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인터넷 (Internet of Things; IoT) 기술이란, 자동차, 기계, 가전제품 등에 탑재된 센서를 인터넷에 연결하여 데이터를 모으고 교환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기술이다. 보통 "스마트" 기술에 필수적으로 탑재되는데, 수도관에 센서를 연결하여 가정에서 사용하는 물의 양 및 난방의 효율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통계를 낸다거나, 반려견의 움직임을 탐지하여 주기적으로 사료를 주는 스마트 펫 피더 등, 이미 우리 주위에 많이 녹아들어 있는 기술이다.
IoT에 쓰이는 센서는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한쪽에서 입력값을 받으면 다른 센서로 출력이 가능하다. (e.g., 모션 센서가 움직임을 감지하면 불이 들어오는 형광등). 하지만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매우 추상적이다. IoT에 사용되는 센서, 그리고 IoT라는 기술을 시각장애인에게 설명해주려고 한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더 나아가서, 시각장애인이 필요로 하는 IoT 기술은 어떤 기술이고, 그 기술은 어떻게 디자인되어야 할까?
The above figure originally appears in Lefeuvre et al., 2016, on page 1. 독일의 한 연구팀은 Loaded Dice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시각장애인에게 IoT의 원리를 설명하고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특수한 주사위 한 쌍을 제작했다 (Lefeuvre et al., 2016). 하나의 주사위는 센서가 탑재된 주사위이고, 짝을 이루는 다른 주사위는 "작동 장치"이다. 아래와 같이 각각 6개의 센서(온도, 빛, 소리, 움직임, 분압기, 거리)와 6개의 작동장치 (진동, 열선, 원형 LED, 소리, 빛, 바람)를 탑재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 센서/작동장치에 맞게 디자인한 촉감적인 패턴을 함께 새겨 넣었다.
The above figure originally appears in Lefeuvre et al., 2016, on page 5. 각 주사위의 가장 위에 있는 면의 센서와 작동장치만 활성화되며, 센서 주사위는 활성화된 센서를 통해 입력을 감지해서 작동 주사위에게 입력값을 전송한다. 입력값을 받은 작동 주사위는 전달받은 값으로 활성화된 작동장치를 가동한다.
Image Source: https://medien.informatik.tu-chemnitz.de/miteinander2/portfolio/loaded-dice/ 위의 사진에서, 왼쪽의 센서 주사위 위쪽 면에 위치한 센서는 열감지 센서이다. 성냥을 가져가면 센서가 온도를 감지하고 읽어 들인 값을 오른쪽의 작동 주사위에게 전송한다. 작동 주사위에서는 바람 출력장치가 활성화되어 있으며, 전달받은 값을 토대로 바람을 일으킨다.
** Loaded Dice가 작동하는 방법이 궁금하신 분들은 이 영상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것 같다.
The above figure originally appears in Lefeuvre et al., 2016, on page 6. 시각장애를 가진 11명의 중학교 학생이 Loaded Dice를 중심으로 짜인 참여디자인 (Participatory Design) 워크샵 세션에 초대되었다. 학생들은 이 워크샵을 통해 주사위를 직접 만져보고, 여러 센서들을 작동시키면서 IoT의 개념을 이해한 후, 다양한 센서가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어떻게 쓰일 수 있을지 상상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연구팀은 학생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시각장애인이 새로운 기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 시각장애인의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 IoT 기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 그리고 굳이 기술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부분을 분석하고 서술하였다.
** 이 프로젝트를 통해 관찰자와는 다른 관점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함께 지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해서도 논하였지만, 이 부분은 추후에 다른 글로 더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다.
이처럼 디자인을 활용한 연구는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과학적인 연구와는 조금 다르다. 또한, 디자인을 통해 수행할 연구 과제는 엔지니어링 또는 과학적인 연구 과제와는 맥락 자체가 다른 경우가 많다. 프로젝트를 만들고 비평하는 과정을 통해 주제를 지속적(iteratively)으로 재해석(reinterpreting)하고, 재구성(reframing)하며 정보를 모으고 지식을 창출한다. 이를 통해 연구자들은 아직 존재하지 않거나 실현되지 않은 기술을 추측해보고, 그 기술이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탐구할 수 있다.
디자인 기반의 연구는 단순히 연구에 쓰일 프로젝트를 디자인하는 것으로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디자인 방법론과 그에 따른 평가 기준을 연구 과정에 적용하여, 풀고자 하는 질문을 다양한 방면에서 접근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리고 디자인 기반의 연구 프로젝트는 실체가 있는 아티팩트 외에도 추상적인 행동 패턴 또는 생활환경 등 다양한 형태에서의 접근이 가능하다. 이러한 디자인 방법론을 활용하는 연구가 바로 Research through Design (RtD)이다 (Zimmerman et al., 2007; Zimmerman & Forlizzi, 2014).
보편적으로, 디자인과 연구는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
다음의 예시를 생각해보자.
의자를 "디자인"한다
특정한 상황과 목적에 맞는 의자의 구체적인 특성을 만들어낸다.
의자를 "연구"한다
특정한 상황에서 의자가 가지는 의미 및 특성을 분석하여 다른 분야에 적용하거나, 의자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식을 창출한다.
한마디로, 디자인(Design)의 목적은 정해진 상황에 맞는 구체적인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연구(Research)는 관념적이고 일반화할 수 있는 지식의 발견과 창출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Stappers & Giaccardi, 2017). 이처럼 디자인과 연구는 방향이 다르지만, HCI에서는 디자인을 활용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내는 연구 방법이 조명받고 있다.
통제된 상황에서 진행되는 연구(controlled experiments)는 독립적인 변수를 조작하여 종속변수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함으로써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를 확립하는 데에 효과적인 실증적 연구방법이다. 하지만 이처럼 조심스럽게 통제된 실험은 연구와 관련된 변수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경우에는 매우 효과적이지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요인을 통제할 수 없다는 큰 단점을 가지고 있다.
실제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진행하는 연구는 종종 비현실적으로 단순한 상황을 가지고 실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사람 중심의 기술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에 있어서 이와 같은 단점은 치명적이다.
명상을 도와주는 애플리케이션이 실제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는 연구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식으로 연구를 진행해야 할까?
어떤 특성을 독립 변수 또는 종속 변수로 삼을 것인가?
여기에서 "변수"는 명상 애플리케이션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용자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변수가 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사용자의 모든 상황을 고려하기란 쉽지 않고, 수많은 사용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변수를 예측하고 일반화하기엔 무리가 있다. 따라서, 하나 (또는 소수의) 변수를 조작하는 연구 방법은 사람과 기술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려는 관점에서는 매우 제한적이다.
Obrenović (2008)은 디자인 기반의 연구가 기존의 연구방법 (e.g., 집중적인 분석 또는 실증적 연구 empirical research)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고 믿었다. Obrenović에 의하면, 디자인이란, 설계한 목표(design goal)와 설계할 수 있는 한계(constraints) 사이에서 내리는 균형 잡힌 판단(decision)의 연속이다.
복잡하고 혁신적인 디자인일수록 판단을 함에 있어서 더욱 폭넓고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디자인의 결과물은 단 한 번만에 나오는 것이 아니며 반복적으로 수정하고 다듬는 과정을 통해 점차적으로 퀄리티의 향상(iterative improvement)이 이루어진다. Obrenović은 이 같은 과정이 바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열쇠라고 보았다. 그리고 기존의 통제된 연구를 통해 얻어진 지식이 "폭넓고 깊은 이해"를 도와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이는, 명상 애플리케이션이 효과적인지 연구하기 전에, 다른 연구와 실험을 통해 알게 된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버튼의 위치, 적절한 색감의 사용, 완만한 학습곡선 등 UI/UX 관련 정보를 사전에 분석하고 적용하여 최적의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든 후에 사용자들을 모집하여 디자인 기반의 참여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통제된 상황에서의 집중적인 연구로 증명된 지식은 명상에 대한 경험을 방해할 수 있는 변수를 사전에 제거하여 사용자들은 오롯이 명상에만, 그리고 연구자들은 온전히 애플리케이션의 효과에만 집중하게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최적의 애플리케이션을 기반으로, 반복적인 비평과 보안을 추구하는 디자인 프로세스에서 영감을 받은 연구 방법을 통해 실제 사용자의 삶에 적용하고 관찰하는 연구를 진행한다면, 소수의 변수에 집중하는 제한된 상황에서 벗어나 사용자와 기술의 관계 및 기술의 영향력을 보다 넓은 시야에서 해석할 수 있다.
디자인을 연구에 활용하면 현실적인 상황(real-world context)에서의 체계적인 연구가 가능하다. 변수가 수도 없이 많은 현실 상황에서 연구가 이루어지기에 확실성과 복제성이 실증적인 연구에 비해서는 떨어지지만, 활용 가능한 지식을 만들어 제시하고, 통제된 상황을 넘어 연구의 영역을 크게 확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Loaded Dice의 예시에서, IoT라는 주제를 정하고, 그것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주사위를 떠올리고 또 만들어내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디자인이다. 그리고 11명의 학생들과 함께 주사위를 가지고 기술에 대해 토론하며 그 기술이 각자의 일상에서 어떻게 쓰일 수 있을지 혹은 어떻게 쓰이면 안 되는지 탐구하는 것도 참여디자인이란 디자인 방법론의 연장선이며, 이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연구이다.
확률론적이고 결정론적인 지식을 목표로 하는 공학/과학적인 연구와는 달리, 디자인 기반의 연구는 영감을 주는 지식(inspirational knowledge)을 추구한다 (Gaver et al., 1999). 이는 연구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믿음, 신념, 바람(desire), 미적 선호도 (aesthetic preference) 및 사회적/문화적인 관심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추상적인 가치를 탐구하기에 적합하다. 인간적인 가치를 탐구하며 창출된 지식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우리가 사용하는, 그리고 앞으로 사용하게 될 기술을 추측해보며 미래를 상상하게 도와줄 것이다.
참고문헌:
Fallman, D. (2003, April). Design-oriented human-computer interaction. In Proceedings of the SIG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 (pp. 225-232).
Gaver, B., Dunne, T., & Pacenti, E. (1999). Design: cultural probes. interactions, 6(1), 21-29.
Lefeuvre, K., Totzauer, S., Bischof, A., Kurze, A., Storz, M., Ullmann, L., & Berger, A. (2016, October). Loaded dice: exploring the design space of connected devices with blind and visually impaired people. In Proceedings of the 9th Nordic Conference on Human-Computer Interaction (pp. 1-10).
Obrenović, Ž. (2011). Design-based research: what we learn when we engage in design of interactive systems. Interactions, 18(5), 56-59.
Stappers, P., & Giaccardi, E. (2017). Research through design. The encyclopedia of human-computer interaction, 2.
Zimmerman, J., & Forlizzi, J. (2014). Research through design in HCI. In Ways of Knowing in HCI (pp. 167-189). Springer, New York, NY.
Zimmerman, J., Forlizzi, J., & Evenson, S. (2007, April). Research through design as a method for interaction design research in HCI. In Proceedings of the SIG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 (pp. 493-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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