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나다, 사크로몬테에서.
그라나다로 넘어오니 오후 두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피곤함에 찌들어 있던 나는 숙소에서 쉬고 싶었지만, 그저 여행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래서 짐을 풀자마자 가방을 들고 나왔고 나의 유일한 동반자였던 구글맵을 켜고 알바이신 지구 전망대를 향해 가파른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갈수록 인적이 드물어졌고, 사진으로 봤던 알바이신지구가 나타나지 않았다. 배터리가 얼마 안남은 상황이라 지도를 오래 켜지도 못할텐데.. 괜한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일단 내가 있는 곳을 검색해보기로 했다. 나의 현재 위치는 사크로몬테(Sacromonte). 네이버가 지식백과가 말하길, 옛날 집시들이 동굴을 파서 살던곳이고 인적이 드물면 위험해질 수 있다는 말을 써 놓았다. 그 한마디에 순식간에 겁을 먹고서는 그 길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사실 사크로몬테는 아기자기하게 예쁜 동네였다. 인적이 드물긴 했지만 간간히 카페도 보이고, 식당도 보였다. 집시들이 동굴을 만들고 살았던 곳이라 마을이 굉장히 독특했고, 하얀색 벽들은 그리스 산토리니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내가 갔던 길에서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갔다면 흰색 벽들과 동굴집들의 모습, 그 집들 앞에 선인장 화단이 줄지어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사크로멘테로 쭉 걸어가면 전망대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보는 알함브라의 야경이 그렇게 멋지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와서 찾아본 사크로몬테의 모습에 후회가 되기도 했다. 딱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동네였는데, 좋았던 기억을 가지고 갈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혼자였으면 결코 가지 못했을 것이다. 안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는게 낫다. 라는 말이 있지만 이것은 선택의 고민의 기로에 섰던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이다. 그 당시에는 경계심이 나의 온 신경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다른 선택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특히나 ‘사크로몬테’를 검색하면 나오는 이야기들은 내가 겁먹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어떻게 보면 필연적 후회였다. 필연적 후회라고 해야할지, 그냥 겁쟁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자기 합리화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결국 나는 사크로몬테를 보지 못하고 왔다. 이런 필연적 후회가 여행도중 몇 번 더 있었는데, 되새겨 볼 때 마다 기분이 참 묘하다. 내가 겁먹지 말고 좀 더 강하게 다녔어야 했나? 아니면 나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본능적 행동이었을까?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지만 후회할 이유조차 찾지 못한 것 같아 늘 기분이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