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이 있는가?

20200306 말씀묵상

by Daniel Josh

25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34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35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눅14:25-35)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수많은 무리가 주님을 따르는데, 주님께서 돌이켜서 하시는 말씀이 흐름을 딱 끊는다.
따르는 무리들은 많지만 제자가 되는 길이란 쉽지 않다는 것.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결단코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다니는 교회, 우리가 속해있는 믿음의 공동체는 이런 단절이 있는가?


나는 [라이즈업무브먼트]라는 선교단체에 소속되어활동할 때,

자주 자주 이런 무서운 단절을 경험했었다.
말씀 한 문장 앞에 몸서리치도록 떨리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 단체에서 예배를 드릴때마다,

폴워셔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때 처럼 이상한 괴리를 느꼈다. 예배와 말씀, 내가 그동안 경험해왔던 기존의 교회, 믿음의 공동체들은 그런 단절과 구분이 없었다. 그것은 하나의 어떤 축제이자, 명절자리 같은 것이었다. 주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서로 친근하게 농담을 주고 받으며 깊은 소속감을 느끼고 사랑을 나누는 화평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대뜸 떨어지는 벼락같은 말씀이 있다.

“많은 무리들이 나를 따르지만,

제자가 되려면 너의 모든 것을 버리고,
너의 목숨까지 미워하며 나를 따라야 한다.”

지금같이 서로의 신념과 신앙, 종교를 존중해주는

21세기에, 목숨을 걸 일이 어디있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그것이 자존심이건, 가족이건, 사랑이건, 미래건 어떤 형태이든간에. 분명한 건 어떤 충격적인 단절이 요구된다는 뜻일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사명에는 그런 속성이 무릇 따르는 듯 하다. 두려움과 괴로움에, 나를 조여오는 영적 부담감. 식은 땀이 흐르는 긴장. 매번 그런 긴장의 연속에서 숨이 겨우 붙어있는 듯이 살던 때가 있었다.

대표목사의 성스캔들 사건이 일어나 단체가 와해되고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의 시간들을 돌아본다.

그 때 이후로 나는 주님의 은혜와 치유를 경험했지만, 그 때만큼 치열하게 목숨을 걸고 제자된 길을 걸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잘 모르겠다. 오랜 시간 나의 미래와 나의 성공, 나의 꿈 그리고 현실을 위한 고민으로 살았다.
많은 세상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다.

사랑도 해보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끝없는 축복의 고속도로에 올라있는 듯 하다.

사실 축복인지 모르겠다.
이 길의 끝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겉으로 보여지는 상황 자체는, 모든 것이 평안하다.

조금씩, 말씀을 묵상하면서 느낀다.

다시 그 감각들을.
인간은 부족하기에 죄를 짓고 다른 영혼들을 실족시킨다. 라이즈업무브먼트의 그 목사는 한 사람의 인간일 따름이었다. 그러나 내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목숨을 걸고 느꼈던 그 곳에서의 사역과, 그 영적긴장은 진짜였다.
하나님의 임재가 그곳에 있었고. 나는 육신의 고갈과 물질의 고갈, 정신의 고갈 속에서 허덕였으나. 말씀과 기도, 예배에 임하시는 하나님 그분이 주시는 영적감동 하나만으로 충만해지곤 했었다.

그 때의 그 삶을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가 아니고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

평온하게 흘러가는 삶의 길. 지금 나는 앞만 보고 달려가면 된다. 내가 잘 되기만을 바라면서.
하루에 할당된 신앙의 시간에 순종하면서.

말씀을 읽으면서.

일주일 에 한번 예배에 나가면 된다.
그곳에서 한주간의 잘못을 돌이켜 회개하면 된다. 그리고 다시 평온해지면 된다.
물 흐르듯 흘러가는 자연스러운 삶.

모든 것이 다 잘 되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단절이 있는가?’

나는 요즘 너무나 행복하고 안락한 일상을 보내면서 한 쪽으로는 그런 생각이 든다.
예수님의 십자가지신 그 고통.
하늘영광의 보좌를 한 꺼풀 씩, 피 한방울과, 물 한방울 단위로 뜯어 내려놓고
나에게 보이신 사랑.

그 앞에 나는 지금 어떤 모습 일까.

지금의 나는 나의 소유 한 점이라도 주님앞에 내려놓을 수 있는가?

단절이 있는가?

매거진의 이전글받아들일 수 없는 주님의 가르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