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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킴 Sep 20. 2021

플로럴 향을 좋아한다는 걸알게 되었다

<향수>

1. 

인생의 첫 향수는 선물 받은 향수였다. 플로럴 향의 달달한 향이었던 향수. 그땐 향에 대한 취향이 전혀 없을 때라 선물 받았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달달한 그 향을 부지런히 뿌리곤 했다.


인생의 두 번째 향수는 조말론. 드디어 니치 향수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런던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던 길, 영국은 조말론이 태어난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렇기에 괜히 조말론 향수를 하나 사고 싶었다. 면세점에 있는 모든 향을 시향하고 나서 내가 고른 건 블랙베리앤베이. 시트러스 향 같지만 끝엔 달달함이 남는 기분 좋은 향수였다. 


그리고 세 번째 향수 또한 조말론이었다. 블랙베리앤베이가 코롱이었기 때문에 지속력이 썩 좋지 않았다. 겨울용으로 조금 더 묵직한 향을 찾았고, 내가 찾은 건 벨벳로즈 앤 오드. 장미향이 강하게 나는 향수였다. 이 향수를 사면서 나는 깨닫게 됐다. 나의 향수 취향이 제법 명확하다는 걸. 나는 달달한 꽃 향을 정말 좋아하구나.


시작이 그랬기 때문일까, 나는 이후로도 쭉 달달한 플로럴 향을 찾게 되었다. 다양한 향을 시도해보려 해도 결국 돌고 돌아 달달한 플로럴 향으로 돌아가더라.




2. 

(지금은 바뀌었지만) 회사에서 내 자리는 가장 문 앞에 위치하고 있었다. 회사 내의 모든 사람이 드나드는 것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그리고 문 앞자리에 있다 보면 사람들의 사소한 생활 습관들을 알게 되고, 그 생활습관들로 인해 누가 드나드는지, 얼굴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게 된다. 긴 한숨을 내뱉는 사람, 텀블러를 이리저리 흔드는 사람, 또 저마다 발걸음 소리가 다르기에 발걸음만 듣고도 그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다. 


발걸음 소리, 한숨소리, 텀블러 소리 등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각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지만, 후각적으로 나를 자극하는 사람이 있었다. 발걸음 소리도 크지 않고, 특별한 생활습관도 없었지만, 그 사람이 지나가면 달달한 향기가 코끝에 훅 들이닥쳤다.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그 사람이 지나간 걸 알 수 있었을 만큼.


언젠간 기회가 되어 그 사람에게 무슨 향수를 쓰냐 물어보았다. 딥티크의 도손을 쓴다고 했다. 도손. 그렇구나. 그때까지 니치 향수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던 터라, 이름 정도만 알아두었다. 기억해뒀다가 향수를 살 기회가 있으면 딥티크 도손을 사 봐야지.


그렇게 머릿속에 넣어둔 딥티크 도손은 친구의 집에 갔다가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된다. 친구의 집에 초대받은 날, 친구의 취향이 가득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는 집을 구경하다가 향수를 발견하게 되었다. 사실 향에는 썩 관심이 없었다. 그저 패키지가 너무 예쁘길래 어떤 향수인가 궁금해 뚜껑을 열어보았고, 살짝 뿌려봤는데 너무 좋은 향이 나는 거지. 어, 근데 이 향, 왠지 익숙한 향인데 싶어 기억을 더듬어 보니, 바로 그때 그 향이었다. 기억 속에 묻어 두었던 그 향, 바로 딥티크 도손. 달달한 향이 코끝에 훅 끼쳐오며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던  그 향수였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로 향수를 사게 된다면 꼭 딥티크 도손을 사겠노라 다짐했다. 두 번이나 나를 매혹시킨 향이었다면 꼭 구매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어제, 드디어 딥티크 도손을 샀다. 플로럴 계열의 달달한 향. 날씨가 쌀쌀해지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꽃향기. 이번 가을과 겨울을 함께할 향이 있다는 게 벌써부터 신이 난다. 


도손을 다 쓰면 어떤 향을 써 볼까. 향수 한 통을 다 쓰려면 한참은 걸릴 테니, 부지런히 취향을 알아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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