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영적 준비가 필요해

20200310 말씀묵상

by Daniel Josh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눅16:1-13)


불의한 청지기에게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그의 지혜로움이다.
어차피 해고되는 것은 예고된 일이고, 말미의 시간동안 그는 할수 있는 일 을 고민한다.
바로 그의 앞날을 위해 남겨진 일들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만약 이도저도 아닌 차에 고민만하고있었다면
청지기 일은 해고당하고 그 이후 마땅한 일을 찾지못하게 되어 곤궁할 것이었다.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리라 라는 말씀은, 그런의미에서 다가온다.
청지기 일을 맡았으면 끝까지 잘할 것이고, 잘리게 되었다면 다른 어설픈 생각 말고 자기 살길만 도모해야한다.

우리가 천국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셈 해봐야 하는 것이다. 뜨겁거나 차갑거나해야하는것이다.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지 못한다는 말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가난에 처하더라도 상관 없는 사람이 가지고있는 생각을 닮아야 한다는 말에 더 가깝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돈을 얼마를 쓰던 나의 바라보는 지점이 이 땅에서의 삶이 아니라 천국에서 누릴 삶에 가 있음인 것이다.

돈을 어디에 쓰고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바라며 살고있는가.
신앙에 대해 오해를 많이 하고있었던 듯하다. 물론 나는 지금 아직 세속적인 생각에 많이 젖어서 살고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싶은 마음과, 세상에서도 잘 해내고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나 거듭 생각이 드는 것은,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은 끝의 끝을 보아도 끝이 없다는 데 있다.
끊임 없이 비교우위에 있는 것을 욕망하며 살게될 터이다. 그런 것들이 피로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돈이 없어야 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괜히 쭈그러들어야 하며, 거룩한 척해야하고
이런 기존의 잘못된 관념과 편견에 사로잡혀 신앙에 대해서 비관을 떨쳐내기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사람은 가난과 불편때문에 삶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자기존엄성이 무너졌을때 삶을 포기한다.
군인이나, 독립운동가, 기타 역사를 바꾼 위인들의 인생이
가진 재물이나 삶의 평탄함을 기준으로 평가받는다면 그들의 인생은 실패밖에 안되겠으나
그들은 존경받는 삶을 살았고 후대에 이름을 남겼다. 어쩌면 더 큰 성취욕을 품어야 가능한 삶의 형태인 것이다.

나는 정말 멋있게 살고싶다. 돈을 많이 벌고 이름을 날리고. 그런 것들도 포기하고싶지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들이 어떤 결론을 향해 가는 것인가 일것이다. 깔때기로 쭉 모아져서는.
나의 재능과 나의 돈 나의 기술과 나의 재산, 나의 위대함과 나의 성취 그리고 나의 사랑
그것들이 하나님나라를 확장시키고 사람을 하나님의 것으로 소유이전시키는 데 공헌한다면 만족스러울것이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나의 원하는 삶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 그 사이 합의점이 아닐까.
이런 여러가지 공상을 해본다. 무튼 열심히 살아야 겠다. 불의한청지기도 이렇게 셈하여 자기 삶을 꾸려나가는데 열심인데. 제일 극도로 미운 것은 하나님 안에 있다고 ‘착각’하며 안주하고 아무런 실력도 아무런 생각도 자라나지 못한채 물적, 영적, 인적으로 공허하고 결핍한 자들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럽게 정말 밉다. 제일 두려운 삶의 모양이기도 하고.

여러가지 내가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들이 많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교류하는 일이다. 그래서 재영이에게도 말씀묵상을 함께 나누자고 이야기했다.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 그리고 그분의 성품을 닮아가는데 있어서 함께 동역할 영혼들은 다다익선이다.
함께 나아가야 한다. 복음을 전한다 라는 의무감에 자기 신앙이 먹혀 자기 믿음이나 확신조차 흔들리면서
생판 모르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일수 있다. 물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중심에서 드리는 것을 하나님은 보이는 열매와 상관없이 기뻐하신다. 그리고 열매는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이지 사람의 주관이 아니니까. 여하튼 횡설수설 하였는데. 더 많은 영적인 준비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그 첫마음이 회복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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