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아키 Oct 17. 2022

처음으로 기차를 놓친 날

<실수>

초행길엔 유난히 지하철을 반대로 탄다. 가장 고쳐지지도 않고, 미련하게 반복하는 나의 실수 중 하나다. 특히 지하철이 마침 역사에 멈추고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고 있는 그 타이밍. 내가 서둘러 뛰기만 하면 탈 수 있는 그 순간, 나는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깊은 생각 없이 열린 문 사이로 뛰어들고 마는 것이다. 문은 나의 등 뒤로 닫히고, '설마'하며 방향을 확인하면 '역시'다. 잘못 탔다. 보통의 경우 지하철을 잘못 타 약속 시간에 조금 늦는다 하더라도 큰 일은 벌어지지 않지만, 얼마 전엔 정말 중요한 순간에 지하철을 반대로 탔다.



부산에 내려가는 길이었다. 집에서 조금 더 가까운 SRT 열차였다. 수서 역까진 항상 택시를 탔었는데, 아침 시간에 길이 막힐 것을 우려해 지하철을 타기로 결정했던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나는 8호선에서 한 번 분당선으로 갈아타야만 했고, 서둘러 지하철을 갈아탄다는 것이 반대 방향으로 탄 것이다. 하필 이럴 때라니, 믿고 싶지가 않았다. 계획대로라면 나에겐 10분 정도의 여유 시간이 있었지만, 한 번 지하철을 반대로 타고나니 딱 10분 정도를 손해 봤다.


수서 역으로 향하는 분당선 안에서 손에 땀이 나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혹시 몰라 부산으로 향하는 다음 SRT가 있는지 확인했다. 그날의 모든 SRT는 회색 빛을 띠고 있었다. 단 한 자리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 정도쯤 되면 SRT는 열차 수를 늘려야 하는 것은 아닌지 괜한 원망의 마음이 불쑥 치솟았다.


뛰면 될까. 가방을 고쳐맸다. 차라리 아예 가망도 없는 시간이었으면 뛸 생각도 안 했을 텐데, 열차 출발 시간 1분 전에 나는 분당선의 문을 박차고 나왔다. 사람들 사이로 전속력으로 뛰었다. 분당선에서 내리기 전, 승차장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찾아봤던 걸 기억하며 잘못된 길로 들지 않기 위해 빠르게 지나가는 주변 풍경들을 기를 쓰고 눈에 담았다. 숨은 금방 턱까지 차올랐다. 허벅지가 당기며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플랫폼으로 들어섰다. 시계를 보았다. 막 1분이 지나고 있는 순간, 승차장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예약이 필요한 모든 운송수단을 통틀어 생전 처음으로 기차를 놓쳤다. 이런 일도 벌어지는구나 싶었다. 1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가 미웠고, 30초도 지체하지 않고 떠나버린 SRT 열차가 야속했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고, 땀은 비 오듯 쏟아졌다.



실수의 수습은 간단치 않았다. 다음 열차는 없었고, 꼼짝없이 부산에 내려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다시 서울역으로 가서 KTX를 타는 것이었다. 수서 역에서 서울 역까지 지하철로만 1시간이 걸렸다. 너무하다 싶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오전부터 있었던 부산 일정을 통째로 날려 먹었고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부산에 도착했다. 1분이 늦어 3시간을 까먹었다. 이쯤 되면 시무룩해지는 마음을 막기가 어려웠다. 속상하지 않으려고 지하철 안에서 한 숨을 몇 번이나 쉬었던가.


실수의 순간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무력하다. '아차'하며 뒤돌아보면 이미 늦었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이미 버스는 야속하게 기다려주지도 않고 떠난다. 시간을 멈출 수도, 되돌릴 수도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나의 실수를 앞으로 어떻게 수습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한숨을 한 번 푹 쉬고는 더 이상 나의 실수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려 한다. 무거운 마음과 지난한 후회는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떨치는 것이 최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실수는 어디까지 용납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