


'아차. 또 실수'


이현은 말을 뱉고 나서 또다시 중요한 말을 빼버렸다는 걸 알아챘다. 주어가 빠진 말. 누가 과연 그를 기다려왔을까?


"오고 싶었어요. 늘."


이현도 수호도 알고 있었다. 기다렸던 사람이 누구인지. 일정한 톤을 유지했던 수호의 말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돌아온 걸 환영해요... 정말로. 자, 나가요."


그녀는 쑥스럽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그녀는 그를 환영했었다. 그를 만난 처음부터 마음속으로 열렬히 환영했다. 하지만 확신이 없었다. 그가 왜 이곳에 왔는지. 그녀는 카페 뒤편에 자리한 할머니의 옛집을 바라보았다. 집 한편에 놓인 액자 속의 소년은 발그레한 얼굴 위로 환한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그리고 작은 소년의 옆에 조금은 지쳐 보이는 한 여자의 얼굴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끝없이 펼쳐진 거문바다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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