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8 말씀묵상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서는 계속해서 소모되고 소진되고 마모될 뿐이다.
나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살았다. 작년 10-11월즈음. 나가던 모임에서 이야길 했다.
잘 살고 싶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어떻게 하면 잘 살수 있을지 고민했다. 책을 많이 읽었고.
좋은 생각들을 기록했으며, 프로젝트를 준비해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내곤 했다.
겉보기엔 만족스러워 보이는 결과들을 눈에 앞두고도 한쪽에서는 자꾸만 피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이 시대에는 정해진 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가장 자기다운 자기자신을 찾아라.
객관적인 답은 존재하지 않더라도 주관적인 답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리고 무엇을 도전하든, 그게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라면 그 끝에 실패하더라도 적어도 자기 선택이 인생에 후회로 남지는 않을테니까.
그렇기에 모두가 자기자신이 되기위하여, 가장 정답에 근접한 자기 삶을 영위해나가기 위하여 그렇게 열심히
나름의 노력들을 하는 것을 보았다. 나도 역시 그렇게 하기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무척 피로했다. 나는 나 다운 삶을 살기 위해 산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나를 위해?
사람이 자기자신을 위해 산다는 것이 이제는 너무 당연한 것 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관계속에 살고, 사명감 때문에 살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살고, 죽지 못해 산다.
정말 여러가지 삶의 형태 삶의 이유가 있다. 그 모든 것들을 하나로 설명하기 위해 ‘자기자신을 위해 산다’라는 말을 한다.
나를 위해. 내가 뭔데? 나까짓게 뭔데. 나를 만족시키고 나를 행복하게하는 게 이다지 도 어렵다니.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나.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나를 더 성장시키는 것. 어떤 방법으로? 어떤 방향으로?
그래서 결국 죽음을 앞두고 나의 삶을 반추해볼때에
부끄럼 한점, 후회 한점 남기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된 것인가?
그건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생각하고 고민끝에 다다른 결론중에 하나일뿐이지.
그게 답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냥 그중의 하나. 설득력있는 주장 중의 하나.
어떻게 보면, ‘인생은 무엇을 위함인가’ 라는 질문이 마땅한 답을 내리기에 너무 어려운 문제라서.
우리는 그런 고민을 하면서도 계속 살아가야 하기 떄문에. 차선책으로서 내놓은 답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자기자신을 위해. 열심히 살고 후회를 남기지 않으면 그걸로 괜찮은 인생이지 않겠어?
시험시간은 정해져있는데 모르는 문제의 답이라도 일단 마킹은 해야하니까 거멓게 칠한다.
그건 최선책이 아니라 차선책이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해서 삶의 최선책을 고민하며, 피로해진다.
도대체 답이 어디있을까. 모든 것은 주관적인 동시에 상대적이다. 남을 판단하기는 쉽지만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고 답을 내리는데는 이다지 도 어렵다. 인간이라는 운명은 어디로 가야할까. 그 과정에서 나는 급 피로함을
느꼈다. 사람은 생각보다 단순한데,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사랑과 인정을 나눌때에 스스로 가치있다는 느낌을 받고. 나도 그런것을 위해 사는 것 같은데. 뜻대로 되지않아 괴로워하는거고.
그래서 그 꼬리의 꼬리를 물며 답이 나오지 않는 미완의 결론들은
결국 인간이 인간의 삶에 대해서 어떤 답도 발견해낼 수가 없다는 데 이른다.
나는 영적으로 침체되어있었고 무기력해 있었다. 육체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 하지만. 영과 육은 하나다.
어렴풋이, 그렇다. 어렴풋하고 미세한 안개처럼 그렇게 뿌옇게 저 속에 무언가가 나를 보고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 나는 결국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한다. 어쩔 수가 없다.
살과 뼈, 그 보다 더 깊은, 속에서부터 찢어져 나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아버지의 집. 그곳에서 누리던 풍족한 삶을 향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쥐엄열매를 더 먹었다. 그로부터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야 돌아갈 수 있었다.
삶이 풍비박산이 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주님을 추억하게 된건 아니다. 이제는 그런 미신적인 신앙도 버렸다.
내가 죄를 짓고 내가 하나님 없이 겉보기에 좋은 삶들을 선망하며 그렇게 살아가다가 육체가 깨지고
정신이 깨지고 관계가 깨지고 완전히 무능과 무력에 젖어들어야 깨닫는 것만 깨다는 방법은 아니었다.
주님은 언제나 그곳에 계신다. 주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신다.
내가 잊어버리고 지내며, 주님의 축복과 은혜를 지루하게 여길 뿐이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피로한지, 외롭고 지쳤는지 알고 계신다.
많이 슬퍼하셨을 것이다. 내가 사서 고생했던 그 과정들을 보시면서.
나는 여전히 나를 확신할 수 없지만. 그곳에 돌아왔고 잔치를 맞는다. 그분을 사랑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