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짜장면이 싫다고 했다
엄마는 정말로 짜장면이 싫었던 걸까, 아니면 싫다고 말하는 게 가장 쉬운 사람이었던 걸까...
사랑은 종종 내 것을 미루는 순간에 드러난다. 먹고 싶은 마음을 삼키고, 갖고 싶은 욕망을 덮어두며, 오직 누군가의 기쁨을 먼저 채워주고자 하는 마음. 그래서 부모의 식탁에는 늘 조금의 허기가 남아 있고, 부모의 옷장에는 지난 계절의 옷이 여전히 걸려 있다.
“나는 괜찮으니까 너희들 많이 먹어.”
그 익숙한 말은 단순한 양보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사랑의 선언이었는지도 모른다. 부모도 사람이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입에 넣고 싶고, 예쁜 옷을 보면 한 번쯤 걸쳐보고 싶고,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당장 손에 넣고 싶은 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자식을 키우다 보면 본능처럼 자신을 제쳐두게 된다. 부모의 욕망은 늘 미뤄지고, 대신 아이의 배부름과 기쁨이 우선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어릴 적, 내 엄마에게는 먹고 싶은 것이 따로 없는 줄 알았다. 우리 삼 형제가 밥상 위의 반찬을 모조리 비워버려도 엄마는 늘 괜찮다고 하셨다. “나는 괜찮으니까 너희들 많이 먹어”라는 그 말은 늘 습관처럼 따라붙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깨끗이 비워진 접시들을 들고 부엌에 들어간 엄마는 과연 무엇으로 끼니를 때우셨을까 싶다. 그 침묵이 오래도록 내 마음을 짓누르곤 한다.
엄마의 그림자가 내 안에 스며든 걸까.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가족들이 먹다 남은 반찬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일이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어버렸다. 가족과 함께 앉아 식사를 한다 해도 엄마의 몸은 늘 바쁘게 움직인다. 반찬이 떨어지면 다시 채워주고, 식탁에 김칫국물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얼른 행주로 닦아주고, 행여나 얹힐까 싶어 계속해서 물을 따라주다 보면 정작 내 밥은 금세 식어버린다. 뜨끈뜨끈한 밥 한술... 그 따뜻한 밥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먹어본 기억이 언제였는지 문득 아득해진다.
어느 날 남편과 차를 타고 가다가 예전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어린 두 아이와 함께 갔던 한 식당에서 우리는 소고기 전골을 시켰다. 보글보글 끓던 전골 냄새가 허기진 배를 더욱 조여왔지만, 아이들을 챙기느라 정작 내 입에는 건더기 하나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겨우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 급히 삼켜낸 기억, 남편 역시 기억하고 있었다. 그 순간, 씁쓸한 웃음이 피어오르면서 묘한 울컥함이 함께 밀려왔다.
이처럼 식탁 앞에서도, 마트 진열대 앞에서도, 그리고 여행지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내 욕구가 아니라, 아이들의 필요였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아이들 입맛을 먼저 고려했고, 옷 한 벌이 필요해도 아이들 신발부터 챙겼다. 내 자리는 늘 뒤로 미뤄졌다. 그래서 나의 식탁은 종종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 자리였고, 내 옷장은 언제나 낡은 옷과 구멍 난 양말이 전부였다.
사실,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이런 일들은 부지기수였다. 솔직히 부모도 사람인데, 왜 먹고 싶고, 입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늘 선택은 같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행복이 우선이었고, 부모는 그다음, 아니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 하나면 그게 다였다. 그것이 부모의 절대적 마음이었고, 때로는 가장 눈물 나는 사랑의 방식이었다. 아이들이 배불리 먹고, 예쁜 옷을 입고, 해맑게 웃는 것만으로도...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이 내 가슴을 후벼 팠다. ♪엄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그 구절은 단순한 노래 가사가 아니었다. 살아계실 때 끝내 헤아리지 못했던 내 엄마의 마음을 떠올리게 했고, 동시에 지금의 내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자식을 위해 기꺼이 욕망을 감추고 자신을 지우는 마음, 그것이 우리 세대 엄마들의 또렷한 초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랑은 자신을 희생할 때, 비로소 가장 빛난다.” 이 문장을 떠올리면, 짜장면을 싫다고 말하던 그 세대의 엄마들이 겹쳐진다. 나 역시 가족의 사랑 앞에서 내 욕망을 내려놓으며 오늘도 식탁에 앉는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이렇게 속삭인다. 사실은 나도 짜장면이 먹고 싶었다고. 또한 “인간의 삶은 결핍을 채우려는 갈망의 연속이다. 그러나 채우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결핍을 발견한다”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부모의 삶이란 어쩌면 그 끝없는 결핍을 자식의 배부름으로 채우려는 여정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져야 한다. 엄마도 아이들과 함께 짜장면을 맛있게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부모의 인생은 언제나 나중으로 미뤄진 삶인지도 모르겠다.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들을 늘 아이들 뒤에 세워두고, 스스로 뒷자리에 앉아온 세월. 하지만 그 미뤄둔 자리에서 부모가 얻은 것은 결핍이 아니라, 아이들이 배불리 먹고, 환하게 웃는 얼굴에서 비롯된 충만이었다. 그리고 희생이었다.
♪엄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그 노랫말 속에 스며 있는 건 단지 음식의 취향이 아니라, 억눌린 욕망마저 사랑으로 덮어내려는 부모의 본능적 희생이 아니었을까 싶다. 배고팠던 시절, 그 한 그릇의 짜장면을 아이에게 양보하며 스스로의 허기를 참았던 세대. 그 사랑은 화려한 말이 아니라, 묵묵한 포기와 절제였다. 그런데 그 희생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결국 사랑은 자신을 지워버린 희생으로 변하고 만다.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랑, 결국은 아이에게 모든 걸 받아야 하는 보상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오랫동안 ‘좋은 부모’의 얼굴 뒤에 숨은 슬픔을 외면해 왔다. 자식에게 내어준 만큼 사랑이 깊다고 믿었고, 희생은 곧 존경으로 향하는 길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사랑이 나를 다 지워버린다면 그것은 아이에게도 결코 건강한 사랑이 아니다. 당신 역시 짜장면을 미뤄왔던 수많은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잠시 멈춰서, 당신이 진짜로 먹고 싶은 짜장면을 한 그릇 떠올려 보길 바란다. 그것이 비로소 나를 위한 한 끼이자, 앞으로의 관계에 있어서도 보상이 아닌, 진정한 사랑으로 향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 문장 앞에서>
희생이 너무 오래 이어지면, 사랑은 결국 나를 지워버리는 이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