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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Jun 10. 2021

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게

행복한 여행보다는 불행한 강아지

 목적지를 정하고 떠나든 그냥 무조건 떠나든 여행은 항상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것은 아마도 늘 되풀이되는 찌든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 주는 짜릿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열심히 일한 자여, 떠나라.’라는 카피 문구도 있듯이 열심히 일하고 난 뒤에 떠나는 여행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난 국내여행이든 해외여행이든 그리 많은 곳을 쏘다니지는 않았다. 다만, 어떤 목적을 두고 겸사겸사 떠나는 여행은 많이 다녀봤는데……. 여하튼 짐을 싸고 푸는 게 귀찮아서라도 여행은 가급적 자제하는 편이다. 가족끼리 가까운 제주도에 한번 다녀오더라도 한 보따리인 짐을 챙기느라 출발하기도 전에 이미 지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래서 난 부담 없이 당일치기로 갔다 오는 근교 드라이브 여행을 좋아한다.


 더군다나 여행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을 깨닫게 해 준 소중한 보물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강아지다. ‘해피’라는 이름을 가진 이 녀석 때문에 장시간 집을 비우는 여행은 당분간 유보 상태다. 왜냐하면 나의 행복한 여행을 위해서 불행해지는 강아지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여행을 가게 되면 당장 강아지를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고, 이로 인해 상대방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 또한 강아지를 보살펴 줄 수 있는 시설 등에 맡기더라도 그다음이 문제다.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과 동물들 사이에서 이 녀석이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 잠자리, 음식 등등 생각만 해도 마음이 심란하다.


 특히 요즘 강아지를 맡겼다가 심각한 상태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한다. 인터넷 기사를 뒤적이다 보면 온몸이 상처투성이로 되돌아온 강아지, 아예 시설을 뛰쳐나가 유기견이 된 강아지, 죽어 나오는 강아지 등등 강아지 보호 시설에 대한 신뢰도가 그야말로 바닥이다. 언젠가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곧 다가오는 ?시험 때문에 가족과 같은 반려견을 어쩔 수 없이 보호 시설에 맡기게 된 주인이 결국 반려견을 잃은 사연이었다. 나도 CCTV에 찍힌 그 당시의 영상을 봤는데, 너무도 끔찍했다. 어두컴컴한 시설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윗부분이 뚫린 철창 안에서 그 반려견이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뾰족한 철창에 배 부분이 찔린 반려견은 한동안 발버둥을 치다가 잔인하게 죽어갔다. 그리운 주인을 생각하면서…….


 그 반려견의 주인은 당시 심정이 어땠을까 싶다. 사실 반려견을 키운다는 것은 사랑하는 가족만큼이나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다. 먹이고, 씻기고, 발톱 잘라주고, 대소변 치워주고, 털 깎아주고, 어딘가 아프기라도 하면 온통 마음이 쓰이는, 눈을 맞추면서 교감하는 그런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반려견이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죽어갔으니 그 주인의 심정이 어떨지는 눈에 보이듯 뻔하다. 사실 나도 그 사건을 접한 후 한동안 그 반려견의 모습이 생각나서 몹시 우울하기도 했다. 이처럼 반려견은 혼자 놔두면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예의 주시해야 한다.


 내 주변의 경우만 보더라도 별 희한한 일들이 다 벌어지곤 한다. 골든 레트리버를 키우고 있는 어떤 지인은 이런 일을 겪기도 했다. 명절을 맞아 멀리 지방에 있는 시댁을 내려가야 하는 상황에서 반려견이 문제였다. 그것도 장장 2박 3일 동안 머물러야 하는데, 데려가자니 멀미도 문제였고, 시댁 쪽에서도 딱히 반기는 눈치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시설에 맡기는 것도 왠지 꺼림칙했던 탓에 그냥 집에 놔두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다만, 3일 동안 먹을 사료와 물 등을 집안 여기저기에 흩어 놓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3일 치 양을 같은 그릇, 같은 장소에 주게 될 경우, 그 즉시 다 먹어치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이틀은 꼬박 굶어야 하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 여하튼 사랑하는 반려견이 불편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놓고, 시댁에 내려갔건만……. 집에 돌아와 보니 반련견이 거의 죽음 직전까지 와 있었다고 한다. 너무 놀란 그 지인은 반려견을 데리고 즉시 병원으로 향했고, 검사 결과 배속에 수건이 들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수술을 통해 목숨을 건진 그 반려견은 지금은 아주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사실 반려견을 키운다는 것은 갓난아기를 키우는 것과 거의 맞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정도로 손이 많이 가고, 사랑으로 보살피지 않으면 금세 병이 나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도 둘째 녀석의 성화에 못 이겨 지금의 해피를 분양하긴 했지만 그에 따른 모든 일들이 다 내 몫이 되고 말았다. 밥 챙겨주기, 물 주기, 대소변 치워주기, 목욕시키기, 발톱 깎아주기, 털 깎아주기, 귀 청소해주기, 산책시켜주기, 쓰다듬어주기 등등. 다만, 나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여기에서 딱 한 가지만 열심히 해줄 뿐이다. “아이고! 귀여워라.”라고 하면서 쓰다듬어 주는 일이다. 무엇이든지 마찬가지겠지만 책임을 지는 일은 무척 힘이 든다. 대신 책임에는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절대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그래서일까? 해피의 시선은 늘 한 사람에게로만 향해 있다. 바로 나다.


 몇 년 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첫째 딸아이의 사춘기로 인해 집안에 위기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곧 돌아올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현실은 공포로 다가왔다. 지금 생각해 봐도 ‘사춘기’라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신의 경지인 듯싶다. 그만큼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 중의 하나였다. 물론 한층 업그레이드된 둘째 녀석의 사춘기가 곧바로 이어졌지만 말이다. 여하튼 그 시기에 집안 분위기를 바꿔줄 만한 그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했고, 그 절실함은 곧 둘째 녀석의 질긴 강아지 타령과 딱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해피는 우리 가족이 되었고, 이름 그대로 우리 가정에 행복을 전하는 귀염둥이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강아지가 사랑스러운 이유는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껴안기라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진다. 또한 기분이 우울해 있으면 살며시 다가와 위로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론 놀아달라고 무언가를 물고 오거나 발로 내 팔을 툭툭 치기도 한다. 그리고 정말 웃긴 건, 집안에서 큰소리라도 나게 되면 어디론가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집안에서 큰 싸움이 벌어졌을 때 언뜻 해피의 동선을 살핀 적이 있었다. 그때 늘 세워져 있던 꼬리가 아래로 말려들어가면서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아마도 겁에 질려서 어디론가 숨으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런 모습조차도 사랑스러워 그냥 웃고 넘어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니 어떻게 해피를 홀로 두고 여행을 갈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난 여행보다는 강아지를 선택했다. 비록 멀리 여행은 못 가더라도 여리고 약한 생명을 정성껏 돌봐주는데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고, 생명의 소중함, 서로 간의 교감, 눈 맞춤, 사랑, 따뜻함, 위안 등 삶의 풍요로움 또한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 비록 말 못 하는 동물이지만 사람처럼 아픔도 느끼고, 때론 슬픔도, 때론 두려움도, 때론 외로움도 느끼기에 우리는 그런 동물들을 학대하거나, 방치하거나, 유기하는 행위 등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 지구 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 즉 사람, 동물, 식물은 서로 공존하기 위해서 이미 함께 존재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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