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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부분 Oct 04. 2021

미래를 바라보기 때문에

<불안>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작은 스케치를 그려 설명할 일이 있었다. 나름의 고민 끝에 몇 장의 작은 그림을 그렸고 소장님과 선배 몇 명에게 설명을 하는데, 고민한 시간에 비해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다. 뭔가 성과라고 할 만한 것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 꼬이기 시작하자 식은땀이 났다. 이게 아닌데, 나는 일을 못 하는 사람인 건가? 다시는 이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어쩌지? 일단 망한 것 같고, 목소리는 벌벌 떨리고, 화면의 마우스를 자꾸 빙글빙글 돌리고, 말이 느려지다가 애꿎은 입술만 뜯고.. 결국 흐지부지 말을 맺었고, 약간의 정적 뒤에 선배가 한 마디 했다. 


-야, 왜 그렇게 쪼냐? 

-아, 아니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고요… 


 약육강식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의 세계에서 쫄보의 삶은 고달프다. 실제로 그렇지 않더라도(어쩌면 실제로 그럴지도 모르지만) 누군가가 나를 비난하거나 무시하거나 비웃을까 늘 불안하기만 하다. 누군가에게 쫄지 않으려면 삶의 야차 같은 상황들에 의연히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얼마나 준비를 하든 나의 방어력은 항상 부족한 것만 같다.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불안의 덩어리를 키우지 않고 붙들어 매는 것만으로도 지치는 게 대부분이다.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그렇게 불안한 순간들은 사실은 늘 상상을 딛고 나왔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는 데에서, 보이지 않는 앞에 펼쳐질 최악의 상황에 어떻게든 대처해 보려고 하는 마음에서. 슬프고 힘든 마음이 다가올 것 같은 두려움에 마음에 슬프고 고단한 방어벽을 쌓는다. 시간이 흐르고 뒤를 돌아보면 그렇게까지 불안해하지 않았어도 되었던 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벽을 쌓고 허무는 일을 반복하며 걱정을 하는 거다. 


 적당한 불안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마감을 앞둔 때처럼 집중이 필요한 순간에는 마음이 풀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뭐든지 적당히가 중요한 것이라고, 쫄리고 불안한 마음이 전혀 없다면 시작한 일에 단단하게 매듭을 짓는 일도 쉽지 않을 테다. 


 많은 사람들이 당장 몇 년 후는 고사하고 몇 달 앞조차 보이지 않는 시기를 살아내고 있다. 묻어 놓은 도토리를 찾지 못하는 다람쥐가 다음 세대의 도토리를 기대할 수 없듯, 오랜 미래를 상상할 수 없는 불안한 마음으로 출근길에 오른다. 야근을 하고, 주식을 사고, 조금이라도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 어려운 마음을 주고받으며 눈물을 보이고, 술잔을 기울인다. 어떻게라도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함이다. 


 그렇게 불안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내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지나간 일을 두고 불안해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불안해하는 사람들은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래서 안심할 수 있는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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