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 in Lowland Mar 26. 2020

Gezellig 와 Nuchterheid

네덜란드의, 네덜란드 인들의 가치관에 대해.

'나는 미국 드라마랑 쇼를 많이 보니까 여기 문화에 금방 익숙해 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너무 달라서 충격 받았어.'


2013년 가을, 헤이그의 미술 학교에 입학한지 두 달 정도 지났을 무렵, 같은 학교에 교환학생을 온 한국 친구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 그때 나 역시 새삼 깨달았다. 나 또한 그 친구 처럼 '서양'이라는 막연한 카테고리 안에 네덜란드를 집어 넣고 있었구나.


네덜란드에 처음 왔던 2013년. 갖가지 문화 충격을 겪었던 한 달 간, 나는 내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너무나 공유하고 싶었다. 이 나라가 얼마나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지 떠들고 싶었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짧은 시간 동안 내가 관찰하고 겪은 일들을 네덜란드에 대한 객관적인 진실인 양 적는 것이 과연 내가 원하는 것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단기간에 걸쳐 한 국가에 대한 단편적인 관찰만 한 채 잘못된 이미지를 그들의 나라에 전달하던가. 한국에 고작 2년 산 외국인이 한국 사회와 교육에 대해 책을 집필한다면 나는 과연 그 책을 신뢰할 것인가.


어느덧 네덜란드에서 생활한지도 7년차가 되어간다.

물론 긴 시간 이라기엔 부족하다. 나의 네덜란드어 실력은 여전히 형편 없고, 네덜란드 쇼를 볼때 어떤 부분에서 웃어야 할지 파악이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말로 표현하기 애매했던 네덜란드-한국 문화 간의 괴리감이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구체화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동양'에 대한 선입견을 가진 네덜란드인들을 접하듯이, 한국인들 역시 네덜란드 인들을 문화적인 선입견을 통해 바라보기도 한다.

내가 에세이를 쓰고 싶은 이유가 이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서양 어딘가'가 짬뽕된, 교보문고 문구 코너 한 귀퉁이에 가득한 국적불명의 팬시제품 같은 네덜란드가 아니라, '내가 보고 겪은' 네덜란드를 글로 정리해 보는 것.



첫 번째 포스팅으로 다루고 싶은 것이 바로 그 중 하나다.

Gezelling, 그리고 Nuchterheid.

Bierkade, Den Haag, Zuid-Holland. 2019.  copyright Min van der Plus


1. Gezellig.


 1-2년차 네덜란드 생활때 학교를 다니며 가장 놀랐던 것 중의 하나는, 점심이나 저녁을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혼자 먹는 학생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혼밥'이라고 부르는 이 행위. 서양 사람들은 개인주의적이라 혼밥을 잘 하는데 한국인들은 공동체 문화 때문에 혼자 놀거나 밥먹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며, 이른바 '혼밥 문화'가 퍼질 즈음에 네덜란드에 온 나로서는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마치 혼자 앉아서 밥을 먹는것이 죄인 것 처럼 정말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 같은 반의 네덜란드 친구에게 이것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그녀는 이 질문 자체에 놀라며 '혼자 밥을 먹는 것은 전혀 Gezellig 하지 않잖아!' 라고 바로 대답했다. 그때 처음 접한 단어. Gezellig.


 

한국인인 나는 발음조차 쉽지 않다. 최대한 정확하게 발음법을 써보자면  'ㄱㅎ ㅔ 젤 르ㅓ ㄱ흐' 정도일 것 같지만 편의상 '헤젤리흐'라고 써야 할 것 같다. '헤젤리흐'는 더치 사람들의 생활의 가치를 여실히 담고 있다. Cosy, Pleasent, Relaxing, Togehterness, Nice, fun 등등.


그러나 '헤젤리흐'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번역하기 까다롭다 꼽는 단어 중 하나다. 많은 뜻을 동시에 내포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쁘다' '즐겁다' '아늑하다' '편안하다' 라고 번역하기엔 복잡하다. '헤젤리흐'가 사용되는 상황이 여러가지 이기 때문이다.


'헤젤리흐'한 사람= 매우 유쾌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며 적절한 농담 구사력으로 무례한 선을 넘지 않는 사람.

'헤젤리흐'한 식당= 조명이 아늑하고 분위기가 편안하며 음식이 맛있지만 너무 럭셔리 하지 않고 생활소음이 적당히 들리고 너무 시끄럽지 않은 식당.

'헤젤리흐'한 도시= 즐거운 활기와 적당한 인구밀도와 '헤젤리흐'한 식당과 상점이 많고 레저를 즐길 수 있는 공원도 있어야 하며 문화생활도 즐길 수 있는 곳.

'헤젤리흐'한 모임= 가까운 지인들과 즐거운 대화를 하며 캐주얼한 저녁식사나 파티를 하는 모임.


구글에 'Gezellig'를 검색하면 나처럼 네덜란드에 사는 수 많은 길 잃은 어린 양들이 이 단어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웹사이트가 정리를 아주 잘 해놓았다. https://www.dutchamsterdam.nl/155-gezellig )


네덜란드는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전혀 '개인적'이지 않은 나라이다. 학생들은 부모와 따로 살지만, 대부분은 주말에 반드시 부모의 집에 간다. 조부모와 친척들과의 모임 역시 매우 빈번하다. 한국이야말로 오히려 친척들을 보는 때는 명절 뿐인 것 같은데, 여기 아이들 대부분은 정말 가족과 친인척 간의 교류가 활발했다. 저녁때는 친구들과 저녁을 먹거나 술을 마시고, 파티를 한다. 파티라는 것이 뭐 거창한 것은 전혀 아니다. 소소하게 저녁을 차려 먹으며 부담 없는 대화를 나누고, 음악을 틀고, 춤도 추기도 하고, 사람간의 교류를 하는 것. 그것이 Gezellig한 사람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상한 사람, 아웃사이더, ongezellig한 사람이다. 네덜란드에서 이것은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때까지 점심을 혼자 먹는다는 것은 사회적 자살행위와 다름 없다지만 대학생이 되어서는 그렇게까지 의존적이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커진다. 고깃집에서 혼자 먹는다던가 하는 것은 터부시 되지만, 학교 구내식당에서 밥을 혼자 먹는 것은 그닥 상관이 없다. 그러나 네덜란드에서는 대학교라 할지라도 캔틴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것은 '나는 gezellig 하지 않다' 라는 것을 공표하는 것과 같다.


어떤 무리에 속해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무리'에 속해 있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다. 편안하게 '어우러지는 것'. 그것이 gezellig 이고 네덜란드인들이 중요히 여기는 생활의 가치, 방식, 이상 이다.





2. Nederlanse  Nuchterheid

네덜란드 사람들이 외국인들에게 거의 반드시 말하는 것이 있다. 더치 사람들은 직설적이라고, 그래서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전혀 그런 의도는 아니라고.

이 Dutch Directness에 대해 나는 정말 할 말이 많다. 앞으로 종종 이 주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쓰겠지만 지금은 일단 네덜란드 인들이 '본인들은 그렇다고 믿는' 직설적인 화법의 근원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2020년 3월 12일, 코로나 사태로 인해 장관 회의 후 네덜란드 총리 Mark Rutte와 RIVM의 대표가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총리는 사태를 안일하게 바라보았고, 이탈리아와 다르게 네덜란드는 일상 생활을 유지할 것이며 '손이나 잘 씻으라'는 발표를 했다. 그때 총리가 쓴 표현이 있다. Nederlandse Nuchterheid.

네덜란드 인의 이성. Nuchter는 영어로 비슷한 단어를 찾으려면 Sober 정도가 나올 것 같다. 침착하고, 냉철하고, 패닉하지 않으며, 오롯이 바른 이성으로 사태 판단을 하는 것. 네덜란드 인들이 그들의 국민성을 정의할 때 가장 자주 나오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것은 아마 우리가 흔히 남유럽 사람들에 대해 떠올리는 즐겁고 여유로운 성격이라는 스테레오타입과 정 반대되는 개념일 것이다. 네덜란드는 오랫동안 외세의 풍파에서 독립적으로 일어서고자 노력했던 역사를 자랑스러워 한다. 그리고 오늘날 선진국의 반열에 들 수 있었던 것 역시, 실리적으로 냉철한 판단을 하는 Nuchterheid함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자부심을 가진다.  


내가 겪어본 바로는, 물론 한국과 비교했을때 위계질서로 인한 소통/ 행위의 제한이 현저히 적기는 하다. 네덜란드어에 존댓말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어의 존댓말과는 쓰임이 다르다.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간의 효율적인 소통이 가능하다. 직설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직설적인 화법은 의사소통 시 시간 낭비와 감정 낭비를 방지한다. 네덜란드인들은 그래서 외국인들에게 말한다. 우리의 직설적인 화법에 상처받지 말라고. 절대로 나쁜 의도가 아니며 다만 합리적이고 빠른 결정을 위한 네덜란드 인들의 특징이라고.

언뜻 듣기에는 gezellig 하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 Gezellig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네덜란드 인들이 아니었나?


몇 년 동안 그놈의 '우리는 직설적이다'라는 말을 들어오면서 네덜란드 인들을 관찰한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직설적으로 '의견'은 제시할 수 있지만, 직설적인 '비판'은 곤란하다.

왜냐? Gezellig 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 청문회나 트위터에서야 물론 직설적인 비판은 가능하다. 그런데 그건 전 세계가 마찬가지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선생과 학생 간의 의견 충돌이 있을 때, 의견 제시는 상대적으로 한국에 비해 자유롭다. 그러나 비판? 과연 네덜란드 인들은 비판에 쿨한가?


3학년 때 학교 과 내부의 일처리가 굉장히 혼란스러웠던 때가 있다. 행정부와 학생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았고, 그 때 외국 학생도 네덜란드 학생도 모두 입을 모아 항의해야 한다고 무려 3개월 동안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학기 말 쇼가 모두 끝나고(나는 패션&텍스타일을 공부했고 매 학기 말 패션쇼와 텍스타일 쇼를 한다.)  쫑파티에서 이 이야기가 나왔다. 처음에는 선생들에게, 과와 학생들 간 의사소통이 좀 더 명확했으면 좋겠다 라고 말했던 것이 시작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예시를 들었다.나는 네덜란드 사람들은 직설적인 소통을 좋아한다니까 이래도 되겠지 싶었다. 전혀 공격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선생들의 반응은 뜻밖에도 매우 방어적이었고, 분위기가 순식간에 살벌해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분명 모든 학생들이 그 자리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토론을 계속한 것은 나와 일본 학생 둘 뿐이었다. 왜일까?


길에서 내가 인종차별을 당하더라도 내가 방어를 위해 큰 소리를 지르는 순간 '이상한 사람'이 된다. 경찰을 불러서 이성적으로 처리를 해야지, 내가 소리를 지르면 사람들은 나 또한 '이성을 잃은 사람'으로 취급한다.

장례식장에서 한국처럼 곡소리를 내며 우는 상황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는 순간 '미친 사람'이 된다.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공개적인 비판을 삼가해야 한다. 그러면 '분위기를 깨는 인간'이 된다.


질서 있게, 조용히, 차분하게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네덜란드 인의 미덕이다.

결국 네덜란드 식 이성 Nederlandse Nuchterheid와 Gezellig는 통하는 것이다.





우리가 막연하게 가졌던 '인싸 서양인'의 스테레오 타입과 전혀 다르지 않은가?


매거진의 이전글 산 넘어 산, Helaas Pindakaa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