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서만 나의 삶이 가취있기를...

20200305 말씀묵상

by Daniel Josh

[하나님 나라의 큰 잔치]

15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16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17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19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22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눅14:15-24)

하나님 나라의 큰 잔치, 예배의 자리, 하나님을 만나는 그 만남의 자리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 나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하나님이 나에게 고난을 내리실까 노심초사 걱정하면서 그렇게 나날을 보냈다. 율법주의적인 생각이고 사랑의 하나님을 간과한 오해였지만. 오래 학습된 모태신앙과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신앙관에 의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남 탓하는 건 아니다. 물론 나의 죄악도 더불어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하는 건 또 맞는 얘기니까.

내가 지금 이렇게 말씀묵상을 하게 된 것 자체가 은혜라고 생각한다. 같은 자극이 와도 예배의 자리를 나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요즘 들어서는 갈 교회를 찾지도 못하고 방황했었고. 더불어 코로나 사태까지 터져서 교회 예배를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태가 이렇게 되니까 괜히 교회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교회 예배와 교회 공동체에는 회의적인 마음이 많이 있었다. 여러 교회들을 찾아다녀보고 정착하려고 시도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오죽하면 교회를 세우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었었다. 고난이 오기 전에 하나님을 찾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계기는 그렇다. 내가 진행하는 소셜 살롱의 사이드 프로젝트가 있는데, 거기서 주최하는 오프라인 모임 일정이 있었다. 이게 많은 멤버들에게 비용을 받아 진행하는 거라 모임 일정이 틀어질 경우 cs가 골치 아파진다. 다행히 우리가 준비했던 모임 일정은 2월 중반에 몰려있었고, 모든 공식 모임이 끝나고 나서 바로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나는 이 일련의 사태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이드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소셜 살롱은 코로나 사태 때문에 cs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표가 당사 최대의 위기라며 인스타 라이브 방송을 켜기도 했었으니까. 하나님이 나를 도우셨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올해 들어 2020년, 나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는데 관성이 붙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나의 삶을 윤택하게 해 주셨다. 그런 하나님을 외면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와 함께하고 계신다. 그리고 나를 통해서 놀라운 계획을 이루어가실 것을 믿는다. 그런 훌륭한 자의식을 가지면서 준비와 단련의 과정을 기쁘게 수행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잔치, 그 초청을 감사하게 맞을 것. 나를 둘러싼 모든 축복들이 그분에게로 부터 허락되어 선물된 것이라는 걸 믿는 것. 선택받았던 유대인들은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은혜를 공로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 식사자리에서 이야기했던 유대인의 경솔함 안에는 뼛속 깊이 새겨진 선민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인 우리는 무슨 짓을 해도 그 잔치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 이방인과 장애인들, 기타 다른 민족들은 누릴 수 없는 그 축복을 가졌다.

그 생각을 깨뜨리려고 친히 설교하신 말씀이 오늘의 이 말씀인 것이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나를 오늘도 숨 쉬게 하고 살게 하고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한다. 다이어리를 적으며 과거를 떠올린다. 내가 뭣도 모르던 때. 지금도 나는 뭘 안다고 이야기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부족한 사람이지만. 자의식이 많이 회복되었고 자존감도 강해졌다. 4년 전 다이어리를 매일마다 제대로 쓰기 시작했던 때부터 떠올리니까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그 힘든 시간들을 견뎌온 자기 자신에게 자부심과 기특함이 느껴졌고. 문득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생각 안에는 나의 공로, 나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다. 오늘 내가 본 간증과 같이, 누리고 있는 현재 지금 내 삶의 모든 것들에 대해 마치 내가 혼자 모든 것들을 이룬 것 마냥,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 것. 그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나는 결코 여기까지 혼자 올 수 없었다는 것. 하나님의 손길이 매 순간 어루만져주시지 않았다면 이미 오래전에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라는 것. 그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왠지 모르게 내가 성공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근거가 없기도 근거가 있기도 하지만. 뒤에서부터 밀려오는 파도가 나를 마구 앞으로 밀어내는 느낌이라고 할까. 어떤 좋은 흐름을 자꾸만 타게 되는 것 같다고 할까. 운이 좋다고 할까. 믿음이라고 할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뒤엉켜있는 가운데, 다시금 떠올리는 한 가지는. 내가 아무리 날고 기어 성공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영원한 생명을 놓치게 된다면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다 잃어버리고. 나의 높음을 나의 공로로 자랑하는 그때에 주님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 앞에서 나의 이름이 그분 앞에 전혀 관계없는 모르는 사람의 영혼으로 불릴 때가 온다면. 나는 어떨까. 나는 장가들어야 하므로 그 잔치에 못 간다고 이야기했던 그 어리석음에 통탄하면서도 정작 나는 지금 똑같은 일을 행하게 되는 길을 가지는 않는지. 돌이켜봐야 하는 것이다.

나의 죄를 돌이켜보고 주님 앞에 늘 회개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