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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부분 Sep 20. 2021

결국 다 다를 테니

<향수>


 출퇴근 길에 지나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에는 나의 고개를 돌리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향이 나는 사람들이다. 아침저녁 지하철에서는 보통 휴대폰만 쳐다보며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고개를 들어 눈으로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존재감이란 꽤나 강렬하고 인상 깊게 뇌에 박힌다. 향수를 뿌린 사람들의 냄새는 주로 아침 출근길에 더 진하게 맡을 수 있다. 막 샤워를 마치고 달큼한, 시원한, 향긋한, 상큼한, 부드러운 향들이 각자의 옅은 체취와 섞여 열차 안과 플랫폼 위로 길을 그린다.

 

 진하든 연하든 누군가로부터 풍겨 오는 향을 맡으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옷차림이나 머리 스타일 등을 한번 더 관찰하게 된다. 그가 어떤 기분일지, 음악 취향은 어떻고 뭘 좋아할지, 성격은 어떨까에 대한 부분까지 잠깐이나마 생각해 본다. 시각적인 것 말고도 그에 대한 힌트를 하나 더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짐작하게 되는 거겠지 생각한다. 어쩌다 아는 사람이 그의 이미지와 잘 맞는 향을 퐁퐁 풍기면서 돌아다니는 걸 보면 그 사람에게는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속으로는 꽤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껏 향수를 사서 써 본 적이 없다. 룸 스프레이나 디퓨저 같은 것들은 종종 썼지만 몸에 뿌리는 향수를 사는 건 아무래도 조금 다른 기분이 든다. 특별해야 할 것만 같다. 언제인가는 가로수길 골목 향수 매장을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나의 취향을 찾아 시향을 한 적도 있지만 나와 어울릴 것 같은 향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서 그만두었다. 게다가 후각적인 자극에 쉽게 흐트러지는 정신을 가진 바람에 내 몸에서 나는 향이라도 진한 향기를 맡으면 집중도 잘 못 한다. 내가 좋아하는 향은 흙이나 풀 냄새, 산의 쿰쿰한 냄새인데, 나한테서 났으면 하는 것보다 산에 가서 맡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나와 달리 애인은 향수를 거의 매일 뿌린다. 그가 향수를 뿌리기 시작한 건 오래되지 않았지만 꽤 여러 번, 진하게 뿌리는 걸 선호하는 것 같다. 사람들에게 선명한 인상을 남기는 종류의 사람이니까. 나는 그의 체향을 좋아하기 때문에 살 냄새가 향수에 덮이는 게 좀 아쉬우면서도 체향과 섞인 진한 향기가 또 좋아 킁킁 냄새를 맡곤 한다.


 사실 몇 번인가 몰래 그의 향수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 향수 자체가 워낙 강한 향이어서 그런지 처음에는 그에게서 맡을 수 있는 것과 비슷한 향인 것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흘러 오후가 되자 그에게서 나는 향과 좀 다른 느낌의 냄새가 났다. 날씨나 기분 같은 것에 따라 다른 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듣자 하니, 사람의 체향과 섞이면 같은 향수라도 다른 향이 날 수 있다는 거다. 그건 똑같은 시간이 주어져도 다 다른 사람으로 자라는 것과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결국 다 다를 테니, 주저하지 않고 기분의 향을 선택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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