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에서도 말한 적 있다시피, 나는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문예창작이라고 하면 흔히 순수문학을 떠올리지만, 나와 내 친구들 대부분은 문학과 관련 없는 곳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고 있다. 하지만 문예창작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꾸준히 시 강습을 들으며 습작을 하고 웹진에 시를 발표하는 동기들이 있었다. 나는 소설을 전공했지만 졸업작품 이후에 제대로 된 단편소설을 쓴 적이 없었고, 가끔씩 좋은 소설이나 시를 읽으면 "나도 써볼까"하는 의지가 타올랐다가도 이내 사그라들었다. 직장이 바쁘다는 이유로, 몸이 힘들다는 이유로, 좋은 생각이 안난다는 이유로.
내가 그럭저럭의 직장인이 되어가는 순간에도 꾸준히 시를 쓰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도 직장인이었지만 꾸준히 시를 쓰고, 시를 쓰는 사람들과 합평을 하고 시인들의 수업을 들으며 시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었다. 가끔은 그 친구가 부럽기도 했다. 그러면서 부끄러운 적도 있었다. 나도 한때는 소설을 사랑한다고, 누구보다 열심히 쓸 거라고 떠들고 다녔던 거 같은데. 이제 그런 마음을 먹기에도 큰 에너지가 소모됐다. 가끔씩 공모전 일정을 찾아보며 소설을 구상하다가도, 최대 한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내가 생각한대로 문장이 써지지 않거나 스토리가 흘러가지 않으면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가 본 글들은 완벽했는데, 왜 나는 그렇게 안 써지는 거지?
생각해보면 노력도 그렇게 크게 하지 않고, 책도 한달에 한 권 읽을까 말까인 주제에 오만방자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텅 빈 워드 화면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보다보면 커지는 스트레스에 매번 '글 쓰고 싶다'는 마음만 먹었던 것 같다. 그 순간에도 내 친구는 열심히 시를 쓰고, 읽고, 합평하고, 수정해나갔을 것이다. 나는 친구가 얼만큼 노력했는지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소설을 쓰고 싶어했던 나보다는 곱절로 노력했을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작년 말, 친구는 신춘문예를 준비한다며 밤을 새가며 시를 쓰고 고쳐대곤 했다. 그 무렵엔 연락도 자주 안했던 것 같다. 한 7~8개 신문사에 시를 보내는 걸 끝내고 나서 오늘 다 보냈다고 말하던 친구의 메세지가 생각난다. 그 순간까지만 해도 "쟤는 이번 신춘문예에 당선될 거야!"라는 생각까지는 안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카카오톡 메세지가 쏟아졌다. 한 신문사에서 등단 연락을 받았단 것이었다.
나까지 함께 얼떨떨했다. 그리고 엄청나게 떨리고 기뻤다. 정말 축하한다는 말을 함과 동시에 내 마음 속으로 전혀 질투라는 감정이 들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다. 내가 진심으로 소설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글을 썼다면, 한 번이라도 신춘문예에 도전해봤다면 지금 이 친구를 질투하지 않았을까? 내가 전혀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 친구를 축하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내 일처럼 기쁜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자극제가 되었다. 아직도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않은 사람으로써, 한편 쯤은 소설 쓰기를 도전해봐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의 목표 한 가지는 단편 소설 한 편을 써내는 것이다. 훌륭하지 않더라도, 한 편을 완성시키고 싶다. 지금까지 나는 너무 끈기없이 살았던 것 같다. 이제 완전한 20대 후반으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대학교 입시 준비를 하며, 하루종일 소설을 써도 재밌었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식도 아니고, 공모전을 내기 위한 것도 아닌 그냥 내 즐거움이 목표인 소설을 쓰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먹게 해 준 내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앞으로도 쭉 응원하겠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2021년이 끝날 때에는 친구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써 내가 이룬 것을 자랑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길 기다리며, 친구의 너무 좋은 시로 글 마무리!
야간산행
여한솔
공룡처럼 죽고 싶어
왜
뼈가 남고 자세가 남고
내가 연구되고 싶어
몸 안의 물이 마르고
풀도 세포도 가뭄인 형태로
내가 잠을 자거나 울고 있던 모습을
누군가 오래 바라볼 연구실
사람도 유령도 먼 미래도 아니고
실패한 유전처럼
석유의 원료가 된대
흩어진 눈빛만 가졌대
구멍 난 얼굴뼈에서
슬픔의 가설을 세워 준 사람
가장 유력한 슬픔은
불 꺼진 연구실에서 흘러나왔지
엎드린 마음이란
혼자를 깊이 묻는 일
오래 봐줄 것이 필요해
외계인이거나
우리거나
눈을 맞추지
뼈의 일들
원과 직선의 미로 속으로
연구원이 잠에 빠진다
이게 우리의 이야기
강이 비추는 어둠 속에서
신발 끈을 묶고
발밑을 살펴 걷는 동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