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안쓰럽기만 하다.
우리는 숱한 시험을 친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각종 자격증과 영어 시험들, 취업을 위한 시험들, 그리고 입시까지. 많고 많은 시험을 보며 나는 대부분은 절망하고 낙담했다. 시험을 보고 난 후 웃었던 적이 있긴 했을까. 정말로 기억도 안 나지만, 울었던 적은 두 손으로 셀 수도 없이 많다. 스스로가 멍청하게 느껴져서, 고작 시험 하나 제대로 못 보는 내가 바보 같아서, 이러다 정말 입시에서 떨어질 것 같아서, 스스로가 밉고 분하고 화가 나고 걱정이 되어 이불속에서 엉엉 울곤 했다.
특히 고등학교 때 그 스트레스가 가장 심했다. 시험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나는 그 후가 정말 괴로웠다. 고등학교 때는 과목별로 시험 결과가 적힌 종이를 게시해두곤 했는데 나보다 잘 친 사람은 몇 인지, 못 친 사람은 몇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적나라하게 나오는 시험 성적은 정말이지 잔인했다. 나는 그 숫자들을 내 가치로 치환했고, 내 자존감은 뭉텅이로 깎여나갔다. 1이라는 숫자에서 점점 멀어지는 그 순간들을 겪으며 패배감과 절망과 무력감은 커져만 갔다.
결국 학창 시절의 최종 목표는 대학 입시다. 숱한 시험들을 보며 절망과 무력감을 견뎌내야 했던 건 대학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대학이라는 게 내 자존감을 수렁에 빠뜨릴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건 나는 그 기간을 버티고 버텨 대학에 갔고 대학에서 또다시 4년을 버텼다.
고등학교 때는 숫자가 너무 적나라해 나를 괴롭혔다면 취업을 앞두고서는 결과가 너무 모호해 괴로웠다. 시험을 보고 석차나 등급이 나온다면 결과를 인정할 수라도 있지, 과정도 제대로 모른 채 합격과 불합격이라는 두 가지 결과를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건 더더욱 잔인했다. 나는 꽤 낙천적인 편이고 소위 말하는 멘탈도 센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입시와 취업 준비는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괴로웠다.
그래서, 이 모든 시험은 가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 모든 시험과 관계없는 일을 하고 있다. 미적분을 사용할 일도 없고, 구조역학에 대해서도, 건축법에 대해서도 써먹을 일이 없다. 내가 겪었던 고등학교 입시도, 대학 입시도, 숱하게 쳤던 인적성 시험들도, 지금 하고 있는 일에는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시험 때문에 절망하고 괴로워하던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안쓰럽기만 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숫자들이 내 가치로 치환되지 않을뿐더러, 그 숫자들 은 내 인생을 잠시 스쳐갈 뿐이라고.
어느덧 수능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학창 시절 12년의 결과를 말하는 한 번의 시험. 모두가 1등을 할 수는 없는 시험이니 아마도 누군가는 낙담하게 될 것이다. 그 말은 즉, 누군가는 나와 비슷한 절망감을 겪게 될 거라는 말이다.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쓰리다.
수능뿐만 아니라 모든 시험에서 모두가 원하는 결과를 얻으면 좋겠지만 혹여 그렇지 못하더라도 조금만 아파하고 털어냈으면 좋겠다. 그 시험들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은 꽤나 금방 찾아오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