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4 말씀묵상
[하나님 나라의 원리]
1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2 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4 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5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6 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니라
7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2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13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14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눅14:1-14)
안식일의 원리와 겸손의 원리, 그리고 구제의 원리가 나온다.
안식일은 안식일을 위함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위하여 있다는 예수님의 지론.
거기에 예수님을 반박하고 비판하여 죽이기로 몰고가려고 하는 바리새인들은
꼼짝을 못한다. 아주 상식적인 질문, 아주 본질적인 질문에 자기 이해관계가 얽혀 아무 대답을 못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멋도 없거니와 나는 그런 삶의 방식이랑 맞지않다.
완고한 마음이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복음을 그대로 받아들일수 없는 욕망과 교만이
그 속에서 꿈틀대기 때문이다. 나도 주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에 침묵하게 되는 부분들이 많다.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말씀들이 너무 많다. 거기서 나의 죄악됨을 본다.
진실로 깨닫지는 못하지만 그게 나의 죄된 본성때문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성령의 감화와 감동, 그리고 역사하심만이 나를 회개하는 자리까지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겐 개인적으로 겸손의 원리와 구제의 원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 세상에서 길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데 잘 살아가고 싶다. 좋은 사람들과 사랑하면서
그리고 나의 가치와 나의 실력을 인정받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더 큰 가치들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거기서 오는 환희와 기쁨을 누리고싶다. 이런 나의 마음도 교만함이고 완고함일까?
요즘엔 헷갈린다. 말씀을 안봐서 그런것 일 수 도 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찔림이 없는 것은
그 자체로 가장 몸서리 칠 죄악이며 지옥이라는 것을 말씀으로 들은 바 있다.
성령충만함은 내 죄악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잘 알고 예민하게 굴때 이루어진 다는 것을 경험으로 또한
알고 있는 바이다. 그래서 지금 나의 이 반응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기독교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멀쩡한 몸을가지고 태어나서 나를 위해, 나의 이상과 꿈을 위해
한번 내던져볼 것을 말하지 않고 말석에 앉아서 비굴하게 보일지라도 다른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며
살아가라고 한다. 모르겠다. 극단적으로 해석한 것 같기도하지만, 만약 내가 이 말씀을 비추어 나에게
찔림이 없고 그냥 내가 살아가는 한에서 겸손의 미덕을 조금더 갖추는 것으로 이 말씀의 묵상을 끝낸다면
과연 그것은 살아있는 말씀의 묵상으로 나를 비춘게 맞는 걸까? 의심된다.
내가 주님을 기쁘게해드리지 못하고 있는것이 무엇인지.
나는 지금 어디에서 헤메이고 있는 것인지.
지금 나의 삶에서, 아무것도 바라지않고 나는 오직 주님만으로 기뻐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라는 고백을
진정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절대 그렇게 못하겠다는게 내 대답이다.
많은 이상들과 많은 꿈들과 많은 인정들, 그리고 사랑. 그 모든 것들을 누리고 행복하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결코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은 오늘 그리고 지금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하늘의 축복을 위하여 이 땅에서 영광을 버리는 길. 그 길을 추구하며 살라고.
어렵다. 어렵다.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