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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in Lowland May 12. 2020

요거트가 아닙니다. '크왁' 입니다.

다양한 네덜란드 유제품 이야기 (1)

네덜란드에 유제품이 있듯이 한국에는 김치가 있다.

헤이 외쿡 사람, 두유 노 김치? 같은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어느 민족이나 자기들이 전문적으로 분류해서 먹는 고유의 음식이 있다는 뜻이다.


김치의 종류가 얼마나 무궁무진하게 많은가. 굴김치, 갓김치, 보쌈김치, 백김치, 총각김치, 석박지, 깍두기, 얼갈이, 파김치, 오이소박이, 나박김치 등등. 누군가는 100가지라 하고, 누군가는 300가지가 있다고 하는게 한국의 김치다. 하지만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 '김치' 라고 하면 일반적인 배추김치 이상을 떠올리진 않는다. 김치는 김치일 뿐이다. 


유제품도 마찬가지다. 요거트를 예로 들어보자면, 한국에선 그릭 요거트를 제외하면 딱히 요거트의 출신 성분을 따지지 않는다. 불가리스 마저도 불가리아 요거트 스러운 이미지만 마케팅에 이용했을 뿐, 불가리안 요거트와 전혀 상관이 없다. 한국에서 요거트는 그냥 요거트일 뿐이고, 제품의 차이는 '감성'의 차이다. '맛있는 요거트' '생크림 요거트' '원유 요거트' '과일 담은 요거트' '캡슐 요거트' '진심 담은 요거트' '수제 요거트' '자연 그대로 요거트' 등등. 


네덜란드의 김치가 유제품 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이 '분류'의 차이 때문이다. 김치의 분류가 김치 종주국인 한국에서 매우 까다롭고 정확하듯이, 네덜란드에서는 유제품의 분류가 김치처럼 다양하다. 네덜란드인들에게 유제품은 그야말로 전통 식품이자 매일의 식탁에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식품이다. 이 네덜란드의 다양한 유제품들에 대해 몇 회에 걸쳐 써보고자 한다. 


anonymous painting in the studio of Beppe, photo by Min va der Plus, 2018.





내가 한창 슈퍼에서 기초 더치를 독학하던 무렵, 가장 큰 난관이었던 것이 요거트와 우유를 사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행복한 난관이었다.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나는 슈퍼 안을 둘러보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비슷하면서도 디테일은 전혀 다른 제품들 사이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유제품의 종류가 한국과는 비교도 안되게 많은 네덜란드의 슈퍼에서, 더치를 지금보다도 모르던 시절에는 러시안 룰렛을 하는 느낌으로 거대한 유제품 냉장고를 둘러보며 아무거나 덥썩 집어오곤 했다.


제품 설명을 아무리 읽어본들 직접 먹어보는 것 만큼 확실하진 않다. 

입에 안맞으면 안 먹으면 그만이다. 

사람 사는 곳인데 먹고 죽진 않을테니까.


끽해야 2000원 정도의 사치를 부리며, 나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아무튼 그 경험은 나를 네덜란드 식문화에 빠르게 적응시켰고, 나는 슈퍼에서만큼은 천하무적이 되었다. 


네덜란드의 유제품 중에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제2의 그릭 요거트처럼 유행할만한 제품들도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발음하기 참 난감한 크왁 Kwark 처럼.


Kwark variations, photo by Min van der Plus, 2020.


크왁 Kwark (크봑, 크봙 같이 읽어도 된다)은 사실 요거트가 아니다. 제조 공정은 코티지 치즈에 더 가깝다. 유산균이 크왁엔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이다. 하지만 텍스쳐는 한국사람 기준에선 굉장히 진한 요거트에 가깝다고 본다. 그 점에서 아이슬란드의 스키르 Skyr와 굉장히 비슷한데, 스키르는 이미 미국에서 7,8년 전부터 건강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칼로리 대비 지방량은 굉장히 적고 단백질양은 아주 많아서 다이어트 식품으로 최적이기 때문이다. 크왁의 성분표도 스키르와 아주 비슷하다. 크왁은 여러가지로 활용해서 먹는다. 그릭 요거트처럼 샐러드 드레싱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크왁타르트를 만들 수도 있고, 그라놀라나 과일을 넣어 식사 대용으로 먹기도 한다. 식 후 디저트로도 인기가 많다.


크왁은 유지방 함량에 따라 1차적으로 volle (full), halfvolle (half full), magere (non fat 혹은 low fat)으로 나뉜다. 또한 플레인 크왁이냐, 과일이나 향이 첨가되었느냐로 분류된다. 이 모든 제품 분류가 회사를 불문하고 용기 앞에 정확히 명시 되어 있다. 약국 같은 엄격함은 아니지만, 어쨌든 애매모호한 마케팅 용어로 말장난 치는 느낌은 아니라서 좋다. 

(한국의 김치 포장에 예쁘장하게 '진심 담은 자연 그대로 김치' 라고만 쓰고 정작 배추김치인지 갓김치인지 표시 하지 않는다면 팔리지 않을것이다. 그런 생활 밀착형 실용성이 이곳 유제품에서 느껴진다.)



크왁에 첨가된 여러가지 신기한 맛들은 한국과 전혀 다를 때가 많아서, 과연 세상은 넓고 취향은 다양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한국 처럼 딸기 맛이나 복숭아 맛, 블루베리 맛 같은 베스트셀러들은 물론 네덜란드에도 있다. 신 맛을 중화시키는 단 맛의 조화는 문화권을 불문하고 인기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오렌지 혹은 레몬 맛 크왁은 낯설었다. 마치 현미 식초에 사과 식초 타는 느낌 아닌가? 이산치산 以酸治酸 이라는 것일까? 막상 먹어봤을 때는 생각보단 시지 않고 맛있었지만, 여전히 신 과일 맛의 크왁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참고로 초콜릿 맛 크왁 역시 맛있긴 하지만, 국밥에 초콜릿 넣은 것 같은 이유 모를 이질감 때문에 잘 먹지 않는다.)


내가 요즘 먹는 크왁은 애플시나몬이 들어간 무지방 크왁인데, 이게 끝나면 다시 플레인 크왁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한다. 나의 크왁 사이클은 항상 이런 식이다. 플레인이 질릴만하면 새로운 맛을 찾고, 신기한 맛의 조합에 열광하다가도 다시 정직하고 기본적인 플레인이 생각난다. 다행히도 네덜란드의 크왁 시장은 나의 모험 정신을 충족시켜주는 다양한 제품을 생산해내준다. 예를들어 아랫 사진의 톰푸스 케익 맛 디저트 크왁이라던가. 


Danio kwark products, photo by Min van der Plus, 2020.



나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키가 큰 이유는 우유가 아니라 크왁의 단백질 함량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성장판이 한참 전에 닫힌 것은 아쉽지만, 대신 유제품 경험치가 훌쩍 컸으니 그것으로 만족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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