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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in Lowland Mar 30. 2020

산 넘어 산, Helaas Pindakaas.

관용어로 보는 네덜란드의 생활상.

'Helaas pindakaas' on a mountain blanket. Illustration by Min van der Plus. 2020.


첫번째 포스팅에서 네덜란드 사람들을 일반화 하긴 했지만, 나는 '국민성'이라는 것을 어느정도 믿어야하나 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한국 사람이라고 모두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 것 처럼, 일본 사람, 브라질 사람, 네덜란드 사람, 모두 다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을까.


하지만 각 문화권마다 분명히 공통된 관습과 문화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지형이 다르고, 토양이 다르고, 때문에 식습관이 다르고, 사용하는 도구들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 그 차이점은 인간이 타고난 근본적인 사고방식의 차이는 아니다. 후천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차이점들 이기 때문에, 다른 문화권에 몸담게 된 사람이라면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후 낯설었던 관습에 점점 익숙해진다.


1학년때 부터 2학년 까지 나는 피케 Fieke 라는 네덜란드 친구와 모 Moe 라는 한국 친구와 함께 텍스타일 과에서 공부를 했다. (모 와는 졸업도 같이 했지만 피케는 중간에 학교를 옮겼다.) 모는 피케에게 종종 한국어 표현들을 가르쳐주고는 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피케가 기억하는 한국어 관용구가 하나 있는데, 바로 '산 넘어 산' 이다. 앞으로 다른 포스팅에서 다루겠지만, 내가 다닌 KABK의 과제량은 정말 상상을 초월해서, 한 과제가 끝나면 더 큰 과제들이 끝도없이 도미노처럼 연속해서 솟아났다.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인지라 피케는 이것을 처음 들었을 때 이 관용구를 만든 사람은 미대 사람일거라고 단언했다.


피케가 말하기를, 이건 정말 네덜란드 사람이라면 애초에 상상도 할 수 없는 표현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네덜란드에는 산이 없기 때문이다.


De Pier, Scheveningen,  photo by Min van der Plus, 2018.

독일, 벨기에와 국경이 맞닿은 Limburg(림부르흐)지방에는 '산'이라고 불리는 얕은 언덕들이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 거의 모든 전역은 윗 사진과 같은 평지이다. 평지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네덜란드가 서유럽의 끝자락의 삼각주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 삼각주는 네덜란드라는 나라가 생기기 훨씬 전인 기원 전(BC) 부터 해일이나 폭풍, 해수면 높낮이 변화로 드라마틱하게 모습을 바꾸어왔다. 이 삼각주를 '인간의 힘'으로 간척지화하기 시작한 것은 '국가로서의 네덜란드'가 성립되기 전인 약 1300 년도 부터인데, 이것은 추후에 다룰 것이다.


아무튼 산악지대에서 살지 않은 피케로서는 이 '산 넘어 산'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을 하고 있다.


반면 나에게 가장 인상깊게 다가온 네덜란드 관용구는 'Helaas Pindakaas'이다. 이 관용어는 20세기에 나온 신생 관용어인데, 델프트Delft 시의 한 교수가 리우와르덴Leeuwarden 대학교의 학보에 실린 표현을 발견한 것이 기원이라는 설이 있다.


'Helaas'는 한국어로 '안됐네', '아쉽지만' 등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다. 'Pindakaas'는 땅콩버터인데, 'Pinda'는 땅콩이고 'Kaas'는 치즈다. 왜 버터(Boter)가 아니라 치즈(Kaas)일까? 전 세계에서 땅콩버터에 '치즈'를 붙인 나라는 네덜란드 뿐이다. 1783년 경,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수리남에서 네덜란드 사람들이 땅콩으로 만들어진 블록 형태의 음식인 Pinda-dokoen을 보고, 그 덩어리진 모습이 덩어리 치즈같아 보여서 Kaas라고 이름 붙였고, 추후에 고체가 아닌 좀 더 부드러운 형태의 스프레드가 되었을때도 그 Pindakaas라는 이름을 유지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아무튼, 'Helaas Pindakaas'는 직역하면 도무지 무슨 뜻 인지 알 수가 없다. '안됐구나 땅콩버터'라니, 당최 무슨 말일까.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 표현을 참 많이 쓰는데, 그 뜻은 '일이 생각대로 안풀려서 안좋게 되었지만, 뭐 어쩌겠어' 에 가깝다.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그걸 물고 늘어지며 괴로워하기 보다는, 얼른 툭툭 털고 일어나 넘겨버리자 라는 식이다.

내가 상상하건데, 오랜 시간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물을 공부하고 다스려야 했던 (治水) 네덜란드의 선조들은, 아마도 '뭐 어쩌겠어' 라고 실패를 인정하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한 계획을 이어가는 정신이 없이는 거대한 간척사업을 지속해 올 수 없지 않았을까?


물론 이것은 나의 제멋대로 해석이고, 아무튼 Helaas Pindakaas는 단어의 라임을 맞춘 귀여운 말장난같은 관용어이다. 네덜란드인의 식생활에 땅콩버터가 어떤 비중을 차지하는지 볼 수 있기도 하다. 한국에 된장이나 간장독을 사용한 속담이 있는것과 마찬가지 일 것 같다.


관용구로 말미암아 한 나라의 생활상을 느끼는 것은 굉장히 흥미롭다.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네덜란드의 관용구는 'Op die fiets'인데, 직역하면 '자전거에 올라탄' 이다. 이것 역시 뜻이 즉각 와닿지 않는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이 표현은 자신이 모르던 어떤 것을 이해했을때, 혹은 너무 당연한 사실을 잊었다가 환기했을때 쓰인다.


예)

"컴퓨터 전원은 어떻게 켜?"

"전원 버튼을 누르면 돼"

"아, 그렇구나! op die fiets!"


네덜란드 사람들의 생활에 자전거가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관용구에 별반 의문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페달 밟는 연습을 한 것이 분명한 네덜란드 사람들이기에, 자전거만큼 ‘당연’한 것은 없으니까.


내가 아는 네덜란드의 관용구들은 아직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산 넘어 산, 또 그 뒤의 산들을 한참 넘어야 이 나라에 좀 더 익숙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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