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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근몬스터 Dec 30. 2020

05. 풀어진 신발끈을 차마 넘기지 못하는 사랑

넷플릭스 영화, <결혼 이야기> (2019)

나는 사랑을 다룬 영화를 좋아한다. 로맨스, 멜로, 로맨틱 코미디 등 장르는 가리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문화 컨텐츠에서 '사랑'은 유구하게 다루어져 왔다. 가장 밀접하게 접할 수 있으면서도 어쩌면 가장 닿기 힘든 감정이니까.


내가 '인생 영화'로 꼽는 많은 영화들이 있고, 다양한 사랑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이 굉장히 많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 장르보다는 멜로 장르를 좋아한다. 특히 해피엔딩보다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를 말하는, '사랑의 유한함'을 다루는 영화들을 특히 좋아한다. 이유는 딱히 모르겠다. '뜨거웠던 것은 식기 마련'이라는 고지식한 편견 아닌 편견이  있기 때문일까?


그런 맥락에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굳이 말해보자면 <블루 발렌타인> (블루레이까지 소장), <봄날은 간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우리도 사랑일까> 같은 영화들. 영화가 끝나도 그 감정을 혼자 먹먹하게 곱씹을 수 있는 영화들이 좋다.


그런데 '결혼 이야기'라니. 제목부터 눈을 사로잡았었다. 게다가 배우는 스칼렛 요한슨에 아담 드라이버고, 감독은 내가 너무 좋아하는 영화 <프란시스 하>의 노아 바움백! 안 볼 이유가 없었다. 제목은 '결혼 이야기'지만 내용은 그들의 이혼 과정을 다룬다는 점도.





영화의 제목은 알 수 있듯이 '결혼 이야기'지만 영화는 결혼 생활 이후 그들이 이혼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쫓는다. 서로의 장점을 칭찬하는 독백에서 시작되는 영화는 곧장 그들의 이혼 조정 장면으로 넘어간다.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로 '결혼'을 선택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지만 그 결혼을 끝내기로 마음 먹었을 때 끝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영화는 부부였던 '니콜'과 '찰리'의 복잡미묘하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이혼 과정과 그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잘 담아냈다. 


극작가였던 남편 '찰리'와 연극 배우였던 '니콜'은 서로에게 빠져들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점점 극작가로써 차근차근 계단을 올라가며 성공의 길을 걷고 있는 찰리를 보며 니콜은 점점 무력감에 빠진다. 찰리를 내조하고, 아이를 위해 헌신하며 사는 삶.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무대를 사랑했던 그녀는 찰리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바라보면서 지치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의 감정은 갈수록 골이 깊어지고 두 사람은 협의 하에 이혼을 하려 하지만, 그들 사이에 변호사가 끼면서 더욱 일은 복잡해진다. 원래 니콜은 변호사를 선임할 마음이 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강요에 못 이겨 만난 변호사에게 자신의 결혼 생활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위로 받으며 변호사를 선임하기로 마음 먹는다. 찰리는 그 사실에 분노하여 부랴부랴 자신 또한 변호사를 선임하고, 그들은 직접적인 대화 대신 변호사를 통해서만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어떻게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을 맞닥뜨린 것이다. 


이 영화를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한 순간의 감정에서 시작된 결혼이 어떻게 끝나는지 과정을 담담하게 담아냈다는 점도 있지만, 상대방이 죽일듯이 밉다가도 돌이켜보면 그 사람의 좋은 점이 생각나고, 그 사람만큼 나를 잘 아는 것이 없었지... 하는 감정들이 너무나도 잘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서로 마음에도 없는 쌍욕을 퍼붓다가도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고, 집 대문이 닫히지 않자 생각나는 사람이 없어 부르고, 음식 취향 또한 완벽하게 꿰고 있는 사이. 아마 찰리와 니콜 두 사람은 수 년의 결혼 생활에 비해 짧았던 이혼을 준비하면서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지 않았을까? 가까이서 서로를 보았을 때는 단점 밖에 보이지 않았겠지만 멀리 떨어져서 보니 그 사람의 단점, 장점, 생각, 삶의 습관들이 보였던 것이다. 그에 더해 내가 지금 어떤 생각인지도. 



이야기는 두 사람의 이혼 후 모습을 보여주며 끝난다. 결말에서 니콜은 풀어진 신발끈으로 아들을 안고 터덜 터덜 걸어가는 찰리를 쫓아가 그의 신발끈을 묶어준다. 신발끈을 묶어주는 그녀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나 없어도 그가 헐렁해보이지 않았으면, 저렇게 가다가 넘어지지 않았으면 등 다소 복잡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저 장면이 있어 이 영화가 완벽하게 끝을 맺은 기분이 들었다. 두 사람의 결혼 관계는 '이혼'이란 절차로 끝이 났지만 남녀 사이로써의 사랑이 아닌 삶을 함께 했던 사람으로써의 사랑이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풀어진 신발끈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사랑. 


이 영화에 온전히 이입할 수 있었던 건 각 캐릭터를 연기한 스칼렛 요한슨과 아담 드라이버가 너무나도 찰떡같이 연기를 잘해서도 있다. <패터슨>에서도 느꼈지만 아담 드라이버라는 배우는 "내가 연기를 하고 있다"라는 게 하나도 안 느껴질 만큼 생활 연기의 달인이라 생각된다. 정말 흠 잡을 수 없을만큼 찌질하고, 후회하고, 조급하고, 때로는 먹먹해 하는 연기를 보여주며 '찰리'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스칼렛 요한슨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블랙 위도우'로 각인되어 있지만, 나는 그녀의 이런 일상적인 연기가 좋다. 그녀의 얼굴이 더욱 잘 보이는 연기다. 




종종 '사랑이란 무엇일까' 라고 생각해본다. 현재는 결혼 생각이 없지만 좋은 사람이 있고, 내가 경제적 능력과 기타 다른 여건들이 갖춰진다면 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이 종종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봄날은 간다>의 명대사처럼 사랑만큼 희석되고 변하기 쉬운 감정도 없는 것 같다. 사랑이란 두 글자만 믿고 평생을 약속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어리석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감정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다, 라는 말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아직 내가 나이가 어린 탓도 있겠지. 


결혼한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서로의 소중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 찰리 또한 조금 더 니콜을 배려하고,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했었다면 그녀와 이혼할 일도 아마 없었겠지. 사람들은 때로 곁에 당연하게 있다는 이유로 소중함을 쉽게 지워버린다. 나 또한 마찬가지겠지. 


내가 옆에 있다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좋다. 연인이든, 친구든, 또 다른 관계이든. 이 세상에 당연하게 사랑을 주고 무조건적인 헌신을 하는 사람들은 없다. 무엇이든 상호 교류적인 감정이 오가야 한다. 그런 소중함을 잃지 않을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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