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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Oct 04. 2021

불안의 표출

<불안>

가슴 언저리에 무거운 돌덩이를 하나 얹어놓은 것처럼 마음이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평소엔 의식하지 못하던 숨 쉬기가 자꾸만 거슬리고, 큰 숨을 몰아쉰다. 폐 깊숙이 산소가 들어차도록 바람을 머금어봤자, 답답함은 나아지지 않았다. 어디에도 집중을 하기 어려웠고, 나는 그런 나 자신이 싫었다. 이 감정을 떨쳐내기 위해서 눈을 꾹 감고 기다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좀처럼 없었고, 그저 시간이 지나길 기다릴 뿐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처음은 아마도 유치원 혹은 초등학교 입학 즈음. 그 감정의 이름은 불안이었다.



3월은 언제나 불안한 달이었다. 이제야 익숙해진 친구들과의 관계가 반이 뒤섞임으로 인해서 모조리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것은 마치 나에게 게임 리셋과도 비슷했다. 작년에 같은 반 친구들과 친했다고 해서, 올해도 친하게 지낼 수 있을지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1년, 방학을 포함하면 그마저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은 내가 충분한 친밀감을 쌓기엔 부족했다. 반이 바뀌면 바뀐 대로, 나는 다시 마음에 돌덩이를 얹은 채 학교를 향해 발걸음을 떼었다. 불안했고, 그때엔 같은 꿈을 여러 번 반복해서 꾸었다.


나는 등교를 해야 했다. 등교라는 커다란 미션을 안고, 집을 나서려고 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나는 그때마다 시계를 보며 마음의 불안을 키웠다. 나의 등교를 세상이 반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만큼, 수많은 문제들이 내 앞에 쏟아져 나왔다. 나는 무언가를 집에 두고 나왔거나, 실수를 했거나, 아니면 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했다. 걸어가야 하는데 버스를 잘못 타거나, 반대편으로 타거나, 아니면 사고가 났다. 결국 정상적으로 등교를 하지 못하는 상태로 끙끙대다가 눈을 뜬다. 꿈이었고, 나는 불안이 사라질 때까지 그러한 꿈에서 깨기를 반복해야 했다.


성인이 되어 나아지는 점은 그다지 없었다. 신발주머니를 들고 학교에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던 초등학생인 나와, 셔츠를 입고 미팅을 나가 발표를 해야 하는 직장인 사이의 괴리감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나는 결국 계속해서 나였기 때문에 불안한 꿈을 계속 꾸었다. 다만 인정하게 되었다는 점만이 달랐다. 내가 불안하구나.




이틀 전엔 시험을 보았다. 커다란 제도판을 메고서, 도시락을 싸들고 고등학교에 들어섰다. 전국에 있는 대학교들을 나열해 놓은 지도와 수능이 며칠 남았는지 표시해놓은 달력이 붙은 교실의 한 자리에 앉아 나의 수험번호를 체크했다. 1시부터 시작하는 시험이었지만, 나는 굳이 12시에 시험장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었다. 불안하기 때문이었다.


시험을 보기 전, 몇 십분 동안 볼 자료들을 챙겨갔지만 결국 나는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자리에 잠깐 앉아있다가, 시계를 보다가, 결국 일어나서 복도를 배회했다. 가을이라 시원한 바람이 부는데도 왠지 내 몸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가슴이 답답하고,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손이 떨리지는 않아 다행이라고,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젯밤 꾸었던 꿈에 대해서 생각했다. 아빠의 차를 운전하게 되었는데, 브레이크에 발이 닿지 않았다. 조금씩 속력을 내는 차량 운전석에 앉아 나는 브레이크를 향해 발을 쭉 뻗었지만 속력을 간신히 줄이는 데에만 성공했다. 앞뒤 옆에 다른 차량이 없는지 살피면서 끝없이 브레이크를 향해 발끝을 내질렀다. 아, 나의 불안한 꿈은 이제 조금 다른 버전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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