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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숨 Feb 22. 2020

서울에서 놀러 오는 친구 맞이하기

 중소 도시의 매력 착즙하기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서울에서 차로 세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지방 도시다. 그 세 시간 동안 건물이 사라지고, 논밭이 펼쳐지고, 인적이 드물어지며 모든 대중교통이 사라지고 세상이 어둠에 잠긴다… 농담이고 여긴 그 정도로 시골은 아니다. 서울보다 사람은 적지만 아파트는 여전히 많고, 서울만큼 다양한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있지는 않지만 외식을 모두 해결할 수 있을 만큼은 들어와 있다. 그러다 보니 서울의 친구들에게 이곳이 서울의 ‘부족한’ 버전이 아니라 그 자체로 매력 있는 도시라는 걸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 자신조차도 설득할 수 없었으니까. 이 도시를 멋지게 소개하기 위해서는 내가 아직 이 도시를 마음 깊이 좋아하고 있지는 않다는 걸, 그래서 나도 이 곳에 대해서 새롭게 알아야 한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1. 중년 남성 타깃의 음식점을 찾기

  프로필에도 썼지만, 나는 20대 후반의 취업준비생이다. 그러므로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정보를 습득하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이 지역 음식점을 찾을 때에는 인스타그램보다 나이 지긋한 분들의 말을 곧잘 듣는다. 우리 집에는 귤 한 알도 신 걸 먹지 않는 50대 중년 남성이 (가끔) 사는데, 그분께 주로 물어보는 편이다. 친구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을 땐 어디를 데려가는지 물어보면 된다. 한국 사회에서 50대 중년 남성들이란, 집안에서도 가장 부드러운 생선 살을 차지하고 집 밖에서도 기름진 음식들을 독차지할 때가 많기 때문에 이들의 입맛은 믿을 만하다. 게다가 그들이 친구들을 데려가는 음식점들은 반주하기에 딱 좋은 곳들이기도 하고.


  2. 걸을 만한 동네를 찾아서

  중소 도시의 거리들은 개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 지역마다 명소나 특산물을 기념하는 거리들이 있긴 하지만, 그게 녹차인지 대나무인지만 다를 뿐이지 그 거리들 자체가 비슷하다. 육교 같은 간판(“000 거리”)이 거리의 시작을 알리고, 그 주위로 닭강정과 해산물을 파는 시장이 하나, 좀 더 걸어가면 나이키와 스타벅스가 있는 번화가가 붙어있다. 사실 시장에서 파는 음식이나 스타벅스 커피도 나쁘진 않다. 그렇지만 이 무난한 거리를 걷다 보면 장소감을 상실하게 된다. 여기는 어디일까? 종로의 골목길인가? 춘천인가? 아니면 목포의 시가지일수도... 이런 내적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대안이라고 해서 해리포터가 처음 빗자루를 사기 위해 찾아간 다이애건 앨리처럼 대단할 필요는 없다. 그저 좀 깨끗하고, 춥거나 비가 올 때 들어가서 시간을 보낼 만한 실내 공간이 있고, 그 길에 한 가지 정도 내가 설명해주고 싶은 공간이 있으면 된다. 새로운 지역에 왔다는 장소감을 주기 위해서 폭포나 기암괴석에 친구를 데려갈 순 없기 때문이다. 어디를 데려가야 할지 고민이 깊어질 땐 차라리 근처에 있는 적당히 유명한 산에 데려가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 수 있다. 나도 그런 유혹에 시달린다. 그렇지만 친구는 무박 2일로 등산하다 해발고도 1000m에서 절경을 보려고 이 곳에 오는 게 아니다.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에 함께 가서 잠시 같이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3. 멀지도 않고 몰카도 없었으면 해

  우리 집에 재워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고양이 세 마리와 성인 두세 명을 감당하느라 항상 북적이는 집에서 ‘편하게 쉬다 가라’고 강요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따로 숙소를 구해야 했다. 먹을 곳과 걸을 곳이 정해진 뒤에 묵을 곳을 찾았는데, 낯선 곳에 가면 조금만 걸어도 피로가 쌓이기 마련이니까 놀러 갈 곳과 걸어서 왕복할 수 있을 정도인지를 봤다. 거리와 청결도 외에 다른 건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다만 불법 촬영물 유포와 관련된 숙소 예약 어플*이나 사이트를 이용하지 않았고, 숙소에 들어가서도 좁은 공간에서 강하게 감지되는 와이파이가 있는지 확인했다. 물론 이런 것만으로는 ‘몰래카메라’를 피하는 데 한계가 있겠지만, 나와 내 친구가 조금이라도 더 안심할 수 있기를 바랬다.


  * 재작년 11월 자 시사 위크에 따르면, “심명섭 여기어때 대표는 지난 18년 가까이 웹하드 10여 곳을 운영하며 음란물 427만 건을 유통한 혐의를 받는다.” 더불어, 2017년 노컷뉴스에 따르면, “야놀자의 일부 프랜차이즈 호텔이 성매매 장소로 제공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야놀자 본사에서 이를 알면서도 묵인해줬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 http://www.sisaweek.com/news/articleView.html?idxno=116056

- https://www.nocutnews.co.kr/news/4752324



  서울이 아닌 지역에 살면서 자신의 도시를 좋아하게 되는 건 쉽지 않다. 서울과 비교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굳게 지키면서, 돈 냄새가 덜 나고 문화 자본의 수혜를 덜 입은 공간들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사실 처음엔 그게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여러 번 성공했다. 맛없는 식당을 찾아갔다 나오는 길에 마당이 넓고 아름다운 카페를 발견하게 되고, 유적지를 보여주려고 걷다가 (좋은 시도가 아닌 걸로 밝혀졌다) 쇠락해가는 출판 골목에 들어서기도 했다.  계획 없이 미술관에 찾아갔다가 섹스하는 로봇에 대한 전시를 보고 도망쳐 나오기도 했지만, 서울에는 없는 프랜차이즈 커피점을 봤다는 것만으로 기뻐하는 친구도 있었다.


  많은 거리들의 이름을 외우게 되었다. 도시는 공간이라는 걸 느꼈다. 어느 지역 사람~ 하는 정체성이 되거나 집값에 따라 결정되는 계급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건너가고 머물 수 있는 곳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에겐 이 도시가 어땠을까? 난 좋아하는 사람의 모습이 조금씩 쌓인다는 이유로 이 곳을 더 좋아하게 됐다. 가끔 거칠고 가끔 볼품없지만 어쩌다가 우유와 계란이 없는 빵을 사 먹을 가게가 있고, 오래된 음식점들이 너무 빨리 망해버리지는 않는 곳. 지금 내가 사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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